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연의 문화읽기]문화기본법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 (27호)

2013년 10월 2일culturalaction
문화기본법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까?  
이동연(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문화예술계의 오랜 숙원인 ‘문화기본법’이 제19대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소위에 통과되어 조만간 법 제정을 위한 본격적인 행보를 앞두고 있다. 앞으로 법 제정을 위해 거쳐야 할 단계가 많지만, 여야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법이 아니기 때문에, 올해 제정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박근혜 정부가 이 법 제정을 문화 분야의 국정과제 중에서 가장 중요하게 간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화기본법은 문화연대가 작년에 각 대선 후보들에게 전달한 문화정책100대 공약 제안 중에서 첫 번째 항목이었고, 이 법의 제정 배경과 취지에는 문화예술계의 진보적인 시각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다. 처음에 이 법 제정이 참여정부에서 추진된 것도 주지의 사실이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가 대선 공약 때부터 지금까지 문화기본법 제정을 일관되게 가장 중요한 문화 정책과제로 삼은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박근혜 정부가 주요 국정과제 중 하나로 제시한 문화융성 정책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문화기본법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문화기본법이 문화융성의 구체적인 정책과제들을 명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문화정책을 총괄하고 확대하는 차원에서 이 법이 갖는 상징적 지위는 무시할 수 없다. 문화기본법은 어떤 점에서 박근혜 정부가 중시하는 문화융성 정책을 실현하는 데 있어 첫 번째 단추에 해당되는 것이다.
현재 상정된 문화기본법 안에는 비록 한계가 없지 않지만 문화의 가치와 문화의 사회적 역할 등에 대한 나름 새로운 시각이 담겨 있다. 이 법의 제정으로 우리가 중요한 고려해야 할 문화정책의 주요 실천 과제를 몇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국민의 문화적 권리가 분명하게 보장될 수 있다는 점이다. 문화기본법 제4조 국민의 권리 조항은 “모든 국민은 성별, 종교, 인종, 세대, 지역, 사회적 신분, 경제적 지위나 신체적 조건 등에 관계없이 문화 표현과 활동에서 차별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문화를 창조하고 문화 활동에 참여하며 문화를 향유할 권리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 조항에 따르면 국민의 권리는 차이의 권리와 접근의 권리를 보장받는다. 표현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받고, 문화 활동에 있어 계층적, 지역적, 성적, 성별적, 신체적 차별을 받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개인들이 자신들의 일상에서 다양한 문화를 향수할 수 있도록 다양한 문화적 접근 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다.
둘째, 문화영향평가를 통해서 문화의 공공성과 균형성을 높일 수 있다. 문화기본법 제5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 조항을 보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각종 계획과 정책을 수립할 때에 문화적 관점에서 국민의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여 문화적 가치가 사회적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문화영향평가는 환경영향평가처럼 대규모 국가 개발 사업이나 기업의 투자 사업이 진행될 때 그것이 문화적 관점에서 타당한가를 평가함으로써 문화 공공성을 높일 수 있다. 또한 지역별, 계층별로 국민의 문화적 향수와 참여가 차별 없이 균형 있게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평가할 수 있다. 문화영향평가 제도를 통해서 문화 공공 예산의 무분별한 낭비를 막고, 난개발, 대규모 자본투자 사업에서 문화환경과 문화경관, 문화접근권의 관점을 지켜낼 할 수 있다.
세 번째 문화인력 양성에 대한 좀 더 큰 틀의 국가 계획을 수립할 수 있다. 현재 문화예술계에 종사하고 있는 인력들은 다른 경제 사회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인력에 비해서 활동 영역, 임금 수준면에서 열악한 상황에 있다. 예술전공자들이 졸업 후에 사회진출을 시도할 때, 마땅히 들어갈 수 있는 분야도 한정되어 있고, 노동조건과 임금 수준도 형편없다. 문화산업계의 기층 노동인력의 경우에도 제대로 된 계약도 없이 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소모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른바 21세기 문화의 시대에 정작 창조적인 문화예술 인력들이 설자리가 없는 것이다. 문화기본법은 우리 사회에서 문화예술 인력들이 사회에 진출 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고, 창의적 활동에 종사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획의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다.
마지막으로 문화의 창의적 잠재성을 높일 수 있는 높은 차원의 연구와 개발을 본격화 할 수 있다. 그동안 문화 분야의 연구 개발은 정책 평가와 정보 확보 수준에서 머물러 있거나 지나치게 기술에 의존한 상업적 콘텐츠 개발에 집중했다. 문화가 미래의 중요한 창조적 자원으로 활용되기 위해서는 문화의 연구개발은 문화의 창조성을 중심으로 새로운 유형의 자원 개발로 전환되어야 한다. 자본과 상품을 이롭게 하는 연구개발이 아니라 인간의 삶의 행복을 위해 문화가 어떤 창조적 자원이 되어야하는지를 문화기본법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문화기본법의 이러한 위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이 법이 문화체육관광부만을 위한 행정총괄법으로 축소되어서는 안 된다. 현재 국회에 상정된 법안의 조문들을 살펴보면, 문화기본법은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행정총괄법의 수준을 뛰어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이 법 조문에 실제로 기술되고 있는 문화권리, 문화다양성에 대한 개념 정의가 빠져있다. 문화민주주의, 문화창의성, 문화복지 등에 대한 언급이 문화기본법에 충분하게 정의 및 설명되지 못한 것도 아쉽다.
무엇보다도 문화기본법의 목적과 이념, 및 문화진흥 계획을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문화정책의 실행 체계가 구체화되어야 한다. 말하자면 이 법이 제정되면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문화의 위상이 얼마나 높아지고, 일반 시민들의 문화적 권리가 얼마나 신장되는 지에 대한 기대감을 가질 수 있도록 문화재원의 확충, 문화행정 체계의 혁신 등이 이루어질 의문이다. 따라서 문화기본법 제정도 중요하지만, 이 법의 핵심 가치들을 실현할 수 있는 향후 문화정책의 구체적인 실천이 더 중요한다. 문화기본법이 만들어지면 우리들은  과연 행복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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