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호 [이런저런무대연구소 일지] 나는 현대무용은 싫다. 그런데 안은미는 좋다. (17호)

2013년 5월 8일culturalaction

나는 현대무용은 싫다. 그런데 안은미는 좋다. 

배여민 (이런저런무대연구소 연구원)

나는 개인적으로 현대무용을 싫어한다. 아니 그 춤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을 싫어하는 것이다. 그들이 하는 ‘짓’거리를 보면 적어도 ‘현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이 해명할 수 없는 난해함을 얹은 작품 생산은 예사. 어디서 주워들은 것은 있어서, 해체와 탈주, 포스트모더니즘을 끊임없이 자신의 몸 언어에 얹는다. 젠장, 이 말들 없었으면 그 ‘지랄’을 어찌 다 설명했겠어. 몸으로 세상을 욕하고, 다 부셔버리겠노라고 해놓고, 선생이 오면 넙죽 엎드린다. 하지만 오해마시라. 아카데미와 현장에 가랑이가 찢어져라 걸치고 있는 일부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간다. 현대무용을 ‘업’으로 삼으려던 이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업’으로 삼으려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는 콩쿠르에서 출연하여 군면제를 받았던 것. 무슨 놈의 콩쿠르 결과는 그 결과의 원인이 되는 무대보다 빨리 나온 경연이었다. 결과 맞아? ‘무용업’이란 나의 춤과 관객인 당신의 시간을 교환하는 ‘무역업’이다. 그런 것을 그는 전혀 모르는 듯했다. 참으로 이상했다. 아무튼, 저 놈이 상 받는 놈이니 열심히 봐야겠군, 하면서 나는 공연을 열심히 봤다. 그리고 그와의 인터뷰는 대충 이렇게 진행됐다. 작품에 자신의 이름이 걸려 있지만 어떤 ‘선생’이 만들어주었고, 그는 나의 질문에 ‘그 선생님이 그랬는데요’라는 말을 무의식중에 많이 내뱉었다. 아, 그 선생이 만들어준 작품이었구나. 미안하다, 나는 들으려고 해서 들은 것이 아니라 너가 너무 친절하게 알려줘서. 아무튼 인터뷰의 한 장면,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인터뷰 중 갑자기 상체를 몇 번 튕기면서 움찔움찔하는 그에게) 지금 뭐 하시는·····.”
“영감이 떠올라서요.”
(“지랄한다”)
(“썅. 할 말도 없는데 왜 자꾸 어려운 말 시키는거야.”)
“당신에게 예술은 뭐죠?”
“‘프로이트’가 말한 바와 같이 ‘세상을 향해 말을 거는 행위’입니다.”
“프로이트가 그런 말을 했나요? 그 정신분석학자가?”
“아닌가요? (이번에 프로그램북 써준 친구가 그렇게 썼던데) 그런데, 그 사람이 ‘정신병자’인가요?”
“(멍청이······) 아, ‘정신병자’가 아니라 ‘정신분석학자’요. 그리고 당신의 프로그램북은 읽지 못했어요. 많은 말이 적혀 있어서 중요하다고는 생각했는데, 공연 내내 어두워서······. (무슨 놈의 ‘고뇌’와 ‘무의식’으로 점철되었던 그 공연장은 50분 내내 어두워서 그 두꺼운 프로그램북을 읽지 못했다)”
“안 읽으셨다니······. 많은 사상이 담겨 있는데.”
“뭐, 때로는 거추장한 사상은 ‘무용’작품에 ‘무용지물’일 수도 있죠.”
“그래도, 저는 남들보다 사상적이고 예술적인 작품을 추구하는 편이에요. 교수님들이 그러시더라고요.”
“아. 네. 그럼 다시 아까의 질문으로 돌아갈게요.”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남성 무용수였다. 친구와 약속이 있다며, 사진 잘 나오게 해달라며 자리를 떴다. “이봐요!” 뒤에다 말하려고 하는데 잘 빠지고 날렵한 몸으로 얼른 튀어 나갔다. “이봐요, 이건 당신의 말 대부분으로 이뤄진 인.터.뷰.라고요.” 그리고 나서 그의 인터뷰를 멋들어지게 썼다. 멋들어지게란 뭔가 있어 보이게라는 뜻. 그런 말 주워 담아 ‘멋들어지게’ 인터뷰 써서 편집부 넘기고, 교열까지 넘긴 나도 어떻게 보면 나도 어떻게 보면 바보 짓’한 것이었다.
그리고 최근에 어떤 잡지에서 작지 않은 무대에 서는 그가 나온 광고를 봤다. 그래 너는 말을 들을 수 없는, 그리고 너의 춤도 볼 수 없는 이런 종이 속에 있을 때가 제일 멋있어. 이번에도 선생이 만들어준 작품으로 올리니?라고 묻기에는 그의 선생은 몇 해 전에 정년퇴직을 했다. 어떡하나, 이 친구.

