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혁신과 개혁의 반대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문화부 인사정책

2019년 2월 19일culturalaction

– 국립현대미술관장 선임논란에 부쳐

 

지난달 31일,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화부)는 미술평론가 윤범모 씨를 국립현대미술관장에 임명했다. 하지만 임명과 동시에 문화부가 윤 관장을 임명하기 위한 과정이 공정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일기 시작했다. 언론을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윤 관장은 관장 임명을 위해 진행한 고위공무원단 역량평가에서 탈락했지만 재평가를 통해 역량평가를 통과한 후 최종 관장으로 임명되었다고 한다. 첫 번째 역량평가를 유일하게 통과한 후보를 제치고서 말이다. 이에 대해 문화부는 “후보들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준다는 차원에서 결정한 것일 뿐, 정치적 결정은 아니다”라는 애매한 답변을 해 논란을 증폭시켰다.

이번 국립현대미술관장 공모 과정의 투명성과 공정성 논란은, 한국 사회 문화행정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문화예술의 사회적 가치를 높이고 확산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 문화예술전문기관은 문화예술 현장과의 소통과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이번 논란에서 확인될 수 있듯이, 문화부는 문화예술 현장과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는 소통과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 게다가 논란이 불거진 이후 적절한 해명조차 하지 않는 문화부의 태도는 문화예술전문기관의 역할을 스스로 한계짓고 제한해 버리고 말았다. 문화부의 이번 인사는 실패했다.

그러나 문제는 공모과정에서의 공정성과 투명성 실패만으로 축소될 수 없다. 국립현대미술관장의 인사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미술계를 중심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의 행정개혁 필요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체부는 이러한 국민여론에 대한 책임 있는 응답과 조치를 취하지 않고, 행정개혁 없는 인사공모를 강행해 왔다. 2006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책임운영기관 전환의 명분은 기관 운영의 독립성과 자율성, 책임성을 강화하는 것이었으나, 책임운영기관 지정 이후 국립현대미술관은 조직면에서 오히려 문체부에 대한 소속기관으로서의 종속성이 심화되어, 문체부의 허수아비라는 비판까지 제기된 바 있다. 책임운영기관 지정과 함께 미술관의 행정지원 업무를 소관하는 사무국이 기획운영단으로 개편되고, 이 기획운영단장은 문체부에서 파견된 고위공무원으로 공모를 통해 임명되는 관장의 직급과 동일한 수준으로 격상되었다. 또한 검열 의혹과 함께 전임 관장의 인사문제가 불거졌던 2015년 국정감사에서는 문체부가 국립현대미술관 운영규정을 개정하여 관장의 권한을 대폭 축소했다는 문제제기와 우려가 공론화되었다. 당시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은 “관장 자리는 직급이 국장에 불과할 뿐인데 이상하게 핫이슈가 되었다”는 발언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 대한 문체부의 관료주의적인 태도와 입장을 견지했을 뿐이다. 그리고 또 다시 어떤 행정개혁도 없이 ‘국장’에 불과한 관장 공모가 진행되어 논란의 중심에 놓이게 되었다.

비단 국립현대미술관장에 그치지 않는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라는 사상 초유의 국가범죄로 인해 문화행정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상황임에도, 문재인 정부는 문화예술기관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할 행정개혁 없는 기관장 인사를 반복하면서 그 불신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는 단순한 인사실패 문제를 넘어서, 행정개혁의 소임을 방기하고 문화예술기관의 행정종속과 관료화를 심화시키고 체질화하는 차원에서 심각한 문제이다. 주지하다시피, 현재 그리고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운용하는 과정에서 문화행정 관료들이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는 증거가 드러나는 상황에서, 문화행정의 혁신과 개혁은 반드시 이뤄져야만 하는 1순위 문화정책이라 할 수 있다. 이번 선임과정이 더 문제시된 것은, ‘블랙리스트’ 사태를 거친 문화예술계 현장의 요구와 바람이 정작 정책과 인사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문화 행정 파탄의 원인은 부패한 정치권력만이 아니다. 부패한 정치권력에 아무런 성찰과 반성 없이 유착된 문화행정 관료들과 관료주의 때문이다. 촛불 이후에 들어선 문재인 정부에서도 여전히 관료주의는 문화행정의 혁신과 개혁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블랙리스트 책임자 처벌도, 재발방지 대책 마련도, 적폐청산과 문화행정 혁신도, 어느 하나 만족스러운 결과를 내지 못했다. 설령 제대로 된 해결과정을 밟는다고 하더라도 문화예술인들이 받은 상처와 불신의 벽은 쉽게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는 비단 이번 정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블랙리스트 사건은 다음 정부에도 꾸준히 영향을 끼칠 것이며, 이를 위한 행정의 뼈를 깎는 변화의 노력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문화예술 현장과의 소통과 행정개혁을 이끌어가는 과정에서 문화예술기관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하는 민주적인 운영문제는 핵심적인 사안이어야 한다.

 

2019년 2월 19일(화)

문화연대

 

[다운로드] 20190219_논평_국립현대미술관장 선임 논란에 부쳐_문화정책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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