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삼성에 사로잡힌 삶에서, 삼성을 바꾸는 삶으로!(35호)

2014년 3월 27일culturalaction
[특집] 왜 삼성과 싸워야 하는가?
영화 <또 하나의 가족>이 개봉한 얼마 후 현직 삼성 전자 커뮤니케이션팀 부장은 “영화가 만들어낸 오해가 안타깝습니다”라는 글을 올려 영화가 진실을 숨기고 있고 투쟁의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당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 일했던 한 엔지니어는 앞의 삼성 옹호글을 반박하며 잘못을 인정하고 바로잡으려 하는 것은 비난 받을 일이 아니라 박수를 받을 일이라는 내용을 담아 “제가 한 때 속했던 이 회사가 전 너무도 부끄럽습니다”라는 글을 게시했습니다. 이 논쟁을 통해 우리는 삼성이 어느정도 위기의식을 느끼고 항변하려 한다는 점과, 삼성에 대해 자기고백을 하는 삼성맨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삼성이라는 거대한 괴물의 진격은 언제쯤 멈출 수 있을까요? 그렇기에 문화빵 35호에서는 특집으로 우리가 삼성과 싸워야 하는 이유를 다뤄봤습니다. 
 
① 삼성에 사로잡힌 삶에서, 삼성을 바꾸는 삶으로! – 조대환(삼성노동인권지킴이)
 어둡고 차가운 시대의 새로운 희망,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 홍명교(삼성전자서비스 지회 교육선전위원)
③ 영화, 삼성과 싸우다 : <또 하나의 약속>과 <탐욕의 제국> – 최혁규(문화연대 활동가)
 

삼성에 사로잡힌 삶에서, 삼성을 바꾸는 삶으로!

