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청소년 노동 현장르포 : 효주씨의 밤일(37호)

2014년 3월 24일culturalaction
5월 1일은 노동절(May Day)입니다. 노동절은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노동자들이 모여 노동운동을 통해 희생된 노동자들을 추모하고, 연대의식을 다지는 날입니다. 이번 문화빵 37호에서는 노동절을 맞아 가장 열악한 근로조건과 차별 속에서 놓여있는 청소년들의 노동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한국사회에서 노동을 하는 청소년들은 비정규직법과 연령주의, 두 가지 억압구조에 따른 이중 착취의 속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청소년 노동에 대한 편견과 오해는 이 문제에 대한 토론과 논의마저도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청소년 노동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청소년 노동문제의 얽힌 실타래를 푸는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①청소년 노동을 바라보는 수상한 관점 –  배경내(인권교육센터‘들’,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②[청소년 노동 현장르포]효주씨의 밤일 – 강효주(문화연대 활동가)
③[좌담]청소년과 노동 그리고 청소년 노동운동 – 정리 : 최지용(문화연대 자원활동가)

 

[청소년 노동 현장르포] 효주씨의 밤일 

강효주/문화연대

mycrom13@naver.com

 남색 모자를 쓴다. 검은색 머리망 사이로 머리카락이 빠져 나오지 않게 머리카락을 구겨 넣는다. 시선을 아랫도리로 옮긴다. 지퍼는 잘 닫혔는지, 신고 있는 신발이 검은 구두가 맞는지 확인한다. 가끔 의도한 건 아닌데 어짜자고 그랬는지 나도 모르게 지퍼를 내리고 있는 경우가 있어 민망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윗도리 검은색 티셔츠 OK. 검은색 깔맞춤 완성. 휴대폰을 보니 9시 55분. 지금 내려가면 10시 정시 출근에 무사히 안착할 수 있다.
 00구 00역 사거리에 있는 맥도날드. 줄여서 ‘맥날’이라 불리는 곳. 우리 매장 바로 건너편엔 롯데리아가 있고, 그 바로 옆에 KFC가 있다. 정크푸드의 절대지존 자리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두 경쟁상대와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며 24시간 내내 풀 가동하면서 37명의 알바생을 닦달하는 곳( 비정규직 37명-크루 27명, 라이더 10명, 정규직 5명). 그 결과 한 달 매출 3억원을 뽑아 내는 곳. 난 여기에서 일한다. 그것도 심야 알바생으로. 금, 토, 일 심야에 맥날의 카운터를 담당하며 햄버거와 음료를 챙기는 것은 물론 마감청소와 다음날 영업 준비를 하는 것이 나의 주업무다.
 지문인식과 함께 출근 완료. 일을 시작하기 전 반드시 지문인식을 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돈을 제대로 못 받는다. 몇 시에 출근하고 퇴근하는지, 언제 휴식하고 복귀하는지 지문인식을 통해서 나의 움직임이 기록된다. 이것을 기준으로 내 월급이 나온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 지문을 채취 하길래 움찔 놀랐다. 우선 신체정보를 사용해도 되는지 먼저 동의를 구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지문인식으로 출퇴근을 기록하는게 낯설었다. 더구나 이렇게 기록된 내 지문이 전 세계 맥도날드 지점에서 공유되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잠시 스쳤다. 불쑥 이건 인권침해?, 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한 푼돈이 아쉬운 상황에서 내 지문이 대수랴 싶어 그냥 넘어갔다. 여기에서 만난 알바생이나 매니저 중에서도 이것에 대해 큰 문제를 인식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다들 제 시간에 지문찍기에만 열중할 뿐이다.
 그나저나 여기서 일한지 벌써 세 달이 넘어간다. 이곳에서 난 ‘언니’, ‘누나’ 혹은 00으로 불린다. 동료들은 대부분 나보다 한참 어리다. 십대후반에서 이십대 초반의 동료가 근무한다. 이들은 대체로 오전이나 저녁 시간대에 일한다. 낮 시간대에는 나보다 나이 많은 30십대 후반에서 사십대 초반의 ‘언니’들이 근무한다. 대부분 이들은 1년 이상 또는 못해도 6 개월 이상  나보다 근속 개월이 높은 선배들이다. 그렇다고 이곳을 거쳐간 사람들의 평균 근속 개월이 높은 건 아니다. 갈 데가 없어 어쩌다 보니 본의 아니게 잔뼈가 굵어진 사람들이다. 밀물처럼 알바생이 들이치고 썰물처럼 빠져 나가는 것이 이곳의 특징이다. 일이 힘들기 때문에 견디지 못하고 도망가거나 이런저런 핑계를 되면서 3개월도 못가서 그만둔다. 남은 자들은 어쩌다 보니 돈벌이 수단이 이것밖에 없어 떠나지 못한 사람들이다.

