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G를 이해하기 위하여]영원히 고통 받는(42호)

2014년 7월 3일culturalaction

영원히 고통 받는

임효진 (reykjavik59@gmail.com)

 요즘 인터넷에서는 유행하는 말로 ‘영원히 고통 받는 OO’ 식의 문장이 자주 눈에 띈다.
대게는 짤방(이미지)과 함께 올라오는 데 활용도가 아주 높다. 유명 인사들의 잘못 찍힌 사진 및 과거사진들이 여기저기 합성되어 특정한 상황을 표현하는 강조기호로 사용 될 때 이미지의 주인공에게 우리는 영원히 고통 받는 지위를 부여한다. 대표적으로 지난 6.4선거유세 당시 찍힌 사진 한 장으로 고승덕은 ‘영고’계의 레전드가 되었다. 시간이 좀 지나 게시판의 320페이지쯤으로 밀려난 후에도 그들은 확실히 영원히 고통 받을 것이다. ‘영원한 고통’이라는 지극히 철학적인 주제가 우리의 카톡 상태메세지를 점령해 버리기까지, 대단한 계기가 있을까 해서 찾아봤다.
‘끝없이 이어지는 실시간 전투와 협동을 통한 팀플레이, 두 팀은 각기 독특한 특성과 플레이스타일을 자랑하는 강력한 챔피언을 소환하여, 다양한 모드의 전장에서 정면 대결을 펼칩니다.’(League of Legend 공식홈페이지 설명 글 발췌) 요즘 가장 핫한 게임인 리그오브레전드 League of Legend , 흔히 ‘롤’이라고 부르는 온라인 게임은 다른 AOS 게임과 비교해도 팀워크의 중요도가 매우 높은 편이라고 한다. ‘영고’라는 말은 롤 게임 유저들 사이에서 퍼져 나왔다. 다섯 명이 한 팀이 되어 게임을 하는데 나머지 네 명이 실력이 낮고 유독 한 명만 분발하는 경우 그 한 명의 플레이어를 가리켜 ‘영고(영원히 고통 받는 라인)’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나. 그니까 이 ‘고통’이 갖는 최초의 의미에는 당사자의 책임소지 보다는 주변의 상황에 의해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인 희생자라는 느낌이 강했다.
 확실히 유행어의 확산은 퍼다 나르는 집단의 정체성에 의해서 질과 양이 결정된다. 현재 가장 활발히 ‘영원히 고통 받는 짤’들을 생성해내는 집단은 아이돌 팬 커뮤니티를 비롯한 특정 장르나 인물의 오타쿠들이고 이들은 이미지 활용에 능하기 때문에 트위터나 다른 많은 인터넷커뮤니티에서 양적으로 우위를 점한다. 최초의 유래는 롤이라는 게임이었지만 이젠 게임이나 다른 특정 콘텐츠의 덕후가 아닌 일반 사람들의 핸드폰 앨범에도 영원히 고통 받는 짤들이 하나씩 쯤은 저장되어 있으니 확실히 ‘영고’는 ‘전국구유행어’ 반열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이제 네티즌들은 잘못 찍힌 한 장의 사진으로 영원히 고통 받는 감투를 쓴 많은 연예인과 정치인들에게 (실제로 원본에 대해 갖는 감정이 좋아하는 감정이든 싫어하는 감정이든) ‘고통’과 ‘연민’을 투사하는 과정 자체를 유희로 즐기기 시작했다.
 영원히 고통 받는 존재를 쫓다보면 신화 속 인물들이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프로메테우스, 시지프스, 탄탈로스. 이 인물들은 모두 신들을 기만한 대가로 영원한 형벌을 부여받는다. 독수리에게 매일 간을 쪼아 먹히거나 돌을 산 정상으로 굴려 올리는 영원한 노역에 시달리고, 물과 과일에 둘러싸여 영원히 허기와 갈증으로 고통 받는다. 결과적으로 그 고통에는 인간이 가질 수 없는 ‘영원함’의 지위가 담겨져 있다. 중학교 과학시간, 당시 새로 부임했던 젊은 여선생님이 위치에너지를 설명하다가 대뜸 칠판에 큰 산을 하나 그려 넣고는 영원히 돌덩이를 굴리는 남자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올리면 떨어지고 올리면 떨어지고를 반복하는 퇴근 없는 영원한 노동은 생각해보면 낯선 신화 속 이야기가 아니었다.
 우리가 평소에 영원하다는 말로 상정하는 시간은 아마 통계치가 가리키고 있는 인간의 평균수명 정도일 것이다. 내 동창 Y는 심각한 건강염려증이다. 수시로 병원에 가 건강검진을 받는다. 불시에 아주 기분 나쁜 축축함으로 다가와 어느 새벽을 뜬눈으로 지새우게 하는 이 감정의 핵심은 일상의 모든 희노애락이 앞으로 몇 십년간은 적어도 이 삶이 불시에 끝나지 않고 지속될 것이라는 신실한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기분들이라는 사실이다.
 영원할 것 같은 사랑은 끝이 나고, 아주 작은 사건이 내 평생에 걸쳐 고통을 주기도 한다.
2012년의 ‘이게 사는 건가!’와 ‘멘붕’으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말들이 진화해서 ‘영원히 고통 받는’ 화자들을 낳았다. 우리는 영원을 동경하면서 동시에 분 단위로 새로 태어나는 시간에 사는 것이 익숙한 사람들이다. 영원한 고통을 이야기하며 웃고 있는 타임라인은 곧 다른 유행을 쫓아갈 테지만 어떤 ‘고통’들은 정말 세심히 노려볼 필요가 있다. 영원히 이야기해야 할 누군가의 고통들 말이다.
고승덕 서울시교육감 후보가 3일 오후 서울 강남역에서 퇴근길에 오른 시민들에게 유세를 하던 중 딸에 대한 미안함을 소리쳐 전하고 있다. 2014.6.3/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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