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나의 개인적인 작은 비념이 바로 이 영화다 ㅡ 영화 <비념>의 임흥순 감독 (16호)

2013년 4월 23일culturalaction

나의 개인적인 작은 비념이 바로 이 영화다

ㅡ 영화 <비념>의 임흥순 감독 

최혁규 / 문화연대 활동가

지난 4월 3일날 임흥순 감독의 <비념>이 개봉했다. 제주 4·3과 미군해군기지 건설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비념>은 3년의 작업기간을 걸쳐 작년 전주국제영화제 때 첫 소개된 후 여러 영화제를 통해 보여진 적이 있지만 그때와는 다른 편집본으로 드디어 정식 개봉을 했다. 또한 <비념>은 제주 4·3을 다룬 <지슬>과 거의 동시에 개봉하면서 제주도를 다룬 두 편의 영화라고 함께 소개되기도 했다. 또한 현재 ‘문지문화원 사이’에서 <비념으로 가는 세 개의 통로 – 가족, 이웃, 그리고 역사>라는 이달의 작가전을 개최하고 있다. 이 자리는 임흥순 감독의 회화, 영상, 사진 아카이브 작업 등 여러 작업을 통해 작가로서의 임흥순을 알아볼 수 있는 자리이다. ‘문화빵’과 <비념>을 통해 처음 관계를 맺은 필자는, <비념>의 극장 개봉과 작가전을 맞이해 그를 만나 <비념>에 대한, 그리고 그의 작업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아쉬운 점은 인터뷰가’온라인 평점 논란’이 있기 전에 진행되었기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 견해를 물을 수가 없었다는 점이다. 자세한 사항은 <비념> 블로그를 참고하길 바란다.(http://blog.naver.com/jejuprayer)

* <비념>에 대한 리뷰는 졸고 “강정을 보호하라! ㅡ 임흥순의 <비념>”(문화빵 4호 스크린과 종이)

http://culturalaction.jinbo.net/xe/index.php?mid=newsletter&category=14449&document_srl=14398

 

 

최혁규: 개인적으로 작년에 <비념>을 두 번 보고 지인들에게 추천을 많이 했었는데, 그땐 영화제에서만 볼 수 있었던 작품이라서 기회가 많지 않았다. 이번 기회엔 개인적인 홍보도 많이 해볼 생각이다. <비념> 개봉 후 반응은 어떤 것 같나?

 

임흥순: 일단은 영화가 개봉했으니까 많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생각보다 관객이 많지 않다. 일종의 지지층이 없어서 그렇기도 하고 홍보도 좀 취약한 면이 있는 것 같다. 제주4·3과 강정마을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이기 때문에 영화가 어려울 것 같다는 어느 정도의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소수지만 열혈 관객층의 지지와 그들의 소개로 일정 정도 꾸준히 관객이 있는 것 같다. <비념> 같은 경우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과 같은 현재의 상황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홍보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민감한 것 같다. 그리고 관객의 입장에서 예술 다큐멘터리라는 부담감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소규모로 한 두 군데에서라도 장기적으로 개봉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단체들이 공동체상영으로 움직여주는 방법이다. 이번에 참여연대와 전쟁없는세상이 공동체상영을 마련한 자리가 있다. 이렇게 이벤트식으로 하지 않으면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고 본다. 문화연대도 이런 자리를 마련해줄 수 없나? (웃음)

 

최혁규: 영화가 개봉하고나서 우리도 적극적으로 홍보해보자는 말이 있었다. 그래서 영화 상영뿐만 아니라 전시도 함께 홍보하고 있다. <지슬> 같은 경우는 영역을 넘나드는 홍보가 있었던 것 같은데, <비념>은 그런 부분이 좀 부족했던 것 같다. 홍보의 문제도 있지만 이슈화가 잘 되지 않은 부분도 있는 것 같고. <비념>은 어떤 영화인가?

