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한전 전기 안 쓰는 게 소원인 밀양 주민들(29호)

2013년 10월 12일culturalaction
[편집자주]밀양 송전탑 그리고 에너지정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현대인은 외부에서 공급된 것에 의존하여 살아간다. 외부에서 공급되는 시스템에 길들여져 살다보니, 인간은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잃어버렸다. 의, 식, 주, 에너지 등등 현대인은 그 무엇하나 자기 손으로 직접 생산하지 못하고, 돈으로 소비한다. 그래서 전력소비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공급하기 위해 파괴되는 지역의 삶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한쪽의 소비를 위해, 한쪽의 삶을 파괴하는 것이 아닌, 수도권의 전력소비를 위해, 밀양 할머니들의 일상을 짓밟지 않을 수 있는, 다른 삶, 다른 에너지 시스템을 만들 수는 없을까? 이번 문화빵 29호 특집에서는 밀양에 송전탑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국가폭력과 송전탑 공사를 막고자하는 밀양할머니들의 일상, 그리고 대안적인 에너지 정책은 무엇인지를 다루어 보았다.
① 한전 전기 안 쓰는 게 소원인 밀양 주민들_이유진(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
② 밀양에서_고향, 농촌, 생태계, 인권은 도시처럼 뚝딱 짓는 것이 아니다_(진보넷 벨라)
③ 밀양전(戰), 그리고 밀양전(傳)_이안홍빈

한전 전기 안 쓰는 게 소원인 밀양 주민들

이유진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

지난 7월, 밀양송전탑 반대대책위 이계삼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주민들이 한전에 너무 화가 나서 “한전 전기를 끊고 싶은데, 방법이 없냐”는 것이다. 당장 전기계량기를 떼서 땅바닥에 내팽개치고 싶은 심정이라 했다. 5월 내내 산속에서 한전직원들에게 갖은 모욕을 당하며 보내온 어르신들은 가능하면 아껴 쓰고, 동네에서 전기를 생산할 방법이 있으면 돈을 모아서라도 해보고 싶다고 하셨다. 그 마음이 어떤지 알기에 소형디젤발전기를 임대해 가정용 전기를 공급하는 방법을 알아봤지만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다. 현재 우리나라 전력생산 시스템으로서는 비용이나 송전망 측면에서 한전에서 독립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국민들이 스스로 원하는 에너지를 선택할 수 있는 ‘에너지 주권’을 보장받고 있지 못하다.

대형 핵발전소와 765kV초고압 송전망 정책에 희생양이 된 밀양에서는 자연스럽게 지역에너지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에너지 ‘독립’을 하고 싶은 것이다. 현재 전력시스템은 매우 폭력적이다. 동해안과 서해안 작은 마을에 핵발전소와 석탄·화력발전소를 줄줄이 세워놓고는 초고압송전망으로 대도시인 수도권으로 송전한다. 한번 발전소가 들어서면 송전탑이 세워지고, 송전망이 있기 때문에 또 추가해서 발전소가 들어간다. 그렇게 누군가는 핵발전소와 석탄·화력발전소 주변에 살고, 송전탑 아래에서 농사를 짓는 동안 도시에서는 전기를 흥청망청 낭비하고 있다.

후쿠시마 사고는 우리가 쓰는 전기를 무엇으로 만드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면, 밀양 송전탑 반대 운동은 우리가 쓰는 전기가 어디에서 오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양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군가의 피와 눈물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전기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실제 시간이 갈수록 밀양송전탑에 대한 여론이 ‘송전탑 반대’ 쪽으로 확산되고 있다. 정부도 2차 에너지기본계획에서 ‘분산형 에너지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검토하고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더 이상 핵발전소를 짓지 않는 것이 우선이다.

현재 정부의 6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는 삼척과 영덕의 추가핵발전소 건설을 유보한다고 되어 있지만 만약 이를 추진할 경우 밀양만이 아니라 강원도와 경상북도에서 송전탑 반대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날 것이다. 더욱이 삼척과 영덕에서 생산한 전기가 수도권을 향할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이제는 전기를 사용하는 지역에서 생산해서 쓰거나, 도저히 생산할 수 있는 여력이 안 되면 줄이기라도 해야 한다. 그렇게 전력소비를 줄이고, 생산을 늘려 지역에너지 자립도를 높여야 한다. 삼척과 영덕, 밀양 주민들이 그렇게 핵발전소가 좋으면 청와대나 국회가 있는 서울에 지으라는 말이 에너지 정책의 불평등을 보여주는 핵심 구호이다.

후쿠시마 이후 독일은 2022년 탈핵을 선언하였다. 이미 독일은 전체 전력의 21.9%를 재생가능에너지로 생산한다. 핵발전 생산량(16%)을 훌쩍 넘어섰다. 독일 정부가 재생에너지법을 만들어 시민들이 태양광이나 풍력발전에 투자하고 수익을 얻을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재생가능에너지에 돈이 투자되면서 기술은 발전했고, 일자리는 늘어났다. 독일에서 재생가능에너지 분야에서 창출된 고용만 36만 명이다. 독일사회는 핵발전이나 화력발전을 이용해 에너지를 대량으로 생산하고 대량으로 소비하는 경제가 아니라 에너지를 적게 쓰고 효율적으로 사용하며, 지역형 재생가능에너지로 생산하는 경제로 전환했다. 시민들은 자신들이 사용하는 에너지원을 선택할 수도 있다. 쇠나우 같은 곳에서는 주민들이 주도해 전력회사를 만들었다. 독일에서 생산하는 재생가능에너지 전력 대부분은 지방자치단체와 소규모 기업(이들 중에는 협동조합도 큰 몫을 하고 있다)이 소유한 1300만 개의 시설에서 생산되고 있다. 다른 대안이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당장 밀양송전탑 건설을 중단하고, 단 한명의 국민이라도 고통 받지 않도록 에너지생산 시스템을 전환해야 한다.

더불어 이렇게 지역주민들을 짓밟고 만들어낸 전기의 절반 이상은 산업계에서 소비한다. 석유류보다 산업용 심야경부하 요금이 워낙 싸다보니 산업계의 전력소비량이 급증하고 있다. 산업계가 값싼 전기요금을 활용해 고급에너지인 전기를 가열하고 건조하는 데 쓰는 동안 전력소비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전력난이 심하니 발전소를 더 빨리 지어야 한다며 밀양을 뭉개고 가려고 한다. 전력소비 방식도 생산만큼이나 정의롭지 않은 것이다.

밀양 송전탑 반대운동을 계기로 한국의 에너지 정책에 혁명과도 같은 ‘전환’이 필요한 시기이다. 핵발전소의 잦은 고장과 사고, 비리는 마치 동굴 속 ‘카나리아’와 같이 경고음을 울리고 있다. 석탄·화력발전소는 이산화탄소 배출 때문에 안 된다. 발전소 건설도 송전망 건설도 한계에 도달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선택해야 할 일은 에너지를 적게 쓰는 사회로 전환하고, 에너지를 적게 쓰는 생활에 적응하는 일이다. 그리고 에너지 정의를 바로세우기 위해 지역에서 에너지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 피 묻은 다이아몬드만 있는 것이 아니다. 피 묻은 전기도 있다.

Leave a comment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Prev Post Next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