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재난, 상징화 그리고 애도의 규격화(42호)

2014년 7월 3일culturalaction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78일이 지났습니다. <문화빵> 42호 특집은 세월호 참사와 한국의 재난자본주의, 그리고 재난에 대응하는 예술행동의 사례를 돌아보는 꼭지로 구성되었습니다.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라는, 그리고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한국 사회의 온갖 문제점(노동유연화, 민영화, 규제완화 등)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시민들의 요구가 계속되는 지금, ‘기억, 행동, 연대’의 관점으로 한걸음 한걸음 내딛기 위해 함께 읽어보길 권합니다.

1.재난, 상징화 그리고 애도의 규격화 – 김종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2.한국적 재난자본주의의 세 가지 특이성 –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3.참사는 여전히 진행중이다 ; 3.11 이후 재난에 대응하는 일본 공연예술계 다시보기 – 정진세, 독립예술웹진 인디언밥 편집인

 

 

 

재난, 상징화 그리고 애도의 규격화

 

 

김종곤, 한국철학사상연구회

 

 

비극적이고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해 주체의 상징적 재현체계가 붕괴되는 것을 우리는 ‘트라우마’(Trauma)라 부른다. 이 때 ‘사건’은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의 정신적 질서와 규범을 따르지 않는, 그래서 이해되지도 믿어지지도 않는 경험이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트라우마 경험 이후 그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조건’이 주어져 있는가라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트라우마는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사건으로 남겨지지 못하고 어떤 계기를 통해 경험자를 그 사건이 발생한 과거로 데려가면서 재경험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4월 16일에 발생한 세월호 침몰사고를 통해 경험한 트라우마는 치유될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어 있는가? 사고 이후 심리치료 전문가가 현장으로 달려가 희생자들의 가족을 위한 상담을 진행하였고, 현재에도 그것은 진행되고 있다. 또한 안산에서는 트라우마센터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세월호 트라우마는 직접적인 당사자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사고는 우리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일부분이 희생된 사고였지만, 어떤 환유적 관계를 통해 사회 전체에 파장을 불러일으킨 “아포리아의 순간”이었고, 사고가 발생한지 2달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트라우마 이후에 나타나는 정서적 반응인 불안, 분노, 슬픔 등은 지금까지도 가시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세월호 사고가 이처럼 직접적인 경험자도 또 사적으로 긴밀한 관련도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트라우마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우선 수학여행을 가던 어린 학생들이 너무나도 많이 희생되었다는 점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건 이후 우리의 분노와 충격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가만히 있어라’는 선내방송만을 반복하는 가운데 자신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고 기본적인 의무마저 방기한 세월호 선장, 침몰해가는 배를 바라보며 적극적으로 탑승객들을 구출하지 않은 해경, 그리고 온갖 비리와 탈세로 오직 이윤만을 추구한 유병언 일가 등을 그 이유로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들은 끝없이 나열될 수 있을 것 같고 또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세월호 참사는 한국 사회가 지닌 ‘총체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여기에 바로 구난과 구조의 책임이 있는 국가가 이 사고를 방관하다시피 대응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선장, 해경, 유병언 일가와 다르지 않게 무책임하였고 무능력하였다는 점이다. 그것은 사람들의 정신세계 속에서 자리 잡고 있던 ‘국가의 의미’, 즉 국가는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할 의무를 가지고 있으며 그래서 우리는 국가가 존재하는 ‘한’ 안전한 삶을 살 수 있다는 신뢰와 믿음이 붕괴되는 순간이었다.

 

사랑의 대상이었던 국가는 그 사랑이 유지되기 위한 기본적인 책임마저도 다하지 않았고, 또 사랑을 배신한 것에 대한 진정어린 사과조차 하지 않았다. 사랑의 이면은 증오이기에 사람들은 국가에 대해 분노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책임을 물었다. 하지만 국가는 세월호의 희생자들의 죽음에 있어 한편의 가해자임에도 불구하고 책임의 전치를 통해 이러한 대중적 분노를 특정 대상으로 향하도록 조직하면서 자신의 결핍을 봉합하려고 한다. 국가는 선장과 승무원 그리고 유병언 등을 ‘악(惡)’으로 지목하고 처단할 것을 공표한다. 동시에 희생자들은 그들 대부분이 어린 학생들이라는 점에서 ‘착함’, ‘나약함’이라는 감성적 이미지를 통해 오로지 ‘선악(善惡)의 대결적 구도’만을 남긴다. 국가는 이 구도를 통해 선과 악의 가운데에 위치하면서 선을 보호하고 악을 물리치는 ‘해결사’로 등장하면서 침몰하고 있던 세월호에서 방송되었던 오직 하나의 목소리, ‘가만히 있어라’를 반복한다.