‘안은미’라는 장르. ‘막춤’의 테크놀로지

이렇게 ‘못난 놈’들이 ‘못난 놈’들로 보일 수 있었던 것은 무용수 안은미가 내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현대무용, 현대무용수는 싫어하지만 안은미는 좋았다. 그녀는 그제나 지금이나 ‘현대무용’을 추는 ‘현대무용수’로 분류된다. 한국의 무용계는 현장이나 학교에서 대부분 한국무용과 발레 그리고 현대무용으로 전공이 나눠진다. 즉 ‘안 한국무용’ ‘안 발레’는 ‘다 현대무용’인 셈.
하지만 그녀는 생각해보면 ‘현대무용수’도 아니다. 그럼 뭔가? 그저 그녀 자체가 하나의 장르이다. 그렇다. 안은미는 장르다! ‘약간 안은미적인데’ ‘안은미틱한데’라는 말은 무용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끼리 통용되는 언어가 되었다.
이제 하나의 장르가 되어버린 ‘안은미’에는 수많은 레퍼토리와 단원들이 존재한다. 최근 이 ‘안은미’계(界), 안은미컴퍼니에는 다양한 무용수들이 입성했다. 입단 시험은 굉장히 “빡셌다”고 들었고 단원은  할머니들, ‘고딩’들, 아저씨들이란다. 더 넓혀갈 예정이라고. 테스트는 그냥 흔들어댈 줄 알면, 춤추면서 남한테 피해 안 주면 되고, 어려운 말이 나오는 입에서 괴성 지르면 되는 등이었다고 한다.
‘안은미’춤 배우겠다고, 그 춤 추겠다고 단원들이 모였으니 판을 벌여야지. 일단 ‘할머니 단원’들로는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2011년 2월 18~20일, 두산아트센터)를 만들었다. ‘할머니 단원’들 무대 위에 오르니 약간 쑥스러우셨는지 조금은 삐쭉삐쭉 하셨고. 평생 부엌에만 있는 ‘빠마머리’ 할머니들을 무대로 끌어낸 ‘빡빡머리 무용수’의 시도를 높게 샀던 무대였다.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
이후 ‘고딩들 단원’들의 무대는 호전을 보였다. <사심 없는 땐스>(2012년 2월 24~26일, 두산아트센터). 무대 위 서울 국제고등학교 20명 학생들의 ‘지랄 발광’은 우주에 떠다니는 20개의 행성이 터지면서 만들어놓는 우주전쟁과도 같았다. 그들의 말로 표현하자면 ‘졸라’ 정신없었고, ‘개쩌는’ 몸짓과 ‘갈비(갈수록 비호감)’이던 친구도 멋들어진 무용수로, 끝나고는 구경 온 친구들과 ‘김천(김밥천국)’에서 떡볶이와 ‘졸라 쳐먹는’ 모습이 연출되었던 공연이었다.
사심없는 땐스
앞서 무대를 선보였던 ‘할머니 단원’들이나 ‘고딩 단원’들이 새로운 춤바람을 일으키고 있을 때, ‘아저씨 단원’들 투입되었다. 역사에 유례가 없는 무대, <무책임한땐스>(2013년 3월 1~3일, 두산아트센터). 술과 담배와 야근으로 찌든 45~50세 아저씨들은 무대에 연신 쏟아지는 물, 이 ‘무용수(水)’와 함께 텀벙대고 자빠지고 자기들끼리 좋다 하다가, 어떤 아저씨 바지 내리고 엉덩이 드러내놓고 춤 춤으로써 안은미의 강령 ‘너의 욕망을 발라당 꺼내놓아봐’를 제대로 실연한 공연이었다.
무책임한땐스
나는 이런 게 ‘현대무용’이라고 생각한다. 얼마나 ‘현대적’인가? 프로이트, 라캉, 지젝 프로그램북에 쓰지 않아도 욕망? 제대로 분출된다. 춤추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무대에 둥둥 떠다니는 것이 욕망의 역학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메를로 퐁티 거들먹거리지 않아도 물속에 ‘퐁당’ 뛰어드는 아저씨들의 몸을 통해 ‘몸의 현상학’ 제대로 발현된다. 어찌나 ‘현상’시키는지 자신의 하얀 엉덩이까지 ‘현상’시키지 않았는가.
앞서 인용한 이야기 속의 친구여. 이런 게 현대무용이랍니다. 뭔가 나눌 수 있는 것, 그동안 해오지 않은 것을 선보여보세요. 이제 몸 움직이기 귀찮아, 혹은 난해할수록 뭔가 있어 보이기에 무대에서 움직이지 않고, 프로그램북에 철학 용어 빽빽이 넣을 것이라면 관객석에 불이라도 좀 켜주시고요. 그것 좀 읽게. 사실, 당신도 이런 거 만들어서 ‘확’ 뜨고 싶은데, 교수가 못 만들게 하죠? 아, 이제는 할 수 있겠네요. 당신의 교수님 정년퇴직하셨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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