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청소년노동을 바라보는 수상한 관점(37호)

2014년 4월 24일culturalaction
5월 1일은 노동절(May Day)입니다. 노동절은 노동자들의 열악한 근로조건을 개선하고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노동자들이 모여 노동운동을 통해 희생된 노동자들을 추모하고, 연대의식을 다지는 날입니다. 이번 문화빵 37호에서는 노동절을 맞아 가장 열악한 근로조건과 차별 속에서 놓여있는 청소년들의 노동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한국사회에서 노동을 하는 청소년들은 비정규직법과 연령주의, 두 가지 억압구조에 따른 이중 착취의 속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청소년 노동에 대한 편견과 오해는 이 문제에 대한 토론과 논의마저도 어렵게 하고 있습니다. 청소년 노동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청소년 노동문제의 얽힌 실타래를 푸는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①청소년 노동을 바라보는 수상한 관점 –  배경내(인권교육센터‘들’,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②[청소년 노동 현장르포]효주씨의 밤일 – 강효주(문화연대 활동가)
③[좌담]청소년과 노동 그리고 청소년 노동운동 – 정리 : 최지용(문화연대 자원활동가)

청소년노동을 바라보는 수상한 관점

 

배경내 (인권교육센터 ‘들’,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IMF 이후 노동현장으로 나오는 청소년의 수가 늘어나면서 일하는 청소년의 인권문제가 사회적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청소년노동자에게는 최저임금이 기대 가능한 최고임금이고, 벌금이나 위약금 등을 빙자한 다양한 형태의 임금 갈취가 이루어지며, 오토바이 배달처럼 목숨 걸고 일해야 하는 열악한 일자리만 기다리고 있는 경우가 흔하다. 막말과 체벌, 위협 등을 동반한 위압적 규율을 경험하거나 온갖 허드렛일을 도맡아 해야 했다는 모욕의 문제도 자주 보고돼 왔다. 고용-피고용 관계에서 오는 종속성에 더해 ‘알바’라는 취약성, 게다가 나이의 취약성까지 더해지다 보니 그렇다. 2005년 이래 이미 세 차례나 정부차원의 종합대책이 발표되었지만, 청소년 노동의 현실은 되돌이표, 아니 더 후퇴되는 양상이다. 요란한 빈 수레에 불과한 정부 정책도 문제이고 고쳐지지 않는 허술한 법률의 문제도 크다. 그러나 청소년 노동을 바라보는 관점들이 함께 바뀌지 않는 한, 문제는 계속 축소되거나 겉핥기 대책만 되풀이될 우려가 크다. 청소년 노동을 둘러싼 대표적 오해들은 무엇일까.

청소년 노동은 소수의 문제다?

정부정책은 물론이고 사회운동도 대개 청소년의 교육 문제에만 집중할 뿐 노동 문제는 언제나 뒷전이었다. 청소년노동을 소수의 문제로 보기 때문이다. 조사기관마다 차이가 있지만, 실제 청소년의 노동 참여율은 30~40%에 육박한다. 가정형편이 어렵고 학교교육에 대한 만족도가 낮은 특성화고 학생들의 참여율은 더욱 높다. 국책기관이나 민간단체의 조사가 주로 중고등학교에 재학중인 청소년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감안할 때, 학교밖 청소년에까지 조사를 확대하면 그 비율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청소년노동은 청소년 인구의 1/3, 많게는 절반에 이르는 이들의 삶의 문제가 되고 있다.
청소년 노동은 왜 늘어날까? 청소년 노동의 증가를 하나의 원인에서 찾을 수는 없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강타하고 있는 노동세계의 변화가 큰 요인으로 자리 잡고 있음은 분명하다. 아무리 일을 해도 가난한 노동빈곤 현상과 불안정노동의 확산 현상은 맞벌이를 넘어 가족 구성원이 ‘모두 벌이’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내몬다. 교육 사다리의 붕괴 역시 학습에 전념하기보다 당장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택하는 것이 더 낫다는 선택을 늘게 한다.