조대환 / 삼성노동인권지킴이

 slw20131210@gmail.comslw20131210@gmail.com

삼성을 둘러싼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최근 언론에 나오는 삼성의 모습은 그동안 한국인들이 알아온 삼성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삼성에 좋은 내용이 보도되기 보다는 삼성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더 많이 나오기 때문이다. 삼성을 대상으로 노동인권 문제를 감시하겠다는“삼성노동인권지킴이”가 2013년 12월 출범한데 이어, 최근에는 대규모 시민사회운동 세력이 모두 모인 “삼성바로잡기”도 출범 했다. 특정한 기업이 이렇게 전 사회적인 비판의 도마 위에 올라가는 일은 흔치 않다. 두산의 페놀 유출, 남양유업 “갑의 횡포”와 같은 사건도 시간이 지나면 잊기 마련이다. 그런데 언제나 최고의 실적을 유지한 삼성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왜 이리 커진 것일까?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 이유를 삼성이 찾지 못한다면, 삼성의 미래는 대단히 어두울 수밖에 없다.
삼성은 그동안 줄곧 1등을 유지해왔지만, 1등을 유지하기 위해서 지켜야할 규칙과, 1등이 해야 할 책임을 지지 않았다. 또한 1등을 차지하기 위한 범죄를 저질렀다. 그 첫 번째 범죄란 부정부패와 비리 범죄다. 삼성은 그동안 이윤추구에 눈이 멀어 수많은 부정부패를 저질렀고,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미 60년대 사카린 밀수로 세상을 발칵 뒤 짚은 적이 있고, 근래에는 불법정치자금을 조성하고, 검찰들에게 떡값을 제공해, 정관계를 주물렀던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오로지 삼대세습을 위해서 에버랜드 전환사채와, SDS 신주인권부사채를 저가로 발행해, 본인들만 이익을 얻는 범죄를 저질렀다. 또 하나의 범죄는 ‘무노조 경영방침’이다. 조금 다르게 표현하면 삼성에 의한 반노조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반노동조합 정책은 삼성에 의해서 만들어진 사회적 범죄다. 이 범죄는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반노조를 유지하기 위한 2차 범죄로 이어진다.
삼성의 반 노조 정책은 기본적으로 규칙 위반이지만, 심각한 인권유린의 모습도 보이고 있다. 삼성은 노동자들 중 회사의 방침에 이견을 달거나, 노동자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들을 MJ  사원으로 분류한다. 상품에나 어울릴 품질등급을 인간에게 매기는 셈이다. MJ 품질 등급은 회사에서 정한 최하 등급으로 솎아 내야할 불량품이다. MJ 사원들은 친구관계는 물론, 주량까지 사찰 당한다. 이렇게 사찰과 불이익을 당하다보면 인간이 서로를 감시하게 되고, 자신의 권리에 대해서 능동적으로 행동하지 못하는 처지 놓인다. 말과 행동이 자유롭지 못하고, 스스로 자신의 의식을 검열하고 통제해야하는 회사가 삼성이다. 여기에 삼성은 지금까지 노동조합을 막기 위해 납치, 폭행, 감금이 비일비재했고, 죽은 사람의 명의를 도용해 위치추적을 하다 들통이 나기도 했다. 삼성 전자부문 사업장에서 일하다 원인 모르게 죽어간 직업병 의심 사망자가 80명에 이르고 있지만 삼성이 책임 있게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사람이 죽어가는 작업환경에서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또 하나의 약속>은 영화가 아니라 현실이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삼성은 한국 최대의 기업임에 틀림없다. 삼성이 올리는 매출은 한해 300조원이 넘고, 집집마다, 사무실마다, 삼성제품이 없는 곳은 거의 없다. 그렇다면 삼성은 좋은 기업일까? 기업의 첫 번째 목표는 이윤 추구이니, 돈을 잘 버는 것이 좋은 기업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돈을 어떻게 벌었느냐를 확인하지 않고 무조건 좋은 기업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아무리 기업이라고 해도, 나름대로 사회적 역할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기업이 오로지 이윤만 추구한다면 그 사회가 유지될 수 없다.
삼성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란 다른 무엇도 아닌 삼성에 대한 사회적 책임의 요구다. 삼성에게 묻는 사회적 책임이란, 삼성이 가진 富(부)를 질투하는 것이 아니다. 이건희 일가의 재산을 불리는 과정에서 희생시킨 인권의 가치를 다시 살리고자 하는 것이며, 삼성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확산되고 있는 불공정 행위를 바로잡고자 하는 것이다. 삼성이 무소불위의 권력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날뛰는 것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기에 삼성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이제 다른 기업들도 1등만 하면 삼성처럼 부정부패, 비리에 대해서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노동자들의 인권을 탄압하는, 노무관리방식은 삼성에서 먼저 만들어져 다른 기업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삼성이 한국사회에 확산시킨 문화란 세계일류, 수출 1등이 아니다. 실적과 경쟁을 위해 동료를 밟고 올라서도록 하는 문화다. 삼성전자반도체 공장의 노동자들은 실적 경쟁으로 점심도 화장실에서 빵으로 때우기 일쑤였다고 한다.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들은 실적이 좋은 노동자들의 성과급을 실적이 떨어진 노동자들에게 빼앗아 지급했다고 한다. 삼성의 지배 문화가 우리의 삶 속에, 삼성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문화 속에 얼마나 깊숙하게 들어와 삶을 망치고 있는지 잘 보여주는 모습이다. 그래서 삼성을 바꾸는 것은 삼성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삼성이 지배하고 생산해낸, 왜곡된 삶의 문화를 바꾸고자 하는 것이다. 이것이 최근 범 시민사회 영역에서 삼성을 비판하고 있는 이유다.
삼성이 만들어낸 왜곡된 삶의 문화를 바꿔야하는 중요성을 이야기하면서 덧붙이고 싶은 한 가지가 있다. 삼성과 맞서 싸우는 것이 거창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삼성과 맞서 싸우는데 필요한 것은 인간의 권리를 포기 하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이며, 그 사람들 옆에 있어줄  친구라는 사실이다.
2011년 여름, 한 남자가 일터에서 해고됐다. 이 남자는 바로 ‘조장희’다. 이날은 본인이 참여한 노동조합의 설립 신고필증이 나오던 날이다. 조장희씨는 에버랜드 삼성노조(현 금속노조 경기지부 삼성지회) 부지회장이다. 이렇게 조장희씨처럼 삼성에서 노동조합을 만들다 해고되고 쫓겨난 노동자는 수없이 많다. 그리고 그들은 해고로 생계곤란, 삼성의 온갖 소송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해 있다.그러나 이 사람과 동료들은 포기하지 않고 있다. 민주적인 노동조합을 일하는 터전에 자리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폭력에도 회유에도 타협하지 않고 있다.
거대 공룡에 맞서 싸우고 있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친구’와 ‘연대’다. 공룡에 맞서는 용감한 사람들이 외롭지 않도록 친구를 늘려 가는 것이 삼성을 바꾸는 첫 걸음일지 모른다.
사진 : 임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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