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도시재생 탐험기 ④ 도시재생은 “시간”이라는 이름의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_ 킹스크로스 도시재생 사례

2016년 6월 15일culturalaction

[편집자주] 이원재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소장이 런던의 도시재생 정책과 사례를 연속기획으로 소개합니다. 코인스트리트의 주민 대안개발 사례, 런던 최대의 도시재생 사업 킹스크로스 지역과 스킵가든, 예술가들의 도시재생을 살펴볼 수 있는 해크니위크 지역 등 런던의 주요 도시재생 사례들과 정책적 배경을 문화적 가치, 지역기반 주체 형성, 거버넌스와 주민 자산화 등의 관점에서 살펴봅니다.

* 런던 도시재생 탐험을 함께 해주었던 ‘스프레드 아이’ 멤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시간”은 한국의 도시재생 사업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되는 문제점 중에 하나다. 언제 어디서나 대통령, 시장, 구청장의 “임기 내에” 모든 사업이 완료돼야 하기 때문에 한국의 도시재생은 늘 빠른 속도감을 특징으로 추진되어 왔다.

당연히 빠른 속도는 다양한 문제점들을 동반한다. 충분하고 합리적인 사전 조사와 타당성 검토는 배부른 소리고, 지역 주민이나 전문가들과의 소통과 협력은 사치에 가깝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경과적 조성”, “시민 참여”, “혁신적인 운영 모델”, “주민 협치와 주체 형성” 등의 언어들이 강조되고 있지만 이는 공사가 시작되기 전까지만 허용되는 의견 수렴 장치에 불과하다. 공사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한국의 도시재생 사업은 또 다른 이름의 개발사업이자 맹목적인 성과주의라는 낡은 옷을 꺼내 입는다. “시간” 혹은 “속도”의 문제는 도시재생 정책의 철학과 원칙 그리고 구체적인 과정에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지만, 아직 한국의 도시재생은 시간 혹은 속도에 대한 성찰에 매우 인색하다.

런던의 한 복판에서 지난 15년 동안 진행되고 있는 도시재생 사업 현장이 있다. 킹스크로스(King’s Cross) 지역이 바로 그곳이다. 서울의 경우로 보자면 서울역 주변과 비슷한 장소성을 가지고 있는 지역이다. 런던은 물론 유럽 최대의 도심 재생 프로젝트로 불리는 이 곳은 유럽 철도와 연계되면서 수 십 년에 걸쳐 도시재생 사업이 진행되었고, 앞으로도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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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킹스크로스 지역의 모습

킹스크로스는 런던의 중심부로 영국 산업혁명의 상징적인 장소다. 영국 산업혁명 시기부터 물류 운반과 화물 적하를 담당했던 킹스크로스는 운하, 철도, 물류 창고 등이 존재하는 유럽 교통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영국의 기존 산업들이 쇠퇴하면서 킹스크로스는 전체적으로 슬럼화 되었으며 1970년에 이르러 심각한 낙후 지역으로 전락하였고, 그 결과 1980년대부터 도심 재개발사업의 대상이 되었다.

킹스크로스의 대규모 도심 재개발사업이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되고, 재개발을 넘어 재생의 가치가 반영된 과정에는 주민들의 적극적인 개입과 실천이 큰 역할을 했다. 킹스크로스 지역의 주민들은 일방적인 재개발에 반대하며 근대 산업문화유산의 보존을 요구했고, 그 결과 적하창고를 비롯하여 약 20여 개의 산업문화유산을 예술대학 등의 공간으로 재생하는데 성공했다.

물론 이러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킹스크로스 주민들과 전문가들은 도시재생 과정 전체를 조율할 수 있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거버넌스(협치)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캠든구청, 이슬링턴구청, 런던시경, 영국교통경찰, 런던 콘티넨탈 철도, 런던 교총, 보건기관 등이 참여하는 독립적이고 효율적이며 책임 있는 협력기구로서 ‘임팩트 그룹’(impact group)을 구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임팩트 그룹은 킹스크로스 재생사업의 핵심적인 사항으로 물리적 도시재생을 넘어 “67에이커(ac)의 개발 가능한 대지”, “9.5퍼센트(%)의 실업률”, “85%의 공공주택 임대”, “67개의 다른 언어”, “영국내 10퍼센트(%)에 포함되는 빈곤”, “평균보다 30퍼센트(%)가 초과하는 보건문제” 등을 통합적이고 적극적으로 고려하였다.

