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과 종이] 이 정도의 꿈이면 꿀 만 하지 않을까? ㅡ 자크 오디아르의 <러스트 앤 본>(19호)

2013년 6월 6일culturalaction

[스크린과 종이] 19호

 

이 정도의 꿈이면 꿀 만 하지 않을까?

ㅡ 자크 오디아르의 <러스트 앤 본>

 

최혁규 / 문화연대 활동가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순간 뭔가 불안하다. 배우들의 열연과 감각적인 이미지들은 숨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으나, 개연성이 부족한 내러티브와 결국 서둘러 이야기를 끝내버린 듯한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자크 오디아르의 <러스트 앤 본>은 절망에서 꽃 핀 사랑 혹은 극한의 상황을 극복한 강렬한 사랑처럼 보이지만 이런 수사로만 영화의 절반도 이야기하지 못한 것 같다. 사랑에 대한 영화라는 평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게 아니다. 다만 그 얘기를 잠시 옆으로 미뤄두고 할 수 있는 얘기들이 더 있다는 뜻이다.

 

먼저 영화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러스트 앤 본>은 한 사람이 꿈을 꾸고 있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고래가 헤엄치고 있는 출렁이는 물의 이미지와 마치 악몽을 꾸고 있는 듯한 한 사람의 얼굴이 겹쳐진다. 그(녀)의 꿈으로의 초대인가, 혹은 함께 꿈을 꾸자는 제안인가(영화가 진행되면서 우리는 프롤로그의 얼굴은 그녀의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또한 영화의 에필로그라고 할 수 있는 마지막 짤막한 시퀀스의 시작도 프롤로그와 동일하다. 지금까지 우리가 봤던 이야기는 그녀가 과거를 회상하는 꿈이고 앞으로 보여줄 이야기는 그녀가 바라는 이미지라는 말인가, 아니면 봤던 것에 이어서 여전히 과거의 꿈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인가. 하지만 그 꿈이 미래의 바람인지 과거의 회상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어쨌든 몽환의 시점이라는 게 골자이기 때문이다.

자크 오디아르는 <러스트 앤 본>에서도, 전작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편집이나 빛의 사용 그리고 음악의 사용에 있어서 뮤직비디오나 광고를 연상케 하는 연출 방법을 구사한다. 이런 영상들은 그가 현실을 충실하게 보여주려는 것보다 카메라를 통해 현실을 영화적으로 구현하려 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카메라가 담고 있는 것은 비록 인간들의 모습과 행위를 담고 있지만, 그들은 인간적이기보다는 인간의 외면을 한 텅 빈 사물 같다(이런 현상은 최근 영화들의 경향인가?). 특히 설명적 이미지들 없이 단순한 행위만으로 영화를 끌어가는 남자 주인공인 알리의 경우가, 아니 알리의 육체가 그렇다. 그렇기 때문에 <러스트 앤 본>의 감각적이고 강렬한 이미지는 아름답기도 하지만, 텅 빈 사물로서의 육체들이 현시되는 이미지들이 중층적으로 뒤섞였을 때 어딘가 불안하고 공허해 보이기도 한다. 가령 영화 초반에 스테파니가 돌고래쇼를 진행하는 장면은 그녀가 앞으로 닥칠 사건의 전초라는 면에서 시종일관 흔들리는 카메라와 점프컷 그리고 극대화된 사운드의 사용을 통해 불안감을 조성하기도 했지만, <러스트 앤 본>의 전체 관점에서 내러티브를 급진적으로 진행시키게 되는 계기 중 하나이며 다른 설명들을 누락했다는 점에서 불안하고 공허하다. 물론 영화는 이 육체들이 어떻게 관계를 맺어가는지 보여주지만, 완전하고 완벽한 관계는 없듯 영화는 관계의 진행을 흐릿하게 만들며 영화를 마무리 한다. 그래서 정신적 육체적 결핍으로 인한 고통을 겪는 것은 영화 속 인물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 영화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러스트 앤 본>에게 지적되는 개연성 없는 진행과 조금은 성급한 결말을 납득할 수 있다. <러스트 앤 본>을 스테파니의 꿈이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설명적이지 않고 다소 불친절할 수 있는 이 영화가 꿈이기 때문에 파편적으로 구성되어 빈 틈이 생기는 것이다. 또한 영화 자체의 문제에서 봤을 때도 영화는 감독의 주관적인 의도가 들어가긴 하지만 기계적 속성을 가지고 있는 카메라를 이용한 예술이라는 점에서 완전한 인간화가 불가능하다. 기계적이고 사물적인 속성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두 측면에서 모두 존재하는 이런 결핍과 불완전함은 완전성에서 결여된 것이 아니라 근원적으로 존재하는 결핍이자 불안이다. 또한 그런 결핍은 그 자신이 내재적으로 완결성을 향해가는 것이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에 지향점을 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러스트 앤 본>이 인간의 꿈이든 영화의 꿈이든, 비록 명멸하는 꿈이지만 이 정도면 꿀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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