저렴한 <5210>원 내 인생

 우리가 받는 시급은 한끼 밥값도 안되는 5210원. 이 돈으로 맥도날드에서 가장 유명한 빅맥세트(5300원)도 못 사먹는다. 직원 할인도 안 해준다. 쓸데없이 공평해서 5210원이 더 밉쌀스럽다. 언젠가 영남이(K대, 20)에게 이 시급받고 어떻게 사느냐고 투덜거렸던 적이 있다. 그 녀석은 같이 맞장구 쳐주기는커녕 그래도 이곳은 알바생을 잘 챙겨준다고 옹호했다. “누나, 편의점이나 까페 알바생들은 5,000원도 못 받아요. 돈을 떼이기도 하구요. 그래도 여긴 돈 떼먹진 안잖아요.” 녀석의 말이 맞다. 맥도날드는 다른 곳에 비해 고맙게도 월급을 제때주고, 비정규직 법을 준수하려고 노력한다. 최소로, 법에 안 걸리는 아슬아슬한 수준에서 시급을 준다. 심지어 심야수당도 주고, 한 달 근무시간이 60시간이 넘으면 주휴수당, 휴가비를 챙겨 준다. 간혹 드물긴 하지만 매니저들이 뭔가에 홀린 날엔 연장수당도 준다. 그러나 휴일 수당이라던지 성과급이라던지 다른 수당을 받기 어렵다. 그런데 수당을 받으면 뭐하나. 4대 보험료로 월급에서 공제되서 나간다. 월급 명세서를 보면서 벼룩의 간을 떼어 먹는게 어떤 것인지 실감한다. 그래도 난 주중 알바생들보다 벌이가 낫다. 심야수당이 적용되서 1.5배인 7,800원 정도 받는다. 수지(고2, 18)는 어서 학교를 졸업해서 심야알바는 뛰는게 소원이다. 한달에 120-130시간 정도 일하지만, 한달에 받는 돈은 70만원 남짓. 야간을 하면 같은 시간 일을 해도 훨씬 많은 돈을 벌 것만 같다. 그래서 마주 칠 때 마다 수지는 야간업무에 대해 꼬치꼬치 물으면서 꿈을 키운다. 내가 야간일이 힘들다고 한숨을 쉬고 있으면, “어차피 고생하는거 좀 더 고생하죠, 주중 뛰는 것보단 훨씬 돈 많이 받잖아요” 이런다. 그 아이는 어서 빨리 미성년자에서 풀려나길 바라며 법을 저주한다. 난 한 달에 110-120시간 정도 일하는데 80만원 남짓 받는다. 이 세계에선 10만원 더 버는 것도 간절한 꿈이 된다.
 시급<5210>원을 받고 어떻게 사냐고 광분했지만 살아보니 살아졌다. 죽으라는 법은 없다는 말 맞다. 하지만 삶이 저렴하고 비루해졌다. 어쩔 수 없이 모든 것을 벌이에 맞춰 생활해야했다. 즐겨 먹던 커피 한잔 값이 5-6천원이었다. 한 시간 시급과 같은 가격. 일을 시작하고 몇 일 뒤 커피숍에 갔는데 커피 한잔이 삼겹살 한근처럼 느껴졌다. 한 시간 동안 카운터에 서서 “안녕하세요, 맥날입니다”를 외쳤던 걸 떠올리니 차라리 안 마시고 한 시간 소리 안 지르지 싶었다. 대신 3500원에 20번 먹을 수 있는 믹스커피로 바꿨다. 식당에서 사먹는 한끼 밥값에도 벌벌 떤다. 죄다 시급보다 비싼 5-6천원. 그 밥을 먹고 나면, 한 시간 더 일을 해야한다는 부담감과 함께 나도 모르게 사치했다는 죄의식이 생긴다. 그래서 일을 시작 한 후에는 편의점에서 삼각김밥과 라면을 사먹는다. 배가 많이 고픈날엔 삼각김밥 두 개와 사발면 하나. 그래도 2500원 정도 밖에 안든다. 뭔가 좋은 음식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3,500원짜리 도시락을 사먹는다. 이외에도 편의점엔 4천원 이하로 배를 채울 수 있는 다양한 인스턴트 음식들을 섭렵하며 생존할 수 있다. 편의점은 나에게 저렴하게 생존하는 법을 알게 해주었다. 반면 다이소는 천원으로 알뜰하게 살림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그곳은 천원에 살 수 있는 온갖 생활 필수품이 즐비하다. 베트남이나 중국, 인도네시아 등에서 물 건너온 제품을 아주 싼 가격에 살 수 있다. 원산지를 볼 때마다 나보다 훨씬 싼 임금을 받고 땀 뻘뻘 흘리면서 일하는 먼 나라 노동자의 얼굴이 스치지만, 눈을 질끈 감고 계산한다. 편의점과 다이소는 나의 삶을 지탱해주는 실질적인 지원군이다. 그것들이 없었다면, 내 살림살이는 어땠을까? 상상이 안간다. 이보다 더 나은 대안이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시급이 더 오르지 않고, 물가가 하락되지 않는 한 난 <편의점>과 <다이소>를 벗어날 수 없을 것 같다. 이 두 곳은 내 삶의 필수요소가 되어 버렸다. 내가 터득한 이 삶의 노하우를 귀중한 정보인 것처럼 주변 알바생에게 알려주면, 그들은 하나같이 “언니도 그래요? 나도 거기만 가요”이런다. 뭔가 뒤늦게 알고 뒷북치는 기분이 들어 멋쩍지만, 어쨌든 <5,210>원의 시급은 날 저렴한 세계로 인도했다.