 

하지만 이것은 국가의 강력한 통제와 억압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고 이후 사람들을 사로잡은 것은 살아남은 자로서, 또 이들을 지켜주지 못하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하였다는 죄의식이다. 그러나 주체의 코나투스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마조히즘적인 공격성향을 외부대상으로 돌릴 필요가 있다. 마조히즘은 원래 사디즘이 자신을 향한 것으로서 그 성격 상 사디즘과 하나의 몸이다. 국가는 이 지점에서 사람들이 가진 사디즘적 성향의 ‘분노의 파토스’를 인출하고 조직한다. 그리고 그것은 대속(代贖) 의례인 ‘희생제의’와 같이 선원들에 대한 사법적 처리, 그리고 국가총동원령을 방불케 하는 유병언 검거 작전으로 이어진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희생제의라는 엄격한 장치 뒤에는 특히 대상을 바꿔치기하는 폭력 속성의 ‘교묘한’ 조작이 숨어 있다.” 문제는 그러한 조작이 곧 사고 이후 트라우마를 왜곡된 표상으로 ‘상징화’한다는 데에 있다는 점이다. 사고의 책임은 선원들과 유병언 일가에게만 국한될 수 없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순수사태로서의 세월호 침몰 사고를 이전부터 존재해왔던 악에 의한 선의 희생으로만 상징화된다. 세월호 사고는 무책임한 몇 사람, 이윤에 눈이 먼 몇 사람에 의해 선하고 용감한 사람들이 희생된 규모가 큰 일반적인 살인사건이지 결코 정치의 영역에서 다루어져야 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탈정치화’는 성공하는 듯 보인다. 사고 2달이 지나면서 대다수의 세월호 관련 방송은 ‘범죄자’ 개인 유병언을 쫒는데 집중하고 있으며, 사람들의 관심도 점차 월드컵으로 조심히 옮겨갔다. 사람들은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죄의식을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걸어두고 다시 ‘대한민국’을 외친다. 하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아직도 거리에서는 국가를 향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규명을 하라는 촛불시위는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아직 떠나보내지 못하고 백방을 뛰어다니면서 정보공개와 책임자 처벌 그리고 재발방지시스템 구축을 요구하는 가족들이 있다. 이들은 아직 죽은 자를 떠나보낼 준비도 떠나보내고 싶지도 않은 것이다. 이는 세월호 사고에 대해 우리 사회가 완전히 ‘애도’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국가는 앞서 말한 것처럼 해결사의 역할을 자임하면서 ‘자아 이상과 금지적 초자아’라는 부성적 권위의 이중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즉, 한편으로 국가는 희생자와 슬픔에 빠져 있는 사람들과의 동일시를 시도하면서 희생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면서, 거짓인지 진실인지 알 수는 없는 눈물 흘리는 아버지의 형상을 가진다. 그것은 내가 사랑했던 아버지의 모습이면서 사랑하고 싶은 아버지의 모습이다. 그리고 세월호의 트라우마를 경제위기로 환원하고 그만 슬퍼할 것을 요구한다. 또 한편으로 그 국가는 옥내로 제한한 분향소에 조문하는 것 외에는 어떠한 애도의 방식도 불허하면서, 촛불을 들고 숨김없이 사고의 진상을 규명하고 진실을 밝히라는 시민들을 향해 아버지의 법을 말하는 권위적이고 엄격한 아버지이다. 그 아버지는 국가의 절대적 필요성을 내세우면서 자신에 대한 증오를 거세공포를 통해 철회하고자 요구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이 둘의 모습은 하나를 향하고 있다. 그것은 다시 국가를 애착의 대상으로 사랑하게 하는 것이다.

 

아니러니한 것은 사고를 통해 ‘아버지=국가’에 대한 이상은 회의적이게 되었지만 오히려 그 것이 국가 권력을 강화한다는 점이다. 이는 마치 아버지 살해 후 살해된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을 통해 사후복종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아버지에 의해 가로막혀 있던 어머니와 누이에 대한 욕망을 실현하기 위하여 아들들은 아버지를 살해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부친살해 후 아들들은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서로 간에 상잔을 벌여야 한다는 것을 잘 알게 된다. 아무것도 얻지 못한 아들들은 아버지의 살해에 대한 죄의식을 그에 대한 사랑으로 전치시키고 죽은 아버지의 말씀을 법으로 받아들인다. 즉, “아버지-사물의 살해(오이디푸스적 소원의 실현)야말로 상징적 금지를 초래하는 장본인”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죽은 아버지를 다시 살려내는 것은 다름 아닌 아들들에게 내재되어 있던 욕망이다. 세월호 트라우마로 인해 경기가 위축되고 나라의 경제가 흔들릴 수 있다는 위기설과 그것을 극복하고 풍족한 미래를 향해 정진하자는 미래주의라는 도구는 사람들의 욕망을 재료로 삼아 국가의 상징성과 현실성과의 틈새를 땜질하는 것으로 이용된다.

