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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24]쌍용차 22명의 죽음과 대한문 분향소; 싸우는 자, 희망이 되어라

2017년 11월 6일culturalaction

신유아 / 문화연대

 

대한문에 분향소를 차렸다. 2012년 4월,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봄이다. 정리해고는 우울증과 함께 죽음의 문턱을 오가게 한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죽음이 더 이상 없어야 한다고 아무리 세상을 향해 호소해 봐도 돌아오는 건 공권력의 폭력적인 진압뿐이었다. 분향물품을 내리는 순간 경찰이 들이닥쳐 상주의 물품을 빼앗아 갔고 이를 막으려는 시민과 몸싸움이 벌어졌다. 현수막 하나 걸 수 없는 곳이 대한민국 서울의 모습이다. 맨바닥에 영정을 내려놓고 털퍼덕 주저앉아 멍하니 하늘을 본다. 경찰병력에 둘러싸인 상주의 모습은 차디찬 봄의 슬픔이 묻어난다.

문화연대는 문화예술인 기자회견을 준비했다. 이윤엽과 필자는 기자회견 상징물을 준비하고 전미영은 상징 퍼포먼스를 준비한다. 해고로 목숨을 잃은 22명의 노동자와 가족을 위해 치유와 위로를 뜻하는 추모의식이다. 상징물을 만들기 위해 아이디어를 낸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를 생각하면 굴뚝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평택 공장 앞 노조 사무실에서 보이는 굴뚝은 생존을 외치던 노동자의 농성현장이기도 하고 국가 폭력에 저항하기 위해 가장 낮은 곳의 사람이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가 소리치던 곳이다. 아이디어 스케치를 하다가 굴뚝을 넣은 티셔츠를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일회용으로 사용되는 상징물의 재료는 종이박스나 스티로폼을 자주 사용한다. 거기에 색을 입히고 구호를 적는다. 일종의 피켓 상징물이 되는 것이다. 2012년 당시 경찰은 기자회견을 해도 불법 집회라고 경고방송을 하며 기자회견 내내 시끄럽게 방해하거나 피켓, 상징물들을 순식간에 뺏어 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래서 가벼운 소재를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진/한겨레

기자회견의 상징물은 쌍용자동차 평택공장 4차 포위의 날 대회에 쓰일 상징물의 사전 작업이 되었다. 굴뚝을 이용한 추모비, 그 아래 위로와 애도를 위한 꽃 무덤을 만들기로 했다. 이윤엽과 미디어 활동가이면서 설치 미술가인 박도영은 함께 굴뚝을 만든다. 이번엔 나무합판을 이용한 작업이다. 굴뚝 형태를 따내고 그 위에 그림을 그렸다. 바닥 틀을 만들고 바퀴를 달아 움직일 수 있게 조정했다. 오전부터 만들기 시작한 목공작업은 어두워서야 끝났다. 완성된 굴뚝을 신기해하며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은 그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굴뚝아래 봉분을 만들고 그 위에 꽃을 꽂기로 했다. 다 같이 하는 상징의식이 필요했다. 스티로폼으로 꽃을 만드는 일은 필자의 전공이다. 농성장에서 주워 모은 스티로폼을 칼로 잘라 꽃을 만들다 생긴 별명이 ‘스티로폼 재활용 작가’다. 스티로폼 꽃을 몇 개 만들어 붙이다 보니 고민이 생겼다. 일손은 하나인데 시간은 없고 빠르게 만들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시중에 파는 인조 꽃을 샀다. 파란색과 노란색 꽃이다. 푸르른 죽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인조 꽃을 구매한 것은 매우 능률적이긴 했지만 재정적으로 손해 본 기분이었다. 인조 꽃이 그렇게 비싼 줄 몰랐다. 다음부터는 절대 사지 말아야지 다짐해 본다.

벌써 쌍용자동차 노조사무실 뒤 주차장에서 세 번째 작업한다. 노조 사람들과 어느새 많이 친해졌다. 밥도 같이 먹고 잠도 같이 자고 밤새워 일도 함께했다. 눈. 비 맞으며 함께 하다 보니 친구처럼 가족처럼 지내게 된다.

4차 포위의 날, 22개의 관이 무대 앞에 가지런히 놓인다. 숙연하다. 울분에 찬 김정우 쌍용차 지부장의 목소리가 공장 하늘에 울려 퍼지고 문화제는 눈물 속에 이어졌다. 마지막 상징의식 시간, 참석자들에게 꽃을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파견미술팀이 제작한 굴뚝과 그 아래 봉분에 꽃을 꽂아 달라고 했다. 잠시 눈을 감고 내리는 비를 맞으며 스러져간 노동자들을 애도한다. 굴뚝아래 푸른 꽃은 추워 보인다. 따뜻한 날을 만들자 다짐하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

평택을 거점으로 투쟁을 만들어 가던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은 사회 전체의 힘을 모으기로 결심하고 대한문 분향소를 확대해 평택에서 서울로 거점을 옮겼다. 이때부터 농성장에 대한 고민이 시작됐다. 기자회견만 하면 달려드는 경찰 때문에 사람들은 연행되고 풀려나기를 반복했다. 조각가 최병수의 작품을 설치하려던 노동자들은 몸싸움 끝에 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다. 무엇 하나 땅에 내려놓을 수 없는 상황에서 대한문 분향소는 말 그대로 아수라장이 됐고 맨바닥인 분향소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힘을 더 모으기로 했다. 쌍용자동차 문제해결을 위한 ‘함께살자’ 희망 지킴이라는 이름으로 더 이상의 죽음을 막아보고자 모임을 만들었다. 이 모임에 많은 문화예술인들과 사회 각계인사들이 함께했다. 희망지킴이의 첫 사업으로 대한문 분향소 지킴과 재정을 지원하기 위해 바자회를 열었다. 바자회 마무리는 문화제다. 문화제의 제목은 ‘악(樂)’이다. 악 소리 나는 세상 신나고 즐겁게 소리 지르고 놀아 보자는 의미다. 의미를 전달받은 이윤엽은 숟가락을 들고 소리치는 사람의 이미지를 보내왔다. 보자마자 악 소리를 질렀다.

파견미술 작가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바자회에 내놓고 판매하기도 했고, 판매 물품 매대를 돌아다니며 장사를 도왔다. 분향소 주변 정리를 하며 은근슬쩍 영정 그림을 분향소 안쪽에 설치하기도 했다. 많은 사람의 연대로 경찰의 눈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날 이후로 대한문 분향소를 분향소답게 조금씩 재구성하기 시작했다.

공연팀과 사회자 등을 섭외하고 바자회에 함께 할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전미영은 그림 그리는 작가들에게 이미지를 모아 달라고 했다. 주제는 ‘내 안에 너 있다.’ 정리해고로 죽어간 사람들을 기억하는 그림이다. 그림을 모아 현수막으로 만들고 분향소 옆 큰 나무에 걸어 전시했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를 위로하는 문화제와 바자회는 대한문 앞 넓은 공터를 메우고도 넘쳐났고 이날 만큼은 경찰의 시끄러운 음향 소리도, 집회 시위 물품이라고 빼앗아 가던 행태도 수그러들었다. 사람의 힘이다. 다중의 힘이다.

희망지킴이는 누구라도 할 수 있었고 파견미술팀도 문화연대도 희망지킴이가 되어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과 지속적인 연대를 만들어 가기로 했다. 상상력 넘치는 연대의 시작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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