“여기에서 한시도 가만히 있으면 안돼요”

 출근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커피 기계 청소다. ‘미쿡’에서 물 건너온 기계라 조심히 다뤄야 한다. 고장나면 ‘미쿡’에서 부품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골치 아프다. 그것만 빼면, 스위치만 눌러주면 자체 청소기능이 있어 커피기계가 알아서 청소를 하기 때문에 편하다. 행주로 커피 기계를 닦고 있는데, 현아(고2, 18)가 와서 인사한다. “언니, 안녕하세요.” 현아는 덩치에 맞지 않게 목소리가 가늘고 가냘프다. 내게 인사하는 몇 안되는 아이여서 이런 현아의 싹싹함이 고맙다. 하지만 이 아이가 인사할 때 썩은 앞니도 덩달아 내게 인사해서 마음이 불편해진다. 그것을 볼 때마다 괜시리 현아의 연애라든지, 취업에 대해 혼자 걱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 걱정도 현아가 인사하는 그 때뿐 이내 곧 잊어버리고 일을 한다. 커피 기계가 혼자 청소를 하는 16분 동안 지하 창고로 내려가 햄버거를 만들 때 쓰는 카라를 가지고 올라 와야한다. 빅맥을 먹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카라는 버거를 고정시키는 종이다. 이것을 둥글게 접는 일을 한다. 평일에 10 트레이 정도를 만든다(한 트레이당 90-100개 정도의 카라가 들어간다). 주말에는 15 트레이를 해야한다. 오늘은 금요일이니까 15트레이가 목표량. 창고에 보니 비축량이 있다. 8개정도만 접으면 된다. 다행이다. 지민언니(주부, 31)와 함께 야간 업무를 뛰는 날이니깐, 숨 좀 쉬면서 일할 수 있겠다. 언니는 주중 야간 카운터를 담당한다. 23살에 결혼해서 현재 초등학생, 유치원생 딸과 아들을 둔 31살 주부다. 언니 말에 따르면, “아가들 학원비와 언니 쓸 용돈”을 벌려고 맥날에 와서 일한다. 애들이 잠들면 나와 깨기 전에 들어간다. 밤새 일을 하고 아침에 들어가 남편 출근준비를 돕고 서둘러 애들을 학교와 유치원으로 보낸다. 낮에는 살림하고, 밤에는 일하고. 언니는 늘 3-4시간 밖에 못자 수면 부족이다. 그렇게 일해서 한 달에 백 십만원 남짓한 돈을 벌어간다. 힘들어도 버틸 수 있는 이유는 1년 이상 일하면 나오는 퇴직금을 받아 아가들과 함께 홍콩 여행을 가야겠다는 꿈 때문이다(언니가 매달 백이십 만원을 받으니 그 선에서 퇴직금이 나온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그 돈으로 부족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언니가 말할 때 끼어들 틈이 없다. 그때만큼 언니의 눈빛이 초롱초롱 해진 적을 본적이 없다. 아가들에게 넓은 세상을 보여 주고 싶다며 꼭 홍콩에 가야겠다고 다짐하듯 여러 번 말한다. 여기서 일하는 알바생은 언니의 꿈을 거의 다 안다. 난 그 넓은 세상이 왜 홍콩일지 궁금하지만, 언니의 꿈에 딴지를 걸면 안 될 것 같다. 그 꿈에 뭔가 초치는 일을 한다면, 이 야밤에 언니는 일하다 말고 쓰러질 것 같다. 그럼 나 혼자 일을 해야한다. 