 

문제는 프로이트도 지적하듯이 애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그것은 멜랑꼴리로 전개될 수 있다는 것이다. 멜랑꼴리(Melancholie)는 우울증에서 볼 수 있듯이 자존감의 상실과 무기력함이라는 ‘상태’를 유지하도록 한다. 이는 초자아가 자아를 파괴하라고 명령하는 ‘외설적 아버지’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여기서 남는 것은 오로지 그 외설적 아버지의 욕망이며, 따라서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국가는 애도를 제한하고 규격화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이 사고와 관련하여 ‘너희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들’이며 ‘가만히 있으면 되는 자들’, 즉 ‘죽은-존재’가 될 것을 요청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국가는 비정치의 정치를 통해 ‘정치적 메랑꼴리’ 속에 애도하는 자들을 가두고 있는 것이다. 세월호 사고에 대한 애도가 정치적이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죽은-존재’로 살아가라는 요청에 맞서 애도작업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분향소를 다시 찾고 헌화를 하자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또 세월호의 희생자들의 죽음을 인정하고, 가슴에 묻어라는 것도 더더욱 아니다. 그것은 다시 규격화된 애도의 형식으로 돌아가면서 원환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문제는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트라우마를 원한의 감정으로 전이시키고 거짓애도와 눈물의 퍼포먼스를 통해 진정한 애도를 가로막는 ‘기억의 탈정치화’와 ‘망각의 정치’에 있다. 그렇기에 애도작업은 그러한 전이의 관계를 단절하고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기억과 대면하면서 ‘정치적 애도’로 만들어 가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애도를 ‘시체 장사’니 ‘빨갱이들의 선동’이니 떠드는 이들을 향해 그리고 그 뒤에서 팔짱을 끼고 조용히 묵인하고 암묵적으로 지지하는 세력들을 향해 인간의 생명만큼, 그것도 국가 안에서 죽고 사는 문제보다 더 정치적인 것이 어디에 있는가라고 따져 물어야 하는 것에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물음은 보수 진영을 향해있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진보진영에게도 돌려져야 하는 물음이다. 6.4 지방선거 이후 어떤 사람들은 바닷물 속에 300여명의 어린 아이들을 수장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변한 것은 없다’, ‘정신을 못 차렸다’고 한탄한다. 오히려 한탄해야 하는 것은 애도를 정치화하지 못한 진보정당을 비롯한 진보운동 진영에 돌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세월호 참사와 정치를 분리하고자 한 정략에 맞서 ‘우리는 다르다’, ‘바꾸자’라는 정치적 선명성만을 내세우고 그것에 대한 확인도장으로 노란리본을 선거포스터에 붙이는 것이 곧 ‘정치’인가라고 반문해야 하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면 진보가 보수와 다른 것은 없다. 따라서 바꿀 필요성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결과 교육감선거를 제외하고는 여당이 원래 불리할 수밖에 없다는 지방 선거에서 새누리당은 선전하였고, 반면 새정치연합과 진보정당들은 실패하였다. 이전에도 그랬듯이 실패한자들은 성공한자들과의 경쟁에서 패배한 것이 아니라 그 스스로 성공한자들을 위한 경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치적 애도는 대의제민주주의라는 형식 안에서 권력의 자리 수를 채우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현 국가의 무능력함을 주장하며 권력의 전복을 꿈꾸는 자들은 선거에서 이기는 것이 앞으로 더 이상 세월호와 같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방지하고 안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세상을 바꾸어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말은 이미 오래전부터 해왔던 것이 아닌가? 그리고 현재까지 실패해오지 않았던가?

 

필요한 것은 ‘죽은 자와의 연대’를 통한 ‘새로운 사유’이다. 이는 굿을 통해 죽은 자와 접신하고 그들의 넋을 기리는 동시에 산자의 슬픔을 달래자는 그런 의미에 국한된 연대가 아니다. ‘죽은 자’는 우리 삶의 경계 밖에 있는 무(無)가 아니라, 그들은 죽어도 죽지 않는 역사가 되어 우리의 미래적 삶을 바꾸는 기억으로 항상 현재화된 존재들이라는 사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4.19와 5.18 그리고 7,80년대의 민주화 항쟁 속에서 죽어간 자들을 기억하고자 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세월호 참사에서 죽어 간 자들을 기억하는 것 역시 과거로부터 그 기억을 현재화시켜 지금 우리를 진단하고 반성하며 미래의 삶, 다시 말해 국가와 자본의 욕망에 따라 질식된 현재와 같은 삶이 아니라 ‘생명’이 숨 쉴 수 있는 그런 삶을 기획하고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는 죽은 자의 요청에 따라 저항할 것인가 아니면 묵인할 것이라는 햄릿의 딜레마에 처해있는 것이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 이 글은 제7회 맑스코뮤날레 3차 맑스주의 포럼 <재난, 상징화, 그리고 통치성의 정치>에서 발표한 글을 요약한 것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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