청소년은 ‘예비 노동자’인가? 

사람들은 청소년을 예비 혹은 미래의 노동자라는 관점으로만 바라본다. 실제 가까이에서 일하고 있는 청소년 노동자가 잘 보이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청소년이 아니라고 예단하기 때문이다. 청소년 노동을 다룰 때도 ‘참여율’이 아니라 ‘경험률’이라는 개념을 주로 쓰는 이유, 노동현장에 있는 청소년을 흔히 ‘알바생’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알바생이란 말은 3중의 효과를 만든다. 알바라는 말에 임시적, 보조적 생계수단이라는 오해가 덧입혀져 있다 보니 청소년의 노동 필요는 평가절하된다. 학업에 전념해야 할 학생((실제 학생인지 학교밖 청소년인지를 불문하고)이 노동현장에 있으니, 청소년노동은 임시적, 비정상적 상황이 된다. 학생이라는 말이 따라붙으니 아직 배움의 과정에 있는, 온전하지 못한 노동자라는 관점이 형성된다. 이렇게 청소년 노동자를 온전하지 못한 노동자로 보다 보니, 적게 주고 함부로 부려도 된다는 사회적 허용이 뒤따른다. 청소년은 예비 노동자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일하고 있는, 일자리를 구하고 있는 노동자다.

‘코 묻은 돈’ 떼어먹는 악덕업주가 문제다?

청소년노동 문제라고 하면, 임금 체불이나 크게 다치는 사고, 성희롱 피해와 같은 극단적 문제에만 주목하는 경향이 크다. 당연히 비난의 화살은 ‘어린애들’이 힘들게 번 ‘코 묻은 돈’이나 갈취하고 성폭력의 대상으로 삼는 소수 악덕업주에게 돌려진다. 그러나 실제 청소년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해결되기를 기대하는 문제는 모욕의 중단과 시급 인상이다. 청소년들이 일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을 물어보면 모욕을 대부분 거론한다. ‘함부로 대해요.’ ‘하인 취급해요.’ ‘무조건 반말에다 야! 이렇게 불러요.’ ‘작은 실수에도 욕해요.’ 이 같은 모욕을 견디며 일한 대가로 거머쥔 보수도 너무나 초라하다. 알바는 ‘단시간 노동’을 뜻하지만, 최저임금에 턱걸이한 시급은 너무 낮아 장시간 일할 수밖에 없다. 모욕을 견뎌야 할 시간이 그만큼 늘어난다. 최저임금 받았고 일하다 다치지 않았다고 해서 문제가 아닌 것은 아니다.

알바하는 애들은 그렇고 그런 애들이다?