생각만 해도 끔찍해 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그 꿈을 한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매장으로 올라와 커피기계를 확인한다. 청소가 끝나려면 5분정도 남았다고 알려준다. 고마운 녀석. 그래도 이 5분을 그냥 놀리면 안된다. 신속하게 카라 접을 준비를 하고, 얼음통과 음료수대를 청소할 준비를 한다. 카라를 접을 수 있도록 카운터 한쪽에 마련해 두면, 아직 퇴근하지 않은 알바생들이 와서 틈틈이 접어준다. 그러면 내 업무량이 아주 쪼금 준다. 내가 도움을 요청하지 않아도 알바생들이 눈치껏 와서 카라를 접는다. 여기서는 1분1초도 알바생이 여유를 부리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처음 일을 배울 때 선배(여, 20)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언니, 여기에서 한시도 가만히 있으면 안돼요. 모니터 화면이라도 닦으세요. 가만히 있으면 점장님이 뭐라 그래요.” 그래서 그런지 가만히 숨 고르고 있기만 해도 매니저들이 와서 혼낸다. 지민언니와 나는 카라를 접는다. 동시에 햄버거 주문이 들어오면 햄버거 세트에 같이 나가야하는 음료수를 뽑아 카운터로 가져다 준다. 그러는 사이 커피기계가 청소를 다했다고 삐삐 거리면 난 음료수대와 얼음통을 잡는다(여기서는 청소를 ‘잡는다’로 표현한다). 이건 고도의 속도전을 요구한다. 이곳에선 매순간 햄버거세트가 나가야한다. 청소한다고 잠시 햄버거주문을 멈추지 않는다. 맥도날드에서는 주어진 시간에 들어온 주문을 얼마나 뽑느냐가 중요하다. 이때 주문을 못 받는 불사상가 생기면 그날 장사는 그만큼 손해를 본거다. 그래서 미리 여분의 음료를 재빠르게 만들어 놓고 잽싸게 음료수대와 얼음통을 청소해야한다. 이때 난 신경이 고도로 곤두서있다. 깨끗이 꼼꼼하게 청소하는 것보다 무조건 빨리 청소를 해치워야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 맥도날드에서 일하면서 놀랐던 것은 철저한 위생원칙을 가지고 있는 점이다. 먹는 것에서부터 식기와 자재 등을 다루는데 있어서 원칙이 있고, 심지어 청소도구와 세제도 구역에 따라 다르게 쓸 만큼 위생에 신경을 쓴다. 하지만 맥도날드의 시계는 반 위생적이다. 만약 맥도날드에서 비위생적인 것을 보았거나 먹었다면, 이 세계의 속도에 쫓겨 알바생이 실수한 가능성이 크다.
 잽싸게 얼음통과 음료수대 청소를 마치고 매니저가 시키는 이런저런 일을 하고 나니 벌써 12시다. 이제부터 아름언니와 나, 둘이서 주문을 받고 감자를 튀기고 음료수를 뽑고, 햄버거를 포장해서 손님에게 전달까지 해주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60초안에 끝나야 한다. 손님이 주문을 하는 동시에 빛의 속도로 감자와 음료수를 집어 와 손님 앞에 갖다 놓는다. 카운터 아래 우리가 움직이는 동선 사이로 마치 레일이 깔린 것 같다. 손님의 주문과 함께 우린 음료수대, 감자통, 햄버거 대를 무수히 왔다갔다 움직인다. 마치 자동 반복하는 기계처럼.