 

임흥순: 영화를 찍기 위해 소재를 찾은 것은 아니다. <비념>은 지인들과 여행으로 제주도를 방문했다 김민경 프로듀서의 할머니 집에 방문하게 되었는데, 할아버지가 4·3때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김민경 프로듀서의 경우도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고, 창피하고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영화로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김민경 프로듀서와 함께 시작하게 되었다. 제주4·3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찾아 묻고 싶었다. 그 사건을 객관적으로 기록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때 돌아가신 3만 명의 희생자 분들의 이야기를 모두 들을 수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 사건이 현재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다. 즉 <비념>은 이런 것들이 우리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질문하는 영화다.

대부분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며 타인들을 설득하거나 가르치려고 한다. 그리고 좌 혹은 우라는 명확한 입장을 갖는 걸 원하는데 나는 그런게 싫다. 다양한 방식으로 볼 수 있는데 둘 중 하나의 시각에서만 봐야하는 건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 강정에 해군기지가 건설되는 과정에는 분명 잘못된 점이 있고 이것은 지적받아야 하는 거지만, 찬반으로만 갈려져 있기 때문에 그 중간의 여러가지 견해들이 묵살되는 부분이 있다. 어떻게 보면 이런 부분들은 문화적인 토양의 문제인 것 같기도 하다. 답답한 현실이다.

 

최혁규: 작년 편집본과 이번에 개봉되는 편집본이 다르다고 들었는데, 혹시 이런 부분들을 더 잘 표현하려고 했던 건가? 어떻게 다르고 왜 다른지가 궁금하다.

 

임흥순: 작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첫 선을 보였었다. 그 당시 한달 반 정도 편집을 했었는데 충분하지 않아 수정할 필요가 있었다. 그 이후에도  제주도를 계속 내려가 촬영이 진행되었고 그 소스들을 추가해서 편집했다. 극영화처럼 딱 완성되는 영화가 아니었고, 만든 상태에서 봤을 때 영화제를 낼 때마다 더 나은 걸 보여주고 싶었다. 이게 미술할 때의 습관이기도 한 것 같은데, 그때도 완성해놓고 끝이 아니라 아쉬운 부분이 보일 때는 계속 고치곤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제 때 상영했었으니까 영화를 본 사람들의 의견도 듣고 해서 사람들이 좀 더 이해하기 쉽게 만들고 싶었다. 더 친절하게 영화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자막을 넣는 게 나은지 아니면 빼는 게 나은지에 대한 고민도 했었다.

사실 어떤 면에서 <비념>은 영화가 아니라고 얘기하고 싶기도 하다. 기존의 영화라는 건 사람들을 영화관에 잡아놓고 어떤 이야기에 끌려들어가게 한다. 이것은 즐기고 놀 수 있는 영화가 아니다. 아까도 얘기했듯이 <비념>은 미완성된 질문과도 같은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가 질문하고 사람들도 이 문제를 인식하고 또 되물어보게 되었을 때, 비로소 영화는 완성되어 간다고 할 수 있을까? 추상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그런 면에서 반쪽짜리 영화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최혁규: 영화가 관객과 하나가 되기 위해 더 친절하게 만들어진 것만 봐도 그렇지만, 전체적으로 <비념>은 ‘사이’를 ‘연결’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앞서 말한 부분도 있고, 4·3과 강정사건의 시간적 사이를 연결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죽은 자와 산 자를 연결시키는 방식은 역사의 흔적을 직접 찾아다니는 과정을 통해 그걸 현재화시키고 현실의 사건과 매개하는 방식이었던 것 같다. 또한4·3을 다루는 시간은 주로 밤이었고, 강정사건을 다루는 시간은 주로 낮이었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방식이 밤과 낮이라는 시간을 통한 방식이었다는 말이다. 이런 점에서 봤을 때 역사를 현재화시킨다는 면에서 탁월했던 것 같은데, 역사를 어떤 방식으로 그리고 싶었나?

 

임흥순: 모든 사람이 동일한 방식으로 역사를 봐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4·3 당시 돌아가신 망자들의 시선으로 보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드러나는 식의 인터뷰가 아니라 카메라가 유령처럼 떠다니는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카메라가 망자의 시선이 된다는 거다. 사실, 실제로 그 분들이 이렇게 지켜보고 있을 수도 있다.

