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문화운동은 박근혜 정부 출범 즈음에 무엇을 해야 하나? (8호)

2012년 12월 27일culturalaction

[특집] 8호

문화운동은 박근혜 정부 출범 즈음에 

무엇을 해야 하나?

원용진 (문화연대 집행위원장)

 

박근혜 당선자가 이겨버린 이번 대선은 전문가 멸종을 선언하는 한판 운동회 같았다. 정치 평론가란 직함을 달고 나온 이들은 자신의 사적 정치적 견해를 주저 없이 평론이라며 한껏 펼쳐냈다. 평론이라기 보다는 사적 견해임에 틀림없지만 대중매체들은 그를 크게 구분하지 않으려 했다. 오히려 사적 견해들 간의 충돌을 부추겼고, 극적 충돌과 지속을 부각시키기에 분주했다. 각 후보를 편드는 평론가들이 주먹만 오가지 않았을 뿐 부랑배들의 다툼 지경까지 다다르는 풍경을 연출했다. 대선이 끝나서도 그들의 활약은 눈부시고, 끝간 데 없다. 대선 결과에 대한 해석을 제공하느라 분주하다.

대선 전부터 공해스럽던 정치평론가들의 입이 대선 후에도 연장되고, 그래서 대선이 마무리되었다는 느낌을 갖지 못하고 있다. 제도권 정치와는 일정 거리를 두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그에 관심이 있을 수 밖에 없는 운동단체로서는 전문성 없는 소란과 자꾸 연장되는 대선국면이 걱정스럽기만 하다.

두 가지 점에서 그렇다. 첫째는 제도권 정치와는 상관없이 생활정치에 관심을 두고 있는 시민사회 운동은 제도권 정치가 대중 의제에서 정점에 서는 것을 반길 이유가 없다. 제도권 정치가 대중을 대의해서 대중의 일상을 윤택하게 해줄 수는 있지만 그건 언제나 한정적이다. 대중 의제에서 제도 정치는 주기적으로 그냥 오고갈 뿐이다. 다만 운동단체는 생활 정치를 더 고민하고 제도 정치를 그 함수안에 포함시킬 뿐이다. 대중들의 자발적 참여, 운동단체의 참여 조직화, 그리고 대의제적 제도정치와의 연계라는 수순을 밟는 것이 운동단체로선 지니고 있는 작은 소망이다. 그런 점에서 제도정치가 끝간 데 없이 지연되고 있는 것이 별로 상쾌할 리가 없다.

둘째는 제도권 정치는 참여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개선과 교정의 대상이라는 점 때문이다. 개선과 교정의 대상을 기대의 대상으로 전환시켜 두는 것은 정치에 관한 착시를 유발한다. 제도권 정치에 대한 고민은 어떻게 개선시켜서 생활정치에 다가올 수 있도록 할 것인가로 초점을 모아야 한다. 운동단체로서는 제도권 정치에 대해 특별히 시간을 내어 운동하는 특별한 국면을 만들 필요가 있을 뿐 상설적으로 그에 고민할 여력이 많지 않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이번 대선은 몇 가지 지점에서 운동단체가 고민해야 할 사안을 전해주고 있다. 첫 번째는 젊은 세대가 새로운 희망을 구하고자 하며, 움직임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그 동안 신자유주의 국면에서 젊은 세대는 보호의 대상이거나 신자유주의 경쟁에서 생존해야 하는 경쟁 주체로 묘사되었다. 그리고 호명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대선 국면에서 발랄한 모습으로 제도 정치에 참여하면서 자신들의 내일이 신자유주의국면에서 제안된 시나리오와는 달라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그들이 신자유주의 국면에서 벗어나고 새로운 삶을 꾸려갈 가능성의 사회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적극적으로 필요해진다. 조합적 일상, 협력적 생활, 코뮨적 삶 등 다양한 대안과 조직, 운동을 요청하고 있는 바 그를 기획하고, 조직화하며, 추동하는 힘을 갖추는 일이 운동단체의 과제가 되었다.

둘째, 보수성향의 후보를 제외하고는 새로운 비전의 사회상을 그리며 그를 향해 다가갈 의지를 표방하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더 많은 사례가 뒷받침되어야 하고, 시행착오를 기반으로 한 정책적 과제를 구성해내며 구체적 실천으로 이어지게 하는 일이 시급해졌다. 이미 이뤄지고 있는 많은 운동 방식, 형태를 정리하고 소개하는 일의 소중함을 의미한다. 제도 정치에서 내놓은 공약들의 추상성이 높았던 것도 제도정치의 업적 그라프를 챙겨주는 멱함수의 존재가 없었던 탓이다. 기왕 생활정치와 제도정치와의 접합을 부정하지 않는다면 그 일도 시급히 이뤄져야 하는 일이 되고 말았다.

