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다방]맛떼오 파스퀴넬리 『동물혼』서평 -욕망과 환상의 간극에서 회귀하는 동물혼-(27호)

2013년 10월 2일culturalaction
맛떼오 파스퀴넬리 『동물혼』서평
-욕망과 환상의 간극에서 회귀하는 동물혼-
한태준 (동국대학교 영화학 석사, <다중지성의 정원> 회원)
현대자본주의에 대한 동물우화집의 형태를 띠고 있는 맛떼오 파스퀴넬리의 『동물혼』은 서구 유럽의 포스트모더니즘의 전통과 단절하고, 포스트오뻬라이스모로 대표되는 자율주의적 맑스주의의 생각과 공명하며 현대자본주의 분석을 펼친다. 동물혼은 경제학자 케인스의 ‘야성적 충동(animal spirits)’ 개념에서 나온 말로 케인스는 이 충동들을 다스려져야 할 대상으로 보았다. 이에 대하여, 파스퀴넬리는 케인스의 개념을 전용하여 다중의 이미지를 이끌어내고, 동물혼은 다스려져야 할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역사를 추동하는 살아있는 힘으로서 회귀한다.
비르노는 자신의 저서인 『다중』에서 다중의 본성의 어두운 측면을 강조했고, 다중이 지닌 어두운 측면은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고 사보타주할 수 있는 추동적 힘으로서 제시된다. 파스퀴넬리는 이러한 다중의 어두운 측면(우리 내부에서 해방된 기이한(uncanny) 동물성)을 통해서 데몬크라시(demoncracy)를 도출해낸다. 저자는 현대 자본주의의 동학과 대안적 주체성을 분석하기 위한 요소로 머리 둘 달린 독수리, 히드라 그리고 기생체라는 세 개의 동물형상을 다룬다. 이들은 현대 자본주의에서 디지털 공유지(네트워크)에 기생하는 기업적 기생체, 토지 및 문화 공유지(메트로폴리스)에 기생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히드라, 미디어 공유지(미디어스케이프)에 기생하는 권력과 욕망의 독수리로 구체화되어 나타난다. 디지털, 창조도시, 미디어는 그것들에 도취되어 눈이 먼 이론가들에 의해 운동의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되었다.
그와 달리, 파스퀴넬리는 이 세 영역(디지털, 창조도시, 미디어)이 지닌 동물본성에 초점을 맞춘다. 저자는 미셸 세르의 『기생체』에서 기생체 개념을 가지고 와 디지털 산업이 지닌 디스토피아적인 면을 디지털 공유지에 기생하는 기업적 기생체로 설명한다. 디지털리즘으로 포괄될 수 있는 디지털 및 디지털 전위들(자유 소프트웨어,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등)이 실은 진정한 자율이 아니며 기생체들과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음을 자각하게 하고 조화롭고 평화로운 네트워크 유토피아의 꿈을 비판한다. 기술-이데올로기의 환상을 밝히고 비물질적인 기생의 역할을 완전하게 이해하는 데 유용한 새로운 지대 이론을 자율주의적 맑스주의의 이론적 전통에서 발전시키고 확장한다.
지대는 새로운 이윤으로, 인지자본주의의 디스토피아적 기생체이다. 지대는 예전에는 공통적인 토지에 드리워졌지만, 오늘날에는 네트워크 공유지에 드리워진다. 소득의 정체와 노동의 불안정화가 일어나는 한편, 지대는 병렬적 수준에서 에너지를 축적한다. 디지털 공유지에서 어떠한 콘텐츠도 생산하지 않고 이윤을 추출한다. 웹사이트에 침투하는 광고를 위한 가벼운 기반시설을 제공하여 이용자들이 생산한 콘텐츠의 관심 경제만으로 이윤을 창출하게 된 것이다. 지대 이론은 결국 가치 축적의 관점에서 새로운 장의 갈등과 사보타주를 조명하는데, 이것이 새로운 공유지를 생산하고 보호하는 데 결정적으로 된다.
저자는 디지털 공유지(네트워크)에 기생하는 기업적 기생체에 이어, 문화 산업의 삶형태적 무의식으로 돌출되는 언어의 히드라를 묘사한다. 창조산업과 창조경제를 설명하기에 앞서 이들이 (최근의 국내정세를 포함하여) 비판 이론 무대 전면에 나타나게 된 이유를 유럽의 ‘대륙적인’ 계보학과 영미의 계보학을 비교하여 설명한다. 그리고, 가치 창출의 양상이 항상 집단적(공동적)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모든 인지적 생산물이 정치적 본성을 갖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디지털 네트워크와 인지적 축적이라는 무형의 경제에서 시간은 더 이상 가치의 척도가 아니라 단순히 경쟁의 공간일 뿐이다. 이런 경쟁의 공간에서 가장 진기한 상품은 관심이다. 우리의 관심은 시간으로 분절화되어 하루에도 무수히 각종 매체들에 의해서  착취된다. 이는 물질적인 영역에 의한 비물질적인 영역의 기생적 착취를 드러낸다.
