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사회를 뒤흔드는 ‘차별금지법제정운동’이 필요하다.(17호)

2013년 5월 8일culturalaction

편집자주] 가끔은… 우려하고 예상했던 일들이 현실이 되었을 때, 그 결과를 예측했다는 기쁨보다 마주한 현실이 너무나 끔찍해 짜증날 때가 있습니다. 최근 동성애를 둘러 싼 한국 사회의 모습이 그렇습니다. 박근혜정부가 불량식품과의 전쟁을 선포할 때, 치안국가의 시대가 더욱 강화되고 문화 다양성은 다시 어둠의 자식들이 될 것이라 예상했지만… 이렇게 빨리, 대놓고 동성애를 괴롭힐 줄은 몰랐습니다. 마포구에서는 동네 앞에 현수막도 마음대로 걸지 못하고, 차별금지법은 또 다시 소리소문 없이 실종되었고, 군대에서는 동성간 합의된 성관계조차 처벌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서슴없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문화빵>에서는 최근 동성애를 대상으로 국가기관들이 자행하고 있는 “대놓고 차별”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① 사회를 뒤흔드는 차별금지법제정운동이 필요하다 / 훈창 (차별금지법제정연대)

② 군 형법, “섹스해도 괜찮다” / 한가람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③ “현수막을 거는 것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현수막 따위는 정말 중요하지 않다” / 오김현주 (마포레인보우주민연대 회원, 민중의집 사무국장)

사회를 뒤흔드는 ‘차별금지법제정운동’이 필요하다.

훈창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지난 2월 민주통합당 김한길, 최원식 의원은 한국사회에 만연한 차별을 금지하고 헌법상 포장된 평등권을 실현하기 위함이라 하며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발의하였다. 하지만 두 의원은 4월 19일 보수기독교세력과 차별금지법 반대세력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치자 자신들이 발의한 법안을 입법 철회하였다. 법안철회에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의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두 의원은 법안을 고수할 경우 민주당이 고립된다며 법안철회 절차를 밟아 나갔다. 결국 4월 24일 두 의원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은 입법 철회되었다.

어떠한 존재도 차별받지 않고 사람은 모두 평등하다는 의미를 사회적으로 합의하는 법안임에도 불구하고 보수 기독교 세력을 비롯한 권력집단은 지속적으로 입법을 막거나, 차별금지사유를 삭제시키려 한다. 2007년 처음으로 발의한 차별금지법은 같은 해 보수 기독교 세력과 재계의 반발에 부딪혀 7개 차별금지사유를 삭제한 누더기법안이 되었으며 2010년에는 법무부에서 ‘차별금지법 특별분과위원회’를 구성하자마자 거센 반대에 입법시도 조차 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2013년 통합진보당 김재연, 민주통합당 김한길, 최원식의원이 차별금지법을 발의하자 보수세력은 다시 한 번 강력히 반발을 하고 있다.

사회혼란을 이야기 하며 차별을 정당화하는 보수 세력

차별금지법 반대세력의 주장 속에는 그들이 왜 법안을 반대하는지 여실히 드러난다. “동성애가 증가하면 사회가 성적으로 타락하고 결국 사회혼란이 온다.” “종북세력을 처벌할 수 없다.” “성범죄자가 아무 거리낌 없이 돌아다닌다.” “12세 미만의 아동이 정치를 이야기 한다.” 이렇게 되면 사회는 혼란이 온다. 

반대세력의 주장은 미국의 기독교 우파가 1990년대 등장한 궤적과 동일성을 보인다. 미국기독교 우파는 전통가치의 부흥을 주창하며 등장했다. 당시 미국기독교 우파는 전통가치의 훼손과 사회적 무질서를 주장하며 낙태와 성소수자에 접근했다. 이들은 여성의 권리를 급진적이고 급단적인 것으로 몰아세웠으며, 성소수자를 극단적인 존재로 만들고 자신들의 주장은 다수의 권리를 위함이라 주장하였다. 이들은 이를 통해 차별과 배제를 정당화시키며 정치세력으로 등장하였고, 이후에도 티파티(tea party)운동을 하며 미국의 의료보험, 사회보장제도, 복지프로그램을 비판하면서 공화당 내부의 핵심파벌로 부상하였다.

한국의 차별금지법반대세력도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특정한 세력에 대한 차별이 금지되면 우리사회가 혼란스러워져 결국 북한이 이로울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들이 말하는 “종북게이”는 게이들이 한국사회를 혼란시키고 결국 북한을 이롭게 한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자신들이 주장하는 차별이 정당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왜 성소수자를 공격하는 걸까?

2007년 정부의 차별금지법이 훼손되는 과정에서 7가지 차별금지사유가 삭제되었다. 출신국가· 언어와 같은 이주민에 대한 차별금지, 가족 상황, 범죄 및 보호처분 경력, 학력, 병력, 성적지향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후 차별금지법이 사회 속에 던져지면 가장 많은 반대에 부딪히게 된 건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 바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금지이다.

 

성소수자들은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는 차별과 혐오속에서 자신들을 드러내지 못한다. 사회속에 살고 있지만 ‘성소수자’로 사회를 살고 있지 못한다.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숨기면서 살아야 한다. 차별금지법 반대세력이 성소수자에 대해서 끊임없이 공격하는 이유는 이것 때문이다. 성소수자가 사회에서 차별을 받지 않아서가 아닌 차별에 끊임없이 노출되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차별이 금지되면 차별을 통해 사람들을 분리하는 지금의 세상이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성소수자에 대해서 계속 공격한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는 과정이나 법안이 만들어진 후 성소수자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저항을 시작할 수 있다. 결국 권력을 가진 자들이 은폐시키려 노력해온 사회모순이 드러나고 저항하는 사람들은 늘어난다. 그들이 성소수자를 공격하는 이유는 저항하는 주체가 늘어남을 막고 사회모순을 은폐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계속 혼란을 만들어야 한다.

혼란이라는 말은 왠지 부정적으로 들린다. 특히 한국은 북이라는 공식적인 위협집단을 설정해 놓은 상황이라서 사회가 혼란스러워지면 위험에 처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누구에게 혼란이었는지를 생각해보면 다른 눈으로 볼 수 있다. 사람은 모두가 평등하다는 가치를 이야기한 프랑스혁명은 민중에겐 혁명의 역사이지만 위정자들에겐 혼란의 역사이다. 한국을 바라 볼 땐 가깝게는 희망버스와 촛불부터 멀게는 광주민중항쟁까지 언제나 저항과 투쟁의 역사는 권력을 가진 자들에겐 혼란의 역사이다.

우리의 저항은 권력자에겐 혼란이다. 자신들이 유지시켜온 사회모순이 드러나기도 하고, 권력을 위협하기도 하다. 그렇기에 우리는 누구의 혼란인지를 주목해야 한다. 보수 세력이 말하는 혼란이 어떤 혼란이지, 우리가 원하는 혼란이 무엇인지 분명히 밝히고 선점해야 한다.  

지금 우리에겐 사회를 뒤흔드는 혼란이 필요하다. 대한문에서 노동자들의 죽음에 대응하는 저항, 광화문에서 장애인차별철폐를 위한 저항, 그리고 성소수자들과 차별받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만드는 저항의 연대까지. 권력을 혼란시키고 그들을 유지시켜온 사회의 모순을 모두 혼란시켜야 한다. 그 혼란의 자리가 저항의 역사와 연대의 역사를 만드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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