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도시재생 탐험기 ⑤ 런던올림픽, 도시재생 그리고 지역예술가들과 관계 맺기 _ 해크니위크 지역의 도시재생 사례

2016년 6월 22일culturalaction

[편집자주] 이원재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소장이 런던의 도시재생 정책과 사례를 연속기획으로 소개합니다. 코인스트리트의 주민 대안개발 사례, 런던 최대의 도시재생 사업 킹스크로스 지역과 스킵가든, 예술가들의 도시재생을 살펴볼 수 있는 해크니위크 지역 등 런던의 주요 도시재생 사례들과 정책적 배경을 문화적 가치, 지역기반 주체 형성, 거버넌스와 주민 자산화 등의 관점에서 살펴봅니다.

* 런던 도시재생 탐험을 함께 해주었던 ‘스프레드 아이’ 멤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불과 며칠 동안 사용할 스키 점프대를 설치하기 위해 600년이 넘은 울창한 원시림을 벌목해버린 사람들이 있다. 오래된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다.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회는 가리왕산의 원시림을 일방적으로 파괴했으나 정작 그 며칠 동안의 스키 점프 경기를 마친 후 1,700억 원짜리 시설을 어떻게 사용할지조차 아직 결정하지 못한 상황이다. 물론 하나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인천아시안게임, 부산아시안게임, 영월 포뮬러 원(F1) 대회 등 한국의 메가스포츠이벤트는 언제나 대규모 난개발, 예산 낭비, 시설 운영 적자 등의 대형 재난으로 귀결되어왔다. 아마 지금대로라면 평창 동계올림픽은 역대급 생태파괴, 세금낭비, 지역 빈곤화의 재난 이벤트로 기록될 것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사례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듯이 한국 사회에서 메가스포츠이벤트가 지역을 파괴하는 원인은 명확하다. 지역과 지역민의 시각에서 충분하게 시설 투자를 검토하고, 초대형 이벤트 이후의 운영 프로그램과 주체 형성에 대한 고민과 준비에 필요한 최소한의 과정조차 무시했기 때문이다. 스포츠메가이벤트가 도시의 경쟁력을 높여주고, 관광을 비롯하여 지역 수익을 창출하고, 거대한 세금으로 시설을 조성할 수 있다는 아무런 근거 없는 “장밋빛 개발주의” 혹은 “판타지형  조감도”가 오히려 지역의 생태문화와 커뮤니티를 파괴하고, 지방자치단체의 살림을 파산으로 내몰고 있다.

이번 런던 도시재생 탐험에서 방문했던 해크니위크 지역은 이와 관련하여 비교해 볼 사례라 할 수 있다. 런던올림픽 추진 과정에서 등장한 다양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시작된 해크니위크 지역 예술가들과 런던 공공기관들 사이의 협력은 메가스포츠이벤트, 도시경제 활성화 전략 그리고 근린재생 전략이 공존해야 하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런던올림픽 메인 스타디움의 건립과 퀸 엘리자베스 올림픽 공원의 조성 과정 그리고 해크니위크 지역 예술가들의 도시재생 활동은 다양한 모순과 한계에도 불구하고 대규모 도시개발 및 경제 활성화 활동과 지역 문화예술기반 도시재생의 공존 가능성을 기대하게 한다.

[사진] 해크니위크 지역에서 바라 본 런던올림픽 경기장 모습
[사진] 해크니위크 지역에서 바라 본 런던올림픽 경기장 모습
[그림] 퀸 엘리자베스 올림픽 공원 프로젝트 지형도
[그림] 퀸 엘리자베스 올림픽 공원 프로젝트 지형도

런던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처음부터 “올림픽 주 경기장을 포함하여 8개의 경기장을 모두 해체, 축소하여 친환경적이며 지속가능한 사후 활용을 목표로 건축하겠다”고 선언하여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런던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올림픽 공원 부지 자체를 쓰레기 매립장이었던 곳으로 선정하였으며, 경기장 공사 전체적으로 친환경 자재를 사용하거나 폐건축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고, 20헥타르에 걸친 땅에 나무와 꽃을 심고 가꾸었다.

실제로 런던올림픽 조직위원회는 런던올림픽 이후 올림픽 주 경기장을 8만 석에서 2만 5천 석으로 축소하였고, 수영 경기장으로 사용된 아쿠아틱 센터(Aquatic Center)를 주민을 위한 수용장으로 전환시켰으며, 다수의 경기장을 지역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근린 생활체육시설 혹은 문화시설로 활용하였다. 런던올림픽 기간 동안 선수들이 생활했던 런던올림픽 선수촌은 시민들을 위한 주택으로 제공되었다. 또한 런던 올림픽 공원은 퀸 엘리자베스 올림픽 공원(Queen Elizabeth Olympic Park)으로 2013년 재탄생하였다. 퀸 엘리자베스 올림픽 공원은 단순한 경관을 소비하는 근대공원이 아니라 주거와 상업지구를 포함한 복합문화공간이며, 히어이스트(HereEast) 등을 비롯하여 지역내 창조 산업과 주체를 지원하고 연계하는 거대한 지역문화생태계다.

