‘사과’는 지는 것이 아니다

2015년 6월 30일culturalaction

이종임 /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문화연대 집행위원

 

영화 <소수의견>의 주인공은 신문사 기자가 자신의 동의도 없이 쓴 기사로 인해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주인공은 이 문제로 기자와 통화하면서 말한다.

“그냥 미안하면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되지, 그 말이 그렇게 안 나옵니까?”

지금 우리 사회는 이 영화 속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과를 요구하는 사람들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 간 논쟁이 연일 신문 지면을 장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신경숙 작가의 작품 ‘전설’이 일본 우익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을 표절했다는 소설가 이응준의 비판은 신경숙 개인의 작가윤리뿐만 아니라 한국 문단의 구조적 문제까지 주목하게 했고, 표절임을 확신한 많은 독자들은 신경숙 작가의 사과와 반성을 촉구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독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신경숙 작가는 자신은 이 논란과 전혀 상관없으며, 대응할 가치도 없는 일이라고 언급했다. 거기에 더해 출판사 창비는 표절을 부인하는 글을 홈페이지에 올려 신경숙 작가의 의견에 힘을 실어주었다. 이와 같이 표절 문제를 일으킨 당사자인 소설가와 출판사가 모르쇠 입장을 보이자, 사회적 비판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결국 출판사는 표절에 대한 입장을 다시 번복했다.

결국 신경숙 작가 역시 자신의 표절을 인정하는 인터뷰를 했지만, 이미 배신감에 등을 돌린 대중들은 작가가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지 않고 논지를 흐리는 비겁한 자세를 보였다고 평하고 있다. 이렇듯 누가 봐도 명확한 잘못에 대해서조차 분명한 사과와 반성이 배제된 채 사건이 적당한 수준에서 수습되는 이유는 과거의 유사한 경험에서 나온 판단 착오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문제의 중심에 놓여 있는 소설가, 출판사 모두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잘못을 인정함으로써 자신들의 권위를 실추시키기보다는 오히려 자신들의 권위를 이용해 표절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안일한 생각을 했고, 대중들은 그 안일함에 분노했다.

경향신문, 2015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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