한 번은 꿈에 4·3으로 돌아가신 망자가 나타난 적이 있다. 그래서 그때 사회분위기는 어땠는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억울하지는 않은지 등을 물어봤는데, 그걸 말해주면 너는 나에게 무엇을 해주겠느냐고 반문하셨다. 줄 게 없어서 내 생명의 일부를 주겠다고 대답하고 할아버님께서 좋다고 말씀하시는 순간 꿈에서 깨어났다. 꿈을 꾼 것도 나고 이건 나의 마음의 반영이고 내가 이 영화에 임하는 태도였을 거다. 말할 수 있는 건 가장 중요한 건 생명이라는 말이다. <비념>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은 인간에 대한 존엄성과 환경에 대한 것이다. 생명에 대한 고려가 없기 때문에4·3이나 강정마을과 같은 고통의 역사가 반복되는 거다. 벌어졌던 거다.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무언가를 생각하게 된다면 이런 것들을 불러일으키고 싶었다. 바로 이 바람이 나의 개인적인 작은 비념이다. 중간 굿은 국가의 차원에서 해주는 거고, 큰 굿은 한 사람 한 사람 개인들의 마음이 모여서 하는 거다. 4·3희생자뿐만 아니라 현실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들을 외면하지 않는 마음이 중요하다. 행복하자고 사는 건데 이런 부분들을 단순히 지나간 역사나 지나간 불행으로 취급해버리면 역사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다.

 

최혁규: 그리고 이런 것들이 한 번의 구호로 외치고 끝나는 게 아니고 지속적으로 담론을 만들어야 한다. 한 번의 외침으로 단절되는 것보다 문화 생태계나 환경 생태계를 조성하려는 지속적인 작업이 중요하다. 사이를 보고 연결하고 관계 맺는 부분들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이전 작업들도 그랬던 것 같은데, 이전 작업들의 방식이 궁금하다. 그리고 미술을 전공했는데 카메라를 잡게 된 계기도 궁금하다.

 

임흥순: 회화(서양화)가 전공이고 학교를 다닐 때는 그림을 주로 그렸는데 대학원을 가면서 서서히 그림과 멀어졌다. 어느날 병환으로 입원하셨다가 퇴원하시는 아버지를 영상으로 담은 적이 있는데, 그 영상을 다시 보니까 그동안 못 봤던 것들이 보이더라. 현실에 있음에도 못 봤던 것들, 예를 들어 동네 풍경 같은 것들. 항상 지나다니던 풍경이니까 그냥 있는 것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못 봤던 것들이 보이는 순간이었다. 그러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내는 매체가 그림보다는 영상을 사용하는 게 더 좋다는 생각을 했다. 첫 작업도 그렇듯이 나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 소재를 찾는 스타일이 아니다.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영화를 선택한 거다.

 

최혁규: 그럼 어떤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카메라를 드는가? 작업의 방식은 어떻게 되는가?

 

임흥순: 계획을 안 잡고 진행하는 편이다. 미래에 대한 계획보다는 현실에 충실하고 싶다. 눈앞에서 일어나는 현실들, 그러다보면 일상속에서 우연적으로 발생하는 것들이 있다. 최근에는 이런 미묘함들에 끌린다.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나 우연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을 담아내는 순간들이 즐겁다. <비념>도 이런 것들이 하나 둘 쌓여서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내가 수집가적인 면이 있는 것 같다. 이미지로 기록하고 기억을 수집하는 면모 말이다. 이것도 무엇을 찍으려는 목적으로 찍었다기보다 그냥 찍다 보니까 모이는 영상들이 많다. 작업할 때마다 무엇을 보여줘야 되겠다라는 목적이 있지 않았다. 결과적으로는 나도 하다보니까 이렇게 됐다. 그래서 계속해서 카메라를 들고 촬영해보니 하층민, 민중, 민초들의 삶과 기억을 기록하고 수집하게 됐다.

처음에 다뤘던 가족의 문제 역시 그렇다. 아버지가 노동자시다. 가장 가까운 역사고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왜 이런 환경에 사는지 생각하다보니 주거 공간에 대해서 다루게 됐다. 가족의 따듯함을 이야기하려던 게 아니라 노동자 계급, 환경, 삶의 문제들을 보여주고자 했다.