청소년 노동자들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양극단이 존재한다. 부모의 경제력 부족으로 공부할 나이에 돈 벌러 나온 ‘불쌍한 애들’이라는 시각, 그리고 어려서 돈이나 밝히는 ‘까진 애들’이라는 시각. 전자는 청소년이 노동을 선택하는 이유를 ‘생계비 마련’ 하나만으로 축소해버리고 피해자로만 바라본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그러다 보니 생활비 마련뿐 아니라 의미있는 시간 활용, 부모의 눈치를 보지 않는 독립적인 생활, 진로 탐색 등 노동을 선택하는 복합적인 이유들이 삭제돼 버린다. 경제구조의 피해자일 수 있는 부모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는 점에서도 문제다. 후자의 시각은 청소년노동을 학생의 본분을 저버린 ‘지위비행’의 문제로 만들어버림으로써, 문제의 원인을 노동현장의 구조적 문제가 아니라 ‘청소년이 노동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로 돌려버린다. 야간까지 일해야만 벌이가 가능한 조건이 아니라, 청소년이 야간에 일하는 게 문제로 지목된다. 일이 너무 힘들고 모욕을 견디기 힘들어 일을 그만두는 청소년에게 ‘요즘 애들은 참을성이 부족해 쉽게 일을 그만둔다.’는 비난이나 ‘애들이 일을 하면 돈을 함부로 쓰고 비행을 저지르기 쉽다.’는 편견이 쏟아진다. 이처럼 청소년 노동이 ‘동정’이나 ‘비행’의 이미지를 갖다 보니 청소년 노동자 스스로도 노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끄러워하거나 숨기곤 한다. 드러나지 않으니 그들이 겪는 문제 역시 더욱 은폐된다.
두 시각 모두 도달하게 되는 결론은 청소년을 노동에서 빨리 구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구원의 방식은 주로 ‘금지’다. 청소년이 노동을 선택하지 않아도 되는 조건을 만들기보다 부모 동의서를 받도록 요구하거나 학교가 아르바이트를 금지하는 규칙을 도입한다. 과연 노동 금지로 청소년의 삶과 노동을 보살필 수 있을까. 이 경우, 부모 동의서를 받기 힘든 탈가정 청소년들은 비공식노동에만 접근이 가능하다. 학교가 노동을 규정 위반으로 삼다 보니 청소년들은 학교의 도움도 기대하기 힘들다. 청소년 야간고용 금지는 청소년이 접근 가능한 일자리를 축소하는 효과만 낳기 쉽다. 금지는 더 열악한 조건을 만들어낸다. 금지는 쉽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청소년이 노동을 선택하지 않을 조건을 만드는 데 있다.

청소년들은 주로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한다?

청소년 노동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흔히 패스트푸드점이나 편의점, 주유소 등을 떠올린다. 청소년 노동이 처음 사회 의제화될 무렵, 해당 업소가 주로 조사 대상이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그곳엔 20대 청년들이나 장년층이 일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청소년들이 주로 몰려 있는 업종은 전단지 돌리기나 음식점 서빙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청소년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청소년들은 이제 웨딩홀 서빙, 배달 대행, 상품 판매, 이벤트 행사장 도우미, 택배 분류, 사무업무 보조, 인터넷 상품 홍보 등 매우 다양한 형태로 일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 업종이 정부의 근로감독 대상에 포함되는 경우가 별로 없을 뿐 아니라, 내일 당장 일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하루살이 노동이나 사용자가 누구인지 분명치 않은 파견노동,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고용 등 불안정노동으로 점차 변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으로 음식점에 직접고용된 형태의 배달노동은 이제 배달대행업체와 개인사업자로서 계약을 맺는 배달대행노동으로 변하고 있다. 호텔 웨딩홀 서빙도 호텔에 직접 고용되는 방식이 아니라, 알선업체를 통해 간접고용되어 파견되는 방식이다. 청소년노동자들이 겪는 문제가 더 열악해지고 더 은폐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애들에게 노동법을 가르쳐야 한다?

청소년 노동 문제가 알려지면서, 청소년에게 최저임금, 근로기준 등 노동법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흔히 얘기한다. 물론 최저임금, 사업주의 근로계약서 작성 교부 의무, 쉬는 시간, 주휴수당 등 노동법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청소년 노동자들은 근로감독의 손길이 미치지 않거나 근로기준법의 일부 조항이 아예 적용조차 되지 않는 영세 사업장에 주로 몰려 있다. 정부 근로감독의 손길은 프랜차이즈업계에 주로 몰려있지만, 청소년들은 점점 더 영세한 업체로, 불안정고용 업체로 밀려나고 있다. 노동법을 안다고 해서 써먹을 수 없는 이유다. 노동법이 전면 적용되는 사업장이라고 해도 갑을관계에 종속된, 게다가 나이어린 청소년이 사업주를 상대로 직접 권리 보장을 요구하기는 힘들다. 법을 넘어서야 해결은 시작된다. 청소년들의 자력화를 지원하고, 법을 의심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는 교육 강화와 함께 청소년의 사회적 지위를 높이기 위한 운동이 함께 전개되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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