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퀴어문화축제를 앞두고 : 강남역 10번 출구, 마스크, 그리고 퀴어문화축제

2016년 6월 9일culturalaction

그 날, 강남역 10번 출구

5월 22일, 강남역 10번 출구 앞은 현재 한국사회의 모순적인 단면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공간이었다. 근조 화환과 포스트잇으로 뒤덮인 10번 출구 바로 맞은 편에서는 “남자 여자 편 가르기 그만했으면. 친하게 지내요”라는 류의 피켓을 든 남성들과, 그들을 향해 항의와 비난, 조롱을 쏟아내는 이들의 목소리가 울려퍼지고 있었다. 피켓을 든 남자들이 서 있던 바로 뒤편 은행에서는 누군가가 “여성혐오가 죽였다”라고 쓰인 종이 현수막을 격하게 뜯어냈다. 그 사람은 근처에 사는 강남주민이었다. 당시 은행 안에 있었던 지인의 말에 따르면, 종이를 뜯어내는 것에 항의하자 그녀는 자신의 동네가 이런 일로 소란스러워지는 것이 화가 나서 뜯었다고 말했다 한다. 한편 반올림 농성장이 있는 8번 출구를 들러 집으로 가려던 나는 은행 앞에 서있다 쫓겨나서 다시 역 앞으로 가 피켓을 들고 서 있는 몇 명의 남자들에게 “도대체 왜 이러고 있느냐”고 물었다. 처음엔 ‘이건 다른 분 피켓이고 그 분이 화장실 가셔서 잠시 대신 들고 있는 것‘이라고 하던 그들은 내가 “대신 들어주고 있는 것도 이유가 있을 것 아니냐”고 했더니 잠시 당황하다 입을 열었다. 그들 중 한 명은 자신은 원래 광화문 근처에서 예비군의 인권을 위한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하며 한국 남자들이 군대에 가서 겪어야 하는 고충에 대해 설파하려고 했다. 그러나 옆에 있던 지인이 한국 징집제도와 국방 예산, 군납 비리의 문제를 조목조목 얘기하며 “그런 중요한 문제들이 있는데 왜 여기 와서 이러고 있느냐”고 하자 그는 입을 닫았다. 그 와중에 어떤 중년 남성은 “남자와 여자가 다른 거지, 그게 무슨 문제가 있냐. 원래 남자는 밖에 나가서 돈 벌어오고, 여자는 집에서 빨래하고 청소하고 밥하고 설거지 하는 거지”하는 말을 하며 깐죽거렸다. 얼마 후 화장실 갔다던 남자가 왔고 주변에서 지켜보던 이들도 한 마디씩 보태는 와중에 한참을 따지고 있는데 누군가가 내 손에 무언가를 쥐어줬다. 처음엔 휴지인가 싶었는데 그게 뭔지 볼 새도 없이 계속 따지다가 나중에 지하철역으로 내려와서야 알았다. 내 손에 쥐어준 그것은 마스크, 분홍색 마스크였다. 혹시라도 내가 카메라에 찍혀 일베 같은 사이트에서 신상털기나 협박을 당할까봐 걱정하는 마음에 내 손에 꼭 쥐어주었을 그 마스크. 그걸 보고 얼마나 화가 나고 속상했는지 모른다. 왜 이 여성들이 이런 자리에 와서까지 신상털기와 협박, 심지어는 그로 인해 벌어질지 모르는 또다른 위험을 걱정하며 서로의 손에 마스크를 쥐어줘야 하는가. 그날 밤, 일베 사이트에는 강남역에서의 무용담을 자랑하고 전략을 공유하는 글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들이 서 있던 은행 앞 사진을 올리고 “여기가 최적의 고지이니, 고지를 차지한 후 메갈을 자극해서 동영상과 사진으로 찍어라. 여론 뒤집을 수 있다”라고 지령을 내린다. 그리고 맨 마지막 줄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1줄 요약-메갈을 도발시켜 반이성적 행동을 사진으로 찍고 인터넷 여론전을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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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할 권리’와 화해의 여론전