이번 대선은 총선의 연장이었고, 그런 점에서 보자면 보수 야권이 연속으로 패한 경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지난 총선은 시민사회 내 여러 운동단체의 활동가들이 적극적으로 정치에 참여했고 진출한 때이기도 하다. 그들이 참여해 스스로는 제도정치의 입문에 성공했지만 헤게모니 구축에서는 거리가 멀었고, 이번 대선에서도 큰 활약을 보이진 못했다. 이는 시민사회운동단체의 위세의 하락으로 볼 수도 있고, 또 주요 활동가들의 공백으로 인한 미래의 불투명성과도 닿는 사안이다. 과거에 비해 더 큰 맥락의 연대운동이 사라졌고, 또 엄두도 내지 않는 실정이 되고 말았다. 울림이 덜할 뿐 아니라 울림을 보여줄 여력이 없다는 말이다. 운동세력의 약화, 의제의 부족, 연대의 어려움 등은 새로운 방식의 추스림이 필요함을 전해준다. 성명서 중심의 운동에서 탈피함은 물론이고, 생활밀착형으로 가는 일을 더 망설여서도 안 될 일이고, 생활밀착형적 실천으로 연대를 모색해야 할 때를 맞고 있다. 그것이 셋째 과제다.

넷째, 생존의 과제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강화된 시민사회 운동에 대한 억압은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생활정치, 대중밀착형 운동으로 버텨왔지만 그 움직임을 더 강화하고, 대중의 힘으로 운동이 생존할 수 있게 하는 모색이 필요한 때다.

어차피 현대사회에서의 시민사회운동은 이중 전략을 구사할 수밖에 없다. 현 제도 정치를 비판하고, 그가 생산적으로 가동되도록 돕는 일이 첫 번째 전략이다. 그러면서도 중심은 대중과의 연계에 두어야 한다. 하루빨리 대선이야기를 종식해야 하면서도, 대선으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하는 이유다. 새로 들어설 박근혜 정부를 이명박 정부와 분리해 사고할 근거는 거의 없어 보인다. 다만 대선과정에서 있었던 대중의 정서구조가 어떻게 바뀌어 있었던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맞춘 운동 방식과 주제를 찾아야 할 뿐이다. 입의 테크닉이 극도로 화려해진 정치평론가를 비켜가면서 투표 행위를 지표로 파악하며 대중의 욕망의 흐름을 정리해내야 한다

대선 과정에서 징후적으로 읽을 수 있었던 대중의 문화적 열망과 그에 대해 문화운동이 화답해야 할 것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첫째, 표현의 자유. 이명박 정부기간 동안 표현의 자유는 심하게 위축되었다. 이를 위축시키는 것이 정부의 과제인양 덤벼들기도 했다. 대선 기간 동안 유권자들의 재기발랄한 선거 운동, 소식 전하기 등이 과거보다 활발했던 것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보인다. 특히 대중매체가 지레 짐작으로 움츠려 들어 있는 상황에서 표현의 공간이 존재하게 하고, 그 안에서의 작동이 자유롭게 만드는 일은 문화운동이 역점을 두어야 할 작업이다.

둘째, 거대 담론이 아닌 미시담론으로 공동체를 모으고, 치유하며, 공동체 의제를 만드는데 기반이 되는 공동체 리터러시, 밈(meme)의 확산이 요청된다. 주변을 정치 공동체로만 사고하는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소통 공동체, 문화 공동체라는 인식을 갖도록 하는 일이 필요하다. 셋째, 새로운 문화적 경험의 선사다. 새로운 사회에 대한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새로운 사회를 설파하는 일은 무의미하다. 민중의 집, 코뮨의 가능성, 소통의 다변화 등을 통해서 경험의 폭을 넓히도록 하는 일은 소중하다. 대중을 계몽의 대상이 아니라 소통의 파트너로 삼고 그를 운동의 진동안으로 들어오도록 초대하는 일이 더 많아져야겠다. 문화운동이 앞장서 벌이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미 해오던 문화정책에 대한 가열찬 비판은 지속되겠지만 운동 역량을 에너지별로 배분하고 대중과 더 많은 접면을 갖도록 하는 일이 다시 과제도 부상하고 있는 셈이다.

멘붕에 처했다는 진단이 많다. 이해하지 못하는 바가 아니라 치유와 전망으로 재빨리 선회하는 일이 더 생산적이다. 항상 뒷 담화와 후회로 점철된 문화운동 세력으로 보이던 것에서 벗어나 지금껏 구축해온 성과를 기반으로 방향을 다잡고 에너지 배분의 영리함을 보인다면 지금껏 해온 운동이 오히려 더 성과를 거둘 수 있는 국면에 처해있기도 하다. 같은 국면의 되풀이라 여기지 않고 새로운 현상들이 이번 대선 국면에서 드러났으니 끝간 데 없이 복기를 되풀이하는 평론가적 입장에서 벗어나 언제나 그렇듯이 묵묵히 활동을 펼치는 일이 더 지혜롭지 않을까. 새로운 박정권을 운동이 스스로를 재고해고, 제고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국면으로 파악하면 그렇게 우울하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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