  

끼니도 마음대로 먹을 수 없는 

 1시. 휴식시간. 그날 사정에 따라 휴식시간대가 다르다. 어쩔 때는 오자마자 쉬기도 하고 바쁠 때는 새벽 다섯시쯤 쉰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8시간 근무 시, 1시간 휴식’을 원칙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꼭 쉬어야 한다. 한 시간 휴게 시간은 무급이다. 대신 햄버거 식사가 제공된다. 맥도날드에서 일하기 전 난 햄버거를 잘 먹지 않는 사람이었다. 처음 일주일 동안 바나나를 싸가지고 다니면서 먹기도 했다. 하지만 바나나 1-2개로 8시간동안 서서 끊임없이 일하는 것은 무리였다. 나중에 너무 허기지고 체력이 딸려 손님한테 줄 감자를 집어 먹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곤 했다. 할 수 없이 일하기 위해 햄버거를 먹기 시작했다. 그러나 모든 햄버거를 다 먹지 못한다.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건 맥도날드에서 파는 12가지 맛 햄버거 중 ‘치즈, 빅맥, 불고기, 맥치킨’ 뿐. 다른 건 못 먹게 한다. 식사제공용 햄버거에 제한을 두는 이유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다만 알바생들 사이에서 다른 건 원가 대비 이윤이 많이 남지 않기 때문에 그렇지 않나하는 억측만 돌고 돈다. 간혹 매니저의 호의로 다른 햄버거를 맛 볼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지만, 먹을 복 없는 나는 그 호의를 맛보지 못했다. 내가 즐겨 먹는 건 맥치킨 아니면 패티 뺀 치즈버거와 감자, 사이다. 이렇게 햄버거 한 세트를 먹어도 6시쯤 다시 허기진다.
누가 내 삶을 구원해 줄까
 휴식시간을 보내고 나면 다시 매장으로 나와 아이스크림기계를 잡고 1층 홀을 청소한다. 1층엔 테이블이 두 개 밖에 없어 나름 쉽다. 동시에 아이스크림에 환장한 손님을 내쫓는 일을 한다. 술 취한 이들 중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해장하는 이들이 은근 많다. 취객들은 오백원짜리 아이스크림 못 사먹게 되면 괜한 욕을 뱉고 나간다. 나름 귀여운 손님들은 “그럼, 저기 롯데리아 간다?”라는 협박을 내비치기도 한다. 청소가 끝나면 틈틈이 손님 응대를 하면서 아이스크림 콘지를 끼워야 한다. 맥도날드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콘 손잡이 부분에 맥도날드 마크가 새겨진 종이가 있다. 이 작업은 그 종이를 일일이 끼우는 것이다.  하루에 한 박스. 장사가 잘 된 날엔 두 박스. 한 박스에 아이스크림 콘이 510개 들어 있다. 이것을 손으로 일일이 끼우는 단순 반복 작업을 빠른 속도로 해야한다. 이 일은 3시 30분 되기 전에 끝내야 한다. 그래야 30분 동안 아침메뉴를 준비하고 4시전까지 완료 할 수 있다. 맥도날드는 새벽 4시부터 오전 10시 30분까지 아침메뉴로 머핀을 판다. 콘지를 끼우고 나면 커피를 만들고 감자를 튀기고, 아침메뉴판으로 바꾼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4시를 지나가고 있다.
 4시 30분. 이제 2층 홀 청소를 야간 라이더 남자 알바생과 함께 한다. 60평정도 되는 공간에 5인용 테이블 8개, 4인용 테이블 9개, 8인용 테이블 2개가 있다. 내가 먼저 쓰레기통 정리와 테이블을 닦고, 의자를 올리고, 바닥을 쓴다. 그 뒤에 라이더가 쓰레기통을 씻고 대걸레질을 한다. 2층 청소를 하는데 70-80분 걸린다. 이 일이 힘들지만 오로지 이 일에만 집중 할 수 있어 좋다. 1층에서 청소할 때는 손님도 받아야 해서 청소가 중간에 뚝뚝 끊겨 일의 속도가 더 느려지고 집중할 수 없다. 하지만 2층에선 그런 일이 없어 난 2층 청소할 때가 가장 좋다. 하지만 더러움을 맛 보아야 한다. 이곳에서 햄버거를 먹는 사람들 중 3분의 1정도는 자기가 먹은 것을 그대로 테이블에 놓고 간다. 그 외에 사람들은 쓰레기통으로 가더라도 버리기 귀찮은지 자신이 먹은 잔재를 그 위에 살포시 얹어 두고 간다. 오늘 같이 바쁜 날에는 그것들이 쌓이고 싸여 거대한 탑을 이룬다. 탑을 제거할 때 1회용 컵, 캔, 햄버거쓰레기, 종이와 정체불명의 쓰레기를 한데 모아 처리하는데, 이제 비위가 강해져 이 일도 아무렇지 않게 처리할 수 있다. 분리 배출은 먼 나라 이야기. 시간 때문인지 이곳의 환경 감수성이 제로여서 그런지 잘 모르겠다. 손님도 그것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나 또한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탑을 제거하고 나면, 테이블을 닦으면서 의자를 올린다. 의자는 왜 이리 무거운지. 누군가 의자에 벽돌 3개는 달아 놓은 것 같다.