[사진] 퀸 엘리자베스 올림픽 파크 모습
[사진] 퀸 엘리자베스 올림픽 파크 모습

런던올림픽이 평창동계올림픽과 다른 점은 공사 과정의 친생태, 친주민적이며 지혜로운 사후 활용방안을 가지고 있었던 것만이 아니다. 런던올림픽 조직위원회와 런던시는 올림픽 이후에도 올림픽 효과가 지속되기를 바랐고, 이를 위해 지역 주체들과의 혁신적인 거버넌스를 구축하였으며 구체적인 사후 지원 제도들을 도시재생 정책을 통해 추진하고 있다.

2012년 런던올림픽이 열린 경기장과 퀸 엘리자베스 공원 서쪽에는 약 630여 개의 예술가 스튜디오, 갤러리, 공연장, 작업실, 제작공방 등이 밀집해 있는 해크니위크와 피시아일랜드(HWFI, Hackney Wick and Fish Island) 지역이 있다. 이 곳은 서울에 비유하면 문래동과 유사해보이는 지역인데, 1980년대부터 런던의 가난한 예술가들이 저렴한 작업장을 찾아 모여들면서 독특한 지역문화예술생태계를 형성해 왔다. 그리고 예술가들은 해크니위크 지역의 버려진 공장, 창고 등을 스스로 보수하고 개조하며 창의적인 문화예술공간으로 전환시켜 왔다. 또한 해크니위크의 예술가들은 런던올림픽의 개발 과정에서 예술가들이 지역에서 축출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해크니위크의 개발 이득이 외부의 자본가들에게만 돌아가지 않고 지역 주민들과 예술가들에게 선순환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HWFI CIG’(Cultural Interest Group)라는 모임을 2011년부터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HWFI CIG’는 해크니위크 지역의 예술가들뿐만 아니라 런던자산개발회사(LLDC·London Legacy Development Corporation), 런던시, 관할 구인 해크니구와 타워햄릿구의 관계자 등이 참여하는 민관 협력형 거버넌스 모임이다. 이들은 런던올림픽 이후 지역의 삶과 문화예술생태계를 둘러 싼 실질적인 지역재생의 현안과 대응 방법 등을 고민하고 협력한다. 거대한 공공자금이 사용된 런던올림픽 이후 그 효과가 지속되기를 바라는 런던올림픽 조직위원회, 이러한 의지를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지원하기 위한 런던시와 자치구, 지역 주민과 예술가의 관점에서 이러한 협치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추진하는 지역 문화예술생태계 등이 있기에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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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화이트빌딩의 모습(위)와 해크니위크 지역의 모습

런던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올림픽 이후에도 런던 동부 낙후 지역의 대대적인 재생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런던시 산하기관인 런던자산개발회사는 올림픽 경기장을 중심으로 주변 지역의 재생을 위해 해크니위크 지역을 포함하여 많은 부지를 매입했다. 이 재생사업에는 약 3500 세대의 주택과 학교, 주민센터, 보건소, 미디어센터, 대학 캠퍼스, 정보기술(IT)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과 창조산업 클러스터 건립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런 맥락에서 ‘HWFI CIG’는 해크니위크 지역의 문화예술생태계를 위한 거점 공간 혹은 건물의 매입(‘화이트빌딩’)을 추진하였으며, 그 결과 1층엔 피자 레스토랑·맥주 양조장·전시공간이, 2층엔 6개의 예술가 스튜디오와 교육 공간이 마련되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좀 더 자세한 내용은 <예술가·런던시 맞잡은 손의 보람>(김정원, 한겨레21) 참조 http://h21.hani.co.kr/arti/HERI/H_special/41764.html)

해크니위크의 사례는 거대한 도시 개발 과정에서 예술가들의 지역커뮤니티들이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에 대한 가능성을 제시한다. 단순히 도시재생 사업에 동원되는 예술가, 공급하는 사업이자 프로그램으로서의 문화, 도시재생보다는 또 다른 도시개발에 세련된 분칠을 해주는 단절적인 활동으로는 지역을 바꾸고 대안을 찾을 수 없다. 앞으로 지역의 도시재생에서 예술가, 지역문화예술생태계가 해야 할 일은 도시재생 사업의 전체적인 맥락 속에서 문화적 가치, 삶의 가치가 반영되고 지속될 수 있는 능동적인 개입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자율적이고 자립적인 지역문화예술 커뮤니티의 구축, 지역문화예술인과 주민 그리고 공공이 함께 소통하고 협력할 수 있는 구체적이고 혁신적인 협력체계의 마련이다. (다음호에 계속)

  • 이원재 _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소장, moleac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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