[사진] 킹스크로스 재생사업 현장
[사진] 킹스크로스 재생사업 현장

킹스크로스 도시재생은 오랜 시간을 준비하고 경유하면서 통합적이고 경과적이며(Build-Up) 총체적인 접근(holistic approach)에 의한 도시재생을 모색할 수 있었다. 킹스크로스 재생사업은 오랜 시간과 많은 재원을 필요로 하는 재생사업이지만 일관되고 체계적이며 동시에 현장 중심의 유연성과 확장성을 가지고 추진되어 왔다.

킹스크로스 재개발은 ‘재개발을 통한 지역과 국가(regional and national) 차원의 경제개발의 역할(Economy)’, ‘개발의 혜택(직장, 기술교육, 주택, 교육, 건강복지)이 지역의 커뮤니티에 전달(Equality)’, ‘친환경적인 개발과 건조 환경의 질 향상(Environment)’이라는 세 가지 기본 방향 속에서 일관되게 추진되어 왔다. 예를 들어 도시재생 과정의 통합적이고 총제적인 접근을 잘 보여주는 킹스크로스 재개발의 10대 원칙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활기 있는 도시 네트워크(a robust urban framework) 

⦁ 지속적으로 이용되는 장소(a lasting new place) 

⦁ 접근성 향상(promote accessibility) 

⦁ 활력 있는 복합용도(a vibrant mix of uses) 

⦁ 보전과 연계된 개발(harness the value of heritage) 

⦁ 킹스크로스와 런던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개발(work for King's Cross and work for London) 

⦁ 장기적인 성공(commit to long-term success) 

⦁ 참여와 고무적인 개발(engage and inspire) 

⦁ 안전한 재개발의 시행(secure delivery) 

⦁ 투명한 재개발(communicate clearly and openly)
[사진] 킹스크로스 재생사업의 과정들
[사진] 킹스크로스 재생사업의 과정들

킹스크로스 재생사업 현장에서 우리 발견할 수 있는 또 다른 교훈은 바로 “경과적 조성”, “과정이 있는 재생”이다.

킹스크로스 재생사업 현장에는 “스킵 가든”(Skip Garden)이 있다. 킹스크로스 공사장 한 복판에서 운영되고 있는 스킵 가든은 도시 가드닝, 커뮤니티 키친, 제작 문화, 커뮤니티 아트, 시민 참여 워크숍 등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는 공간이다. 현재의 공간이 3번째 장소이고, 다음에 자리 잡게 될 4번째 장소가 최종적인 장소가 될 것이라는 말에서 확인 할 수 있듯이, 스킵 가든은 공사 과정에서부터 시민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주체를 형성하는 “과정이 있는 재생 공간이자 프로그램”이다.

스킵 가든은 공사 과정 전반에 걸쳐 시민들의 공간 접근을 적극적으로 보장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공간에 관심을 가지고 활동할 수 있는 주민들과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관계 맺는 과정이다. 커뮤니티 단체인 글로벌 제너레이션(Global Generation)이 운영하는 스킵 가든은 15년이 넘는 시간 동안, 82,000평에서 진행되는 킹스크로스 재생사업의 ‘오아시스’의 역할을 한다. 스킵 가든은 공사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 공사장 인근의 지역 주민들, 지구 곳곳에서 찾아오는 방문객들을 환대하고 연결하며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킵 가든 덕분에 킹스크로스 재생사업은 시간의 단절 없이 과정이 있는 도시재생, 경과적 조성이라는 새로운 경험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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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킹스크로스 재생사업 공사장에 위치한 스킵 가든(아래)과 생태 수영장
[사진] 킹스크로스 재생사업 공사장에 위치한 스킵 가든(아래)과 생태 수영장

글로벌 제너레이션 사람들은 스킵 가든을 “수 천 개의 손에 의해 가꾸어 지는 가든”이라고 부른다. 도시재생은 언제, 어느 곳에서는 수많은, 다양한 사람들의 관심과 참여를 통해 진행된다. 따라서 제대로 된, 최소한 정상적인 도시재생은 수많은, 다양한 사람들, 열정들, 관계들, 갈등들, 고민들, 상상들이 모이고 교감하고 협력할 수 있는 시간들을 필요로 한다. 지금 우리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도시재생의 수많은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 중에 하나는 바로 “시간”이라는 이름의 “인내심”일지도 모른다. (다음호에 계속)

  • 이원재 _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소장, moleact@gmail.com

 

Comments (1)

  • jung eunju

    2016년 7월 1일 at 10:47 오전

    thank you culturebb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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