 2층에서 청소할 때면 매니저들은 신나게 일하라고 ‘노동요’를 틀어준다. 노래의 국적과 장르도 다양해서 k-pop은 물론, 먼 나라 프랑스의 샹송까지 들을 수 있다. 대부분 내가 모르는 노래라서 일을 할 때 신나기는 커녕 가끔 너무 크게 틀어줘서 귀에 거슬린다. 듣는 둥 마는 둥 해야 될 일들을 쓱쓱싹싹 해치운다. 하지만 유일하게 아는 노래인 Keren Ann의 “Not going anywhere”가 나오면 나도 모르게 비질을 멈추게 된다. 이땐 익명의 맥도날드 알바생에서 불쑥 내가 되어 창밖을 바라보게 된다. 바깥 세상은 아침을 맞기 위해 분주하다. 어스름한 새벽녘 간선 버스가 다니기 시작하고, 청소부 아저씨도 나와 전단지와 쓰레기로 덮인 거리를 쓴다. 새벽 출근을 하는 사람들이 버스 정류장에 삼삼오오 서있다. 그 모습을 보면 창 밖 시간대와 다른 시간대를 사는 나의 위치가 불안해 진다. 인생이라는 긴 항해 길. 어쩌다 난 이곳에 정박해 있는지. 저들의 시간대로 다시는 항해를 못 할 것 같은 두려움이 날 옥죈다. 돛을 올려 이 곳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스치지만, 딱히 다른 대안은 떠오르지 않는다. 한국사회에서 시급 5,210원으로 결혼도 하고 집도 사고 차도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그런 사람이 있다면 알려 달라.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프로에 나와 널리 인증 받아야 한다). 이런 현실에서 기댈 수 있는 건 정치밖에 없다. 최소한의 선에서 법의 틀에 갇힌 시급을 상향조정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이 삶은 지속될 것이다. 천만에 가까이 된다는 나와 같은 비정규직들은 부당한 현실에 왜 이렇게 무력하게 순응하고 있는 걸까?
 세상 논리대로 우린 경쟁에서 진 낙오자기 때문에 이런 시급을 받고 일을 하는게 정당한 것일까? 우리 삶의 대안이 되어야 할 정치는 뉴스로만 존재하고 실생활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뉴스에서 보이는 그들은 우리의 삶과 무관한 주제로 정쟁을 벌인다. 그들의 정치엔 우리의 삶 따윈 고려되는 것 같지 않다. 교차로 사거리에는 한나라당이 제안하는 국민이 행복하게 하는 5가지 제안 중 하나인 “비정규직 차별 해소”라는 현수막이 크게 걸려 있다. 내 삶의 동선에서 뉴스외의 공간에서 접할 수 있는 정치는 저게 유일하다. 어찌된 일인지 다른 정당들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실생활에서 정치는 현수막으로 존재할 뿐이다. 계단까지 다 쓸면, 난 다시 1층 카운터로 복귀해야 한다. 복귀하기 전 씽크대 옆 세면대로 가서 손을 씻는다. 내 왼손 손가락 사이사이엔 습진이 퍼져 있다. 일하면서 생긴 피부병이다. 그날그날 상태를 체크하며 설거지를 하는 동원이(19)한테 나의 손을 불쑥 내밀며 보여준다. “동원아, 나 오늘은 이렇다, 넌 어때?”하고 물으면 일을 잠시 멈추고 손바닥을 내밀며 “누나, 전 오늘 여기를 다쳤어요”하며 상처를 공유한다. 그러면서 실없이 누구의 상처가 더 큰지 견준다. 이곳에서 일을 하면 할수록 우리의 상처는 아물지 않고 번지고 커진다. 일을 그만두지 않는 한 이 상처가 사라질 것 같지 않다. 실없는 농담이 끝나면 1층 카운터로 돌아와 출근길 직장인의 허기를 달래 주어야 한다. 그들은 맥모닝과 커피를 사서 사라진다. 오고 가는 이들을 한 시간쯤 응대하다보면, 어느새 7시. 이렇게 나의 하루 노동이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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