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국민의 손톱 밑 가시가 되려하는 ‘대한항공’(45호)

2014년 8월 15일culturalaction
[편집자주]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경제발전을 가로막는 시급히 처리해야 할 법안 19개를 하나하나 열거하며 조속한 국회 통과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그 법안 중에는 관광진흥법 개정안도 포함되어있었는데, 이 법은 송현동 부지에 호텔을 지으려고 하는 대한항공을 위해 상정된 법안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만약 송현동 부지에 호텔이 지어진다면 다른문제는 없는 걸까요? 호텔 건설에 반대하는 것이 손톱 및 가시같이 경제발전에 방해요소일까요? 그래서 이번 문화빵에서는 ‘송현동 호텔건립,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주제로 이와 관련한 문제와 쟁점들을 다뤄보았습니다.  
① 국민의 손톱 밑 가시가 되려하는 ‘대한항공’/ 이원재(문화정책센터 소장)
② 송현동 호텔건립을 둘러싼 법적 쟁점들 / 박선영(문화연대)
③[Q&A]송현동 호텔건립 왜 반대해야 하는가? / 문화정책센터

국민의 손톱 밑 가시가 되려하는 ‘대한항공’

– 경복궁 인근 옛 미대사관 부지와 대한항공의 7성급 특급관광호텔 개발사업

이원재 /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소장

 

2013년 8월 30일 <한국일보>에는 흥미로운 기사가 하나 실렸다

 
“대기업 총수들 청와대 간담회 발언 들어보면 숙원사업 발목 잡는 ‘손톱 밑 가시’ 보인다”라는 제목의 기사였는데, 8월28일 청와대에서 개최된 박근혜 대통령과 재벌 총수들 사이의 간담회에 대한 내용이었다. 이 기사에 따르면 한진그룹 회장이자 동시에 대한항공 회장인 조양호씨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관광산업 활성화를 언급하면서 “특급관광호텔의 건립규제 완화가 절실하다”라고 했고, 이는 대한항공이 경복궁 인근에 위치한 옛 미대사관저 부지에 특급관광호텔을 건립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지난 2008년 대한항공은 종로구 송현동 49번지 일대 36,000제곱미터(㎡)를 삼성생명으로부터 2,900억원에 인수, 국내 최고수준의 7성급 특급관광호텔 개발사업을 추진해왔다. 하지만 “학교 경계선 200m 이내에는 호텔 등을 지을 수 없다”는 학교보건법 조항 때문에 특급관광호텔 개발사업은 불가능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그 동안 중부교육청의 결정에 불복, 법원에 소송까지 제기하며 특급관광호텔 건립을 무리하게 추진하였으나 대법원까지 이어진 세 차례의 소송에서 모두 패하여 해당 사업의 불법성만 확인시켜 주었다.
따라서 이 날 조양호 회장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건넨 이야기는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대기업 중에 하나인 한진그룹 및 대한항공의 재벌 총수가 통치권자인 박근혜 대통령에게 법을 피해 특급관광호텔 건립사업을 추진 할 수 있도록 특혜를 요구한 것이다. 더욱이 이 기사에서 대한항공 측은 “러브호텔을 짓는 것도 아니고 공연장, 갤러리 등을 갖춘 최고급 복합문화관광시설을 지으려는 것인데 이를 막는 건 그야말로 손톱 밑 가시나 다름없다”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대한항공은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관광기업이다

