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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38] 새로운 농성, 새로운 연대 <강정의 코> 이어붙이는 뜨개행동3

2018년 3월 12일culturalaction

*연재38은 <강정의 코>친구들이 매일 작성한 일지 글<강정코 통신>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할 일이 조금 남아 있었지만, 미사와 인간띠잇기 행사가 끝나자 유랑풍물단과 푼돈들 친구들이 함께 준비한 소박한 기념식으로 <강정의 코> 뜨개행동단의 일정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유랑 농악단 수수는 굿을 진행하기 위해 제일 일찍 일어나 목욕재개 하더니 밖으로 나가 현장 답사를 하고 돌아오고, 송희와 아루 역시 여느 날보다 일찍 일어나 빵, 계란, 소시지 등을 구워 내고, 사과를 깎고, 커피와 차를 끓여 사람들에게 먹인다. 속이 비면 춥다며 부지런히 음식을 만들었다. 든든히 먹고 다시 아침의 손놀림이 시작된다. 디테일이 살아있는 자수를 놓고, 물고기 귤 문어 구럼비 파도를 뜨개질해서 조그맣게 뜨고, 마지막으로 미사터 벽면을 완성하기위해 편물을 배치하고 꿰매고, 축문을 쓰고, 노래를 만들어 연습을 한다.

11시 미사시간을 훌쩍 넘겨 벼락치기 하듯 일을 마무리 하고 내려가 보니 벌써 묵주 기도 시간. 오늘도 공사장 앞에서 인간띠잇기를 하고 춤을 춘다. 웃다가도 슬퍼지고 슬퍼지다 웃게 되는 기이한 춤. 마약 4종 댄스. 어리바리하게 추는 것이 조금은 미안한 춤, 이상한 시간과 공간들. 그런 저런 안타까움에 잠길 틈 없이 <강정의 코>들은 다시 미사 천막으로 달려갔다. 깨갱 깨갱…. 유랑 농악단이 풍악을 올리고, 미사터에서 굿이 시작된다. 미사터는 성당인데, 성당 옆구리에서 굿을 하자니 재미있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했다. 깨갱 깨갱…. 유랑농악단의 일부만 왔기에 아직 어설픈 나비최랑 다크박, 오달군이 장구와 징을 친다. 심지어 장구잽이들은 장구 끈도 못 매고 우왕좌왕하는데 굿은 시작되었다. 그 와중에 축문은 읽지도 않고 절을 올리기 시작한다. 제상에는 실타래와 편물들이 과일인양, 산적인양 올려져있다. 편물을 한 장씩 제사상에 올리고 절을 한다. 지킴이들, 신부님, 수녀님들이 기껍게 절을 올리고 기원을 함께 하니 걱정되던 마음이 “역시~” 하면서 확 풀리고 자신감이 생겼다.

급조된 농악단이라 그랬는지 절부터 하기 시작한 것을 깨달았다. 축문을 얼른 찾아다 주니 수수(농악단), 구름(강정의코), 쵱헹영(강정지킴이) 셋이 제주가 되어 축문을 읽는다. “유세차~” 우렁차게 수수가 시작을 연다. 강정의 평화, 구럼비야 사랑해, 제주해군기지 반대, NO NAVAL BASE라고 쓴 현수막을 다 올리고 정문 앞에 반 뚫어진 게시판에 올레꾼들 보라고 쓴 현수막을 달러 내려가 액맥이 타령을 함께 부르고 제일 중요한 삼거리 식당으로 향했다. 강정의코 설치 기간 동안 가장 따듯하고 고마운 곳이 이곳이다. 앞에 나와 풍물을 치니 식당 옆 공소에 있던 수녀님들도 나와 환하게 반겨준다. 이곳에도 수를 놓은 목도리 현수막을 걸었다. 생명 평화 마을 강정.

 

 

 

“주인장 나오시오” 하니 이집 주인장(종환삼춘)은 일이 바빠 지금 없다 한다. “그럼 부주인장 나오시오” 하니 독도삼춘이 시크하게 나온다. 한마디 하시라하니 또 시크하게 “밥들 잡수시오” 하고는 들어간다. 로맨스조가 호기롭게 “상 내와라”하니 모두 놀라서 로맨스조에게 핀잔을 주었는데, 부주인장은 커다란 솥에든 갈치조림을 꺼내왔다. 흥이 나서 한 번 더 놀고 푸지게 밥을 먹었다. 원래 마을 안에 있는 평화센터까지 가는 것이 굿의 끝이었는데 일도 아직 다 못했고 해서 점심을 먹고는 각자 남은 일을 마무리하고 저녁에 다시 만나 굿을 하기로 했다.

굿을 정리하고 흥분된 마음으로 각자 할 일이 남아있는 장소로 향했다. 미사터 커튼은 어두워진 밤 핸드폰 조명 속에서 설치작업을 마쳤다. 그리고 평화센터로 돌아가 아까 마치지 못한 마지막 굿을 했다. 강정친구들 행사가 곧 시작될 판이라 마을 분이나 지킴이들이 없어서 어색했지만 우리끼리 자축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숙소 앞에 아름드리나무에 철민의 역작이 반으로 갈라져 감싸 있다. 철민이 대바늘로 3미터 가량 뜬 게 있었다. 참 아름답긴 한데 워낙 길어서 어디에 붙여야 할지 고민을 하다 처리를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 발상의 전환이! 반을 뚝 잘라서 붙였다. 철민은 엄청 화가 났었다는 후문이 있었으나 이도 금새 장난스러운 말들로 유야무야 풀어졌다.

 

강정마을 곳곳에 이어붙인 뜨개물들은 강정마을 분들에게 작은 위로가 됐을 것이다. 그리고 농성의 새로운 형태를 만들었다는 뿌듯함이 함께한 모두의 가슴에 남아 있으리라. 평화적이고 일상적인 연대가 예술과 결합하여 또 다른 형태의 모습을 만들어 낸다. 제주 올레길에 온 여행객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고, 공사장의 인부들이, 경찰들이 살짝살짝 눈길을 주며 미소 짓게 했으며, 사제단과 수녀님들의 눈시울을 적셨고, 강정마을 사람들에게 희망과 위로가 됐으리라. 뜨개농성은 이후 모임을 지속적으로 이어 나가 밀양으로, 또 다른 현장으로 지속적인 연대를 만들어 나갔다. 이어 붙이는 뜨개농성은 모임참가가 자유로우며 소집의 주체나 실천행동 단위가 별도로 존재하지 않으나 SNS를 통한 지속적인 관계맺음과 만남이 이어지고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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