도시에 상표를 부여하고 투기를 촉진하는 움직임으로서 바르셀로나와 베를린의 사례는 적절하다. 거리의 미술가들은 도시의 미화 사업에 자신의 능력을 착취당한다. 이들의 저항적 움직임조차 도시의 투기 촉진의 한 고리로 배치된다. 데이비드 하비는 전지구적 자본이 탁월성의 표시들을 홍보하기 위해 사실상 지역적 저항을 조장한다는 모순을 제시한다. 하비가 도입한 집합적 상징자본이란 개념은 본서에서 중요한 핵심용어로서 등장한다. 파스퀴넬리는 바르셀로나라는 브랜드가 다수에 의해 생산되는, 그러나 소수에 의해 착취되는, ‘공감각적인 환각’임을 강조한다. 창조적 노동자들은 도시의 악순환에 빠져 부동산 사업을 위해 자신의 능력을 착취당한다.
스펙타클 사회에서 비물질적인 착취의 대상은 노동하도록 강제당한 자신들의 삶이 생산한 상징자본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불안정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모든 인지적 활동이 24시간 노동에 얽매인 채로 살아간다. 집과 일터의 경계는 사라지고, 도시의 모든 공간이 하나의 사회적 공장으로 다중의 신체를 착취한다.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전통적인 정치적 분석은 비윤리적인 사업 관행에 맞서는 도덕적인 불평이라는 통상적인 지점에서 멈추지만, 파스퀴넬리는 젠트리피케이션에 관해 두 개의 분석적 선택, 전지구적 자본의 시간(屍姦)과 가치의 근원이 되는 실재적인 사회적 주체에로 관심을 돌린다. 저자의 이러한 양가적인 서술형태는 표면적인 사례연구에 멈추지 않고 모든 문화산업에 대한 통찰을 제시하며 ‘창조적으로 되지 않기’라는 사보타주 문법으로 귀결된다.
저자는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물질적 영역에서 비물질적 영역인 미디어로 넘어와 머리 둘 달린 괴물로서 집합적 상상계의 내부를 조명한다. 미디어에서 인터넷 포르노, 전쟁 형상물, 비디오 테러리즘의 형태들 속에 구현되어 있는 매우 물질적인 동물혼의 새로운 세대가 등장한다. 이미지의 범람으로 눈이 먼 현대인의 모습은 자신의 결핍을 통해서 끊임없이 욕망을 쫓는 포식자의 형상을 하고 있다. 잔혹하고 폭력적인 이미지들이 매 순간 각 매체들을 통해 유포되고, 복제된다.
프란시스 베이컨의 작품을 통해서 들뢰즈는 이미지를 해체하며, 잠재적인 동물혼을 보여준다. 들뢰즈에게 이미지의 다이어그램은, 단지 눈만이 아닌 신경계를 직접적으로 ‘신경학의 한 분야’로 다루는 촉각적 공간이다. 이 책은 도상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힘들의 본성과 이름을 포착해 내기 위해서 인간에게서 동물혼을 제거하려 한 기존의 급진적인 비판이론과 거리를 두며 인간과 동물의 분리를 극복하고 동물혼을 복원하고자 한다.
집합적 상상계는 미디어 기반 시설이, 수백만 개의 변이들 속에서 동일한 이미지를 반복하고, 공통적이고 공유된 공간을 생산할 때에 나타난다. 리비도적 경제의 관점에서 볼 때, 미디어는 우리의 욕망을 끌어내고 응축하는 다대일의 풀(pull)미디어이다. 모니터에 범람하는 각종 사이트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인류의 자연적 본능인 소속되고자 하는 욕망의 왜곡이 미디어 기구를 유지하고 욕망한다.
새로운 디지털 미디어는 자본주의의 착취의 도구로서 사용될 수도 있지만, 예측 불가능한 디지털 아나키를 창출할 수도 있다. 영상폰 한 대가 제국과 맞서 싸울 수 있으며, 포르노의 작은 필름 조각(푸티지footage)이 저항의 의미로서 다가올 수 있다. 이처럼, 전쟁 펑크는 급진적인 이미지들을 합법적 방어의 무기로 활용한다. 세계에 자신의 실재적인 동물적 배경을 노출하는 이미지들의 난장, 이것이 전쟁 펑크인 것이다.
『동물혼』은 맑스의 잉여가치 축적에서부터 바티유의 초과(excess), 들뢰즈와 가따리의 욕망하는 생산에서 슈뢰딩거의 네겐트로피로 이동하면서 리비도적 기생체라는 이론적 형상으로 결절점을 응축한다. 가상적 체계에서 머문 기존 이론과 차별을 두며, 네트워크를 외부 잉여와 관계를 맺는 어떤 것으로 정의한다. 이 책은 기존 미디어 비판 이론들에 대한 세부적인 지도제작(mapping)을 통해 전체 미디어스케이프에 대한 하나의 표본(동물우화)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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