집값 떨어질까 걱정하는 강남 주민과, ‘여자는 집에서 빨래하고 애나 보라’는 중년 남성과, 화해의 메시지를 이용해 추모하러 나온 여성들을 자극하고 여론전을 하자는 남성들, 그 공간에서조차 마스크를 쓰고 신상털기와 협박을 걱정해야 하는 여성들이 한 자리에 뒤엉켜있던 공간. 사고(思考)와 성찰은 후퇴하고 각자의 억울함과 개인 간의 각축만 남은 듯한 2016년 한국의 풍경이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죽어야 했던 이를 위한 추모의 공간에서 “남자 여자 싸우지 말고 화해하자”는 메시지를 들고, 심지어 이런 행동을 통해 추모하러 온 이들을 자극해서 여론전을 하자는 선동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어쩌다 이 남성들은 이런 사건을 앞에 두고, 구조의 문제를 함께 성찰하는 대신 자신이 ‘여혐으로 몰릴 것’을 두려워하고, ‘여혐 대 남혐’의 구도로 여론전을 만들어 이를 돌파할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보다 주목해야 할 사실은  이번 강남역 추모 공간 앞에 이런 논리를 들고 나타난 이들이 단지 일베만이 아니었으며, 언론은 진지하게 이것이 진정 ‘여성혐오 대 남성혐오의 문제가 아닌가’를 다루었다는 사실이다.

사회적, 구조적 차별의 문제를 개인화, 개별화하고 권리를 왜곡하는 이런 식의 대응은 성소수자 혐오 반대에 대한 대응 논리에서도 등장한다. 일례로 몇 년 전부터 버젓이 나타나기 시작한 “혐오할 권리도 있다”는 논리 같은 것 말이다. 한편 ‘역차별’은 이제 마치 공정성을 요구하는 정의의 언어인 양 곳곳에서 이용되고 있다.

“오직 스스로의 노오오력!만이 자기 자신을 구원할 수 있다”는 신자유주의적 주체화의 정언명령은 공감과 연대의 공간들을 빼앗고, 그 자리에 무력감과 혐오를 쌓았다. 일베를 연구한 김학준의 논문에서 드러나듯, 일베 이용자인 인터뷰이들이 하나같이 ‘평범한 가장이 되어 현실에 만족하고 사는 평범한 삶’을 꿈꾸고 있다는 사실은 지금 왜 ‘혐오’가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키워드가 되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그들이 꿈꾸는 ‘평범한 삶’은 이제 더 이상 누구에게나 평범한 가능성으로 열려있지 않은 것이 되었지만, ‘현실에 만족하는 것’을 이상적인 가치로 삼은 그들은 그 꿈을 가로막는 국가와 정부를 향해 분노의 화살을 향하는 대신 권리를 주장하는 타인에게 돌린다. 그들이 혐오하는 타인은 ‘현실에 만족하지 않는 이들’, 그럼으로써 자신들의 평범한 삶에 대한 미래를 자꾸만 혼란으로 몰아넣고 불안하게 만들며, 자신들의 위치를 위협한다고 여기는 이들, 차별이나 인권 같은 것들을 내세워서 ‘무임승차’하려는 이들이다. 이번 강남역 사건에 대한 재발 방지 대책을 결국 ‘정신질환자 단속’으로 결론내리는 정부의 태도에서 보여지듯, 사회적 차별과 불평등에서 비롯된 문제를 다시 또 다른 사회적 소수자들을 향해 전가하는 식의 ‘혐오 돌려막기’는 계속해서 이러한 상황들을 부추긴다.

‘혐오사회’에서 다시 맞이하는 퀴어문화축제

한편, 생존의 각축장에서 타인을 향한 혐오로 제 위치를 지키겠다는 반응들은 대상에 따라서도 다른 태도로 나타난다. 여성은 길들이려하고, 성소수자는 눈 앞에서 치우려고 하며, 장애인은 동정과 시혜의 위치에 남겨두려한다. 지난 몇 년간 보수 개신교를 위시로 한 반 동성애, 동성애 혐오 선동 세력들을 광장에서 마주하며 퀴어문화축제는 더 큰 연대의 장이 되었다. 동성애 반대로 시작한 이들의 선동이 결국 궁극적으로는 권리를 위해 싸우는 모든 이들과 여성, 이주민 등 사회적 소수자들을 향한 통제와 배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함께 깨달았기 때문이다. 퀴어문화축제는 눈 앞에 나타나지 말고, 시민으로서의 권리 또한 요구하지 말라는 사회 속에서 자신을 감추며 살아왔던 이들이,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온몸으로 ‘평범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날이다. 이제 이 축제의 장은 더 많은 ‘평범하지 않은’ 이들의 목소리가 한 데 어울리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평범을 꿈꾸는 대신 이상하고 비범한 세상을, 생존과 경쟁의 각축장 속에서 타인을 향해 혐오의 화살을 돌리는 대신 한 목소리로 우리의 요구를, 가치없는 것들의 가치를, 길들여짐 대신 튀어나오기를 바라는 모두의 몸짓이 신나게 어울리는 자리가 되길. 무지개는 그렇게 완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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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영 _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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