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과 종이]아무것도 없는 우주는 없다 – 영화<그래비티> 속 우주(29호)

2013년 11월 12일culturalaction

아무것도 없는 우주는 없다 – 영화<그래비티> 속 우주

강신유

영화 기술의 진보는 분명히 계속되고 있음을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다. <그래비티>는 <아폴로13> 처럼 긴밀한 네러티브와 다양한 캐릭터는 없지만 압도적인 표현력에 의해 재현된 우주 만으로도 관객으로 하여금 러닝타임 내내 손에 땀을 쥐게 만들 수 있다. 우리는 영화를 통해서 우주를 접하는 것에 아주 익숙해 있지만, 이 영화를 통해 드디어 우주를 정말 체험한 것 같다. 그렇게 생생하게 제공된 이 영화 속 우주공간에서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우주의 사물들이 너무나도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인간 측면에서 적막하고 텅 빈 어두운 우주를 유일하게 채우는 것은 무중력이라는 절대적 원리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무한한 심연의 깊이는 인간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절대적 공포로 다가온다. 주인공들의 고향이자 돌아가야 할 장소인 지구만이 어둠이 아닌 것으로 스크린을 채워주는데, 태양빛을 받아 낮이 된 부분은 영롱하게 그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밤이 되면 사람이 모읶 도시만 밝게 눈에 띄어 그곳 인간의 존재감을 느끼게 만든다. 그런 지구 또한 발버둥치는 절망 속 주인공들을 따라가는 관객들이 보기에 너무나 무심해서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주인공과 함께 부유하는 카메라의 눈을 따라 이런 낯선 우주공간을 유영하다 보면 관객들은 자연스럽게 이 사실적 환상에 매혹된다.
이처럼 우주를 생생한 사실로서 재현하는 것이 관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했고 바로 이 부분이 이 영화의 매력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런 식의 접근 때문읷까, <그래비티>의 우주는 기존의 다양한 작품들에서 다룬 우주와 본질적으로 차이를 보읶다. 영화<그래비티>에서는 우주를 바라보는 관점이 오늘날 말하는 과학에 기반한 이성주의에 기반해서, 우주에게 그저 무한한 빈 공간 정도의 의미 외에 다른 특별한 생각을 부여하지 않는 듯 하다 . 이는 우주를 다룬 대작 스텐리 큐브릭의 <2001스페이스오디세이>와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더더욱 드러난다. 아서클라크 소설 원작의 이 영화는 당시 인간에게 새로이 열린 우주라는 미지의 세계를 다루면서 인류가 우주만큼이나 오랜 시간 외경심으로 대했던 신성神聖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절대적인 우주 앞에서 느낀 외경심 혹은 누미노제의 감정이 인간이 아주 오랜 옛날부터 신이라는 절대타자에게 느껴온 감정과 중첩되며 연결되기 때문에 우주를 논하면서 신성 혹은 인간의 기원과 관렦된 근원적 질문을 결부시키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읷이다. 그러나 <그래비티>는 우주 공간의 두려움을 전면에 내세움에도 불구하고 무한한 무無 이상의 의미를 여기에 부여하지 않는다. 어쩌면 이렇게 생명과 영이 없는 공간에서는 생의 의지를 가진 인간이 무한한 우주와 대등하다. 영화의 주인공 라이온과 코왈스키를 자세히 바라보면 그것이 잘 드러난다. 심연 속으로 점점 더 멀어져 가는 코왈스키는 라이온과 교신을 통해 대화를 이어가는데 그는 끝까지 그의 유머와 인간으로서의 당당함을 잃지 않는다. 압도적인 우주 앞에서 인간이 그리 할 수 있다고 상상하는 것은 특히나 사실로서 다가가는 이 영화의 방식과 맞물려서 인간성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드러낸다.
미지의 우주를 다룰 때 어떤 적대적인 의미를 꼭 부여해야만 하는가 라는 의문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우주를 놓고 꼭 누미노제와 신성을 이야기할 필요는 없지만 어떤 형태가 되었건 어둠과 침묵만이 가득한 우주를 우리 인간 혹은 생명과 연관 지어야만 한다고 생각힌다. 우주에 아무런 신성과 인격도 부여하지 않는 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 예술에 무한한 영감을 제공했던 원천을 말라버리게 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때때로 <그래비티>처럼 그러지 않고서도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작품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위에서 말한 것처럼 새로운 체험을 제공했기에 가능한 것일 뿐이기에, 그 감흥이 사라지면 자연스럽게 작품자체의 가치도 소멸될 것이다. 관객들이 우주적 체험에 익숙해지고 지루해하기 시작한다면, 그 이후에 텅 빈 우주를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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