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빵] 타이타닉 현실주의, 아무도 엔진을 멈추려고 하지 않는다 (16호)

2013년 4월 23일culturalaction

타이타닉 현실주의, 

아무도 엔진을 멈추려고 하지 않는다

신유아

일하는 시간이 부족하다. 하루 24시간이 아니라 48시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살았다. 약간의 일중독 경향을 띠고 있는 내 모습이다. 시간은 금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시간을 쪼개며 살았다. 문화연대 활동가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읽을 책을 정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만들었다. 평소 안건지에 기사 글에 성명, 논평들을 읽어 내느라 책 한 권 읽을 시간도 없었던 터라 기회다 싶었는데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결국 책모임이 있는 날이 다가와서야 부랴부랴 책을 편다. 이번이 세 번째 모임이다.
<경제 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라는 더글러스 러미스의 책이다. 책 제목을 보면 경제 성장이 안되도 풍요롭게 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준다. 대안적인 삶에 대한 방식을 알려주겠구나 생각했다. 풍요의 정의가 무엇일까. 더글러스는 참다운 풍요는 물질이 아닌 마음이라고 말한다. 마음이 풍요롭지 않은 이유는 경쟁사회 구조 안에서 사회를 지탱하는 기본적인 감정인 두려움(공포)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가난뱅이가 돼”라는 말이 정신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는 줄기차게 경제사회의 모순과 상식이 되어버린 현실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타이타닉호에 승선한 손님들은 타이타닉호 안의 세상을 현실로 인식하고 배 밖의 빙산과 바다를 인식하지 못한다. 갇혀버린 현실을 인식하는 것이다. 현실밖에 존재하는 현실을 보지 못한다. “무조건 전속력으로”만을 외치는 사람들과 “엔진을 멈추시오”를 외치는 사람들을 현실주의자와 비현실주의자로 구분하고 배가 달리는 순간 빙산에 부딪힌다는 사실을 암시해준다. 현실은 무엇인가.
국가는 현실주의자들의 편에서 엔진을 가동시키기 위한 다양한 장치들을 한다. 타이타닉호가 순항할 것이라고 승선객들의 눈과 귀를 가린다. 그리고 저항하는 이들은 군대를 동원해 죽여 버린다. 공포감에 떨던 승선객들은 엔진을 고치기 위해 국가가 시키는 노동을 한다. 타이타닉호 제 일 윗 층에 있는 관리자들은 희희낙락 유희를 즐기며 엔진이 고쳐지기를 기다린다. 그리고 아마도 또 하나의 타이타닉을 만들기 위한 기획을 할 것이다. 엔진이 고쳐지면 다 같이 죽는다는 사실을 모른 채 말이다.
결과적으로 러미스가 이야기 하는 것은 진짜현실을 직시하고 엔진을 멈추면 빙산에 부딪쳐 자폭하지 않을 것이라는 암시다. 자연도 살리고 인간도 살 수 있는 방법이다. 자연과 문화는 그대로 내버려두면 언젠가는 다시 살아난다는 이야기다. 자연을 파괴하는 사회구조적 시스템을 다시 만들고, 소비의 문화가 아닌 발전(여기에서 발전은 자동사도 타동사도 아닌 공(共)동사의 의미라고 러미스는 말한다)의 문화를 만들어 보자고 이야기 한다.
경제발전국가에서 인간을 생산수단이나 소비수단으로 생각한다면 러미스는 최소한의 것만으로 살 수 있는 인간으로 인간능력을 발전시켜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기계를 줄이고 도구를 늘려서(도구는 인간 능력을 증대시키는 기능이 있다고 함) 스스로 목수가 되고 농부가 되자고 한다. 티비를 보며 수동적 문화향유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악기를 다루고 춤을 추며 능동적으로 문화를 창조하자고 한다. 풍요의 기준이 돈이 아닌 시간이 되어야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현재 미국과 같은 산업국이 미개발 국가를 발전시킨다는 명목으로 경제 식민지화를 이루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세계화를 이데올로기화 시키고 있다면, 이제 역으로 산업국의 엔진을 멈추게 하기 위한 다양한 저항이 필요하다고도 말한다. 경제성장을 멈춘다는 것이 소비를 줄이고 가난해지라거나 금욕주의자가 되라는 것은 아니다. 금욕주의는 현실의 경제체제에서 더 극명하게 나타난다. 일하지 않으면 죽으니 여가는 꿈도 꾸지 말라고 한다. 서서히 저항의 바람을 일으켜보자.
저항의 움직임은 과거 더 활발했다. 그것은 자본주의 경제구조 이전의 구조를 알고 있던 사람들은 과거의 기억을 바탕으로 구조적 모순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의 사람들은 자본주의체제를 상식으로 받아들여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저항하지 않는다. 거기에 공포가 내제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상식은 변한다. 중세에는 마녀사냥이 상식이었고, 고대 노예제가 상식이었듯이 말이다. 상식으로 인식되는 현실, 타이타닉호의 현실. 승객들이 빙산을 보려면 작은 움직임이라도 있어야 한다. 엔진을 멈추라고 외쳐야 한다.
일중독에 빠진 나의 생활에도 여가는 없었다. 사실 이 책의 리뷰를 쓰는 지금도 주말시간 사무실에서 일을 하는 마음으로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하지만 이 시간만은 내 생활을 돌아보는 계기가 된다. 활동가로서 좀더 적극적인 저항을 만들어 내야겠다는 생각과 저항의 방법이 소비가 아닌 생산으로 연결 될 수 있는 다양한 기획이 필요함을 느낀다. 영화 <메트릭스>에 나오는 빨간약을 먹을지 파란약을 먹을지 망설여지는 순간이다.
 
* 책빵은 문화연대 활동가들이 한달에 한번 책을 선정해서 읽고 이야기를 나눠보는 모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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