대한항공 스스로 “세계 항공업계를 선도하는 글로벌 항공사”라 자칭할 정도로 대한항공은 국제적인 기업이며, 매년 총 수익이 12조가 넘을 정도로 거대한 재벌기업이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은 대한항공의 텔레비전 광고를 통해 전 세계의 아름다운 여행지들에게 마음을 빼앗겨 보았을 것이다. 하지만 역시 현실은 광고와 너무나 다르다. 대한항공은 지금 이 순간에도 소비자들에게 그토록 아름다운 여행과 추억을 판매하고 있지만, 정작 경복궁 인근의 옛 미대사관 부지에 특급관광호텔을 짓기 위해서는 돈과 권력으로 법제도를 바꾸는 반칙도 서슴지 않을 정도로 흉측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사실 정부를 향한 대한항공의 떼쓰기는 이미 이명박 정부 시절부터 진행되었는데, 당시 문화체육관광부와 국토해양부가 나서서 대한항공의 계획을 지원해주었고, 특히 문화체육관광부는 해당 재판이 진행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2011년 6월에 대한항공의 특급관광호텔 건립사업을 해결해 주기 위한 <관광진흥법 일부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대담함을 보여주었다. 다행히 이 법안은 당시 민주당 국회의원들의 노력으로 폐기되었는데,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문화체육관광부는 또 다시 2013년 6월 <관광진흥법 일부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이 개정안을 통해 대한항공이 해당 지역에서 학교보건법을 우회해서 특급관광호텔을 건립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주고자 한다. 정부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가 직접 나서서 학교보건법이 규제하고 있고, 법원이 판결을 통해 지키려 했던 교육 환경의 공공성을 파괴하려 하는 것이다.

대한항공의 경복궁 인근 특급관광호텔 건립사업 추진은 역사문화의 관점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다

법률적인 절차 이전에 경복궁 인근, 송현동 자락에 특급관광호텔을 짓겠다는 대한항공의 괴이한 발상 자체에서 우리는 대한항공이 가지고 있는 역사, 관광, 문화 등에 대한 인식 수준을 확인할 수 있다. 해당 부지는 누가 보더라도 한국의 역사문화에서 너무나 소중하고 중요한 공간이다. 특정 기업이 사유화해서 호텔을 지을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이 곳은 대한항공의 특급관광호텔 개발사업 수준이 아니라 서울이라는 세계적인 고도시의 핵심적인 장소성을 내재한 역사문화 공간으로서 접근돼야 한다. 송현동 자락은 역사문화적 가치는 물론 현재의 시점에서만 보더라도 북촌 및 서촌의 한옥과 전통문화, ‘광화문-청계천-서울광장’으로 이어지는 열린공간, 광화문 권역의 비워질 행정기관의 공간들, 용산으로 이전 될 미군기지 부지, 새롭게 조성되고 있는 기무사 부지터의 현대미술관 분관, 이미 젠트리피케이션을 통해 상업화되고 있는 삼청동 일대, 서울시가 주목하고 있는 한양도성과 성곽도시 전략 등 광화문 권역, 서울의 도시구조 전체와의 관계성 속에서 공간 활용이 고려돼야 할 중요한 장소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역사문화적으로, 국가적으로 소중한 공간을 대상으로 재력과 정치권력까지 무리하게 동원하며 오직 자신의 위세를 과시하기 위해 특급관광호텔 건립사업을 고집하고 있다.
지금 대한항공이 법제도까지 거스르며 무리하게 추진하고 있는 “7성급 특급관광호텔 건립사업”은 서울이라는 고도시의 역사문화를 파괴하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지금 그 곳에 필요한 것은 대한항공 측의 주장처럼 “최고급 복합문화관광시설”이 아니라 공간의 정의와 생태 그리고 문화를 품을 수 있는 “오래된 미래들”이다.
이번 사태로 오랜 시간 동안 “국적기”라는 개념을 통해, 국가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기업으로 성장해 온 대한항공의 뒷모습을 본 것 같아 씁쓸하다. 그 아름답고 화려한 관광산업, 항공산업 이면에 숨겨져 있던, 개발과 이윤만을 쫓는 맨 얼굴과 너무 가깝게 마주한 것 같아 불편하다. 더 늦기 전에 대한항공은 송현동 자락에 대한 무모한 특급관광호텔 개발사업에 대한 욕심을 버려야 한다. 물론 포기는 빠를수록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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