 

 

최혁규: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해서 그들 옆에서 찍다보니 작업을 하게 되고, 그 작업을 내놓을 때는 그때 보지 못했던 것들이 영상을 통해서 보인다는 말인 것 같다. 이런 관심들이 작업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드러난 것 같은데, 첫 번째 작업이 가족과 공간에 대한 거였다면 그 외의 작업들은 어떤가?

 

임흥순: 가족 작업을 하고 있을 시기가 2000년대 전후로 해서 외국인이주노동자들이 주목받고 있을 때였다. 티비에서나 다른 매체들을 보다보니, 이들이 직접 목소리를 담아내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들과 함께 미디어 워크샵을 진행했었다. 내가 직접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니더라도 이들이 직접 이야기할 수 있는 매개 역할을 한는 게 행동이고 활동이고 예술이라고 생각했다. 이분들이 만든 결과물을 가지고 다양한 영화제와 세미나에 참여하고 전시도 하고 계속 보여줄 수 있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삶을 보면서 한국사회에서 남성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질문으로 베트남 참전군인들을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6년 정도 진행했고 인터뷰, 세미나, 답사, 지면작업 전시를 묶어 <이런 전쟁>이라는 작품집으로 출간했다. 그리고 동시에 성산동, 등촌동 임대아파트에서 4년간 공공미술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미술이 현실에서 실제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일까? 사라진 마을공동체를 아파트공동체라는 이름으로 다시 되살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의 과정이었다. 이후 금천예술공장에 입주작가로 들어갔고 미술에 대한 의무감이나 책임감보다는 일상속에서 즐길 수 있는 방법으로 금천구 주부님들과 함께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최혁규: 참여적이고 적극적인 것 같다. 그것도 영상작업뿐만 아니라 미술, 사진, 커뮤니티아트 등 어떤 것들을 이야기할 수 있는 여러 매체들을 활용하면서 작업을 했다. 그렇다면 투쟁 현장에서 현장예술로 이야기해볼 생각은 없는가?

 

흥순: 예를 들자면 용산 같은 경우도 참여하고 싶었지만 참여하지 못했다. 치열한 현장보다는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시작하는 것이 나하고 맞는 것 같다. 안타깝게도 이런 문제는 반복되기 때문에 끝난 게 끝난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미 끝났다고 생각했을 때 사라졌다고 생각했을 때 잊어버렸다고 생각했을 때 그것들을 기록하고 수집하는 것이다.

또한 각자 자리의 위치에서, 여러군데에서 파편적으로 나눠서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나로 모든 힘을 모은다는 것은 불가능한 거고 물론 그렇게 할 수도 있는 거긴 하지만, 각자 자신에게 걸맞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투쟁 현상보다는 일상에 더 관심을 두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볼 땐 일상이 실질적으로 눈에 보이지는 않는 투쟁 현장이다.

 

최혁규: 일상이 보이지 않는 투쟁의 영역이기도 하지만, 역으로 투쟁이 지속되다 보면 투쟁이 일상이 되기도 한다. 혹시 최후의 발언이 있는가? (웃음)

 

임흥순: 어떤 문제에 있어서 정치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 문화적 관점으로 접근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근시안적으로만 볼 게 아니라 거리를 두고서 봐야 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문화생태 혹은 환경생태라는 말을 하면 너무 피상적인 느낌을 받는데 이걸 피상적이지 않다라는 걸 보여줘야 한다. 구체적인 것들을 제시해줘야 한다. 말만 반복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일상에서 이게 왜 중요한지에 대한 부분들 말이다.

이런 면에서 <비념>이 일종의 가이드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 관광지로서의 제주도만이 아니라4·3과 강정마을 해군기지 문제와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땅으로서의 제주도가 있다는 생각의 가이드 역할 말이다. 올렛길이 있는 제주도가  있지만 조금만 더 들어가면 사람들이 사는 곳으로서의 제주도가 있다는 점을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최후의 발언이라기보다 최후의 바람이라고 해야 할까? (웃음)

 

*사진 출처:<비념>공식블로그(http://blog.naver.com/jejuprayer)와 서울독립영화제 공식블로그(http://siff.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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