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다방]전쟁과 평화, 차별과 인권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만화 『플루토』(24호)

2013년 8월 16일culturalaction
전쟁과 평화, 차별과 인권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만화 『플루토』
이용석
우라사와 나오키의 『몬스터』를 본 건 고등학생 때였다. 결말이 좀 실망스럽긴 했지만, 영화 같은 짜임새 있는 구성에 푹 빠져 아주 재미있게 봤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가서 『20세기 소년』을 만났다. 어느 날 꿈에서 내가 켄지 일당이 될 정도로 이 만화에 깊이 몰입했다. 그러면서 우라사와 나오키의 다른 작품들까지 찾아봤다. 『야와라』,『해피』 같은 초기작들까지 모조리. 우라사와 나오키는 곰곰이 생각해보면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특유의 구성력으로 아주 실감나는 현실로 바꾸는 데 재주가 있었다.
그래서 우라사와 나오키가 『플루토』를 연재한다고 했을 때, 약간 의아하면서도 좀 다른 종류의 기대감이 컸다. 무엇보다 테츠카 오사무의 『아톰』을 리메이크 하다니! 내 어린 시절 가장 좋아하던 만화, 내 장난감 가운데 가장 아끼던 장난감이 바로 아톰이었다. 거장의 작품을, 게다가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에 아주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는 캐릭터 이미지를 과연 잘 극복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우라사와 나오키라면 왠지 해 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도 있었다.
연재 되는 동안 꾹 참고 기다리다가(나오키는 실제로 책 한 권이 나오는 속도가 엄청 느리다. 『20세기 소년』은 내가 수감되어 있던 1년 3개월 동안 고작 한 권이 나왔을 정도였다.) 완결이 되고 나서 본 『플루토』는 기대 이상이었다. 이건 완벽하게 우라사와 나오키의 만화였고, 아톰은 데즈카 오사무의 색깔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은, 순수하게 나오키가 창조해낸 캐릭터처럼 느껴졌다. 잘 알다시피 『플루토』는 아톰 시리즈 가운데서 『지상 최대의 로봇』을 리메이크한 작품이다. 원작의 인물이나 구도는 거의 그대로 가져왔다. 다만 분량이 원작보다 늘어나면서 각 로봇들에 대한 스토리가 훨씬 풍부해졌고, 이라크 전쟁을 연상시키는 설정들 덕분에 ‘전쟁 반대’ 메시지가 훨씬 선명해졌다.
나는 크게 두 가지 축을 중심으로 이 만화를 봤다.
한 축은 로봇에 대한 이야기다. 고도로 발달한 과학기술로 사람과 거의 다를 바 없는, 감정을 가진 로봇까지 만드는 시대. 전쟁에서 수많은 동족 로봇을 파괴한 뒤 마치 죄를 씻어내려는 듯 손을 씻는 로봇이나, 증오와 분노 같은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을 느끼고, 가까운 로봇이 죽었을 때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는 로봇들을 보면 과연 인간과 로봇의 경계는 의미가 없어 보인다. 가장 완벽한, 그래서 인간에 가장 가까운 로봇이란 ‘인간을 죽일 수 있는 로봇’이라는 설정은, 로봇을 통해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를 묻고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데 중요한 키워드인 ‘로봇 인권’이 있다. 로봇 인권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죽어가고, 로봇에 대한 혐오와 차별을 공공연하게 떠드는 극단주의자들이 있고, 로봇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로봇인권법이 있다. 나는 이러한 설정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차별금지법이 떠올랐다. 작가가 현실의 소수자들을 떠올리면서 이런 설정을 구상한 것인지는 알 도리가 없지만, 너무나 판박이로 닮아있었다. 『플루토』의 ‘로봇’자리에 ‘성소수자’를 넣어도 아무런 무리가 없을 정도로.
이야기의 또 다른 축은 바로 전쟁이다. 플로투가 파괴하는 지상 최대의 로봇들은 트라키아 공화국이 주도해서 페르시아 왕국과 벌인 전쟁에 참전한 로봇들이었다, 세계 최강대국인 트라키아 공화국은 독재자가 군림하고 있는 페르시아 왕국이 대량살상로봇을 만들고 있다며 조사단을 보내고, 전쟁을 일으킨다. 이 설정은 누가 보더라고 이라크 전쟁을 떠오르게 만든다. 실제로 페르시아의 독재 군주 다리우스 13세는 후세인처럼 생겼고 트라키아 공화국의 대통령은 조지 부시처럼 생겼다. 작품 전반에 걸쳐있는 전쟁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고려한다면, 이 만화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만화로 봐도 무방할 정도다. 특히나 각자의 방식으로 전쟁에 참전했던 세계 최고의 로봇들의 심리 묘사는 전쟁이 과연 우리에게 남긴 게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타고난 전쟁 병기인 스코틀랜드의 노스2호는 전쟁이 끝난 뒤 피아노를 배우고 싶어 하고, 시인이자 숲의 친구였던 몽블랑은 전쟁이 끝난 뒤 폐허가 된 전쟁터에서, 이 전쟁은 무슨 의미였는지에 대해 고뇌한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내 관심을 쏠린 것은 앱실론이라는 로봇이었다. 광자 에너지를 쓰는 앱실론은 만화에서 설정에 따르면 최고의 로봇들 가운데서도 가장 강한 에너지를 가진 로봇이었다. 그런데 그 앱실론은 페르시아 전쟁에 참전을 거부한다. 그렇다. 병역거부자이다. 앱실론은 ‘겁쟁이, 비겁자’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전쟁고아들을 돌보는 일을 한다. 병역거부자라니, 무척 반가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플루토, 아니 플루토의 인공지능인 사하드라는 로봇에 나는 눈이 갔다. 사막이 고향인 사하드는, 사막을 아름다운 꽃밭으로 바꾸려는 마음을 가진 로봇이었지만, 플루토의 몸에 속박당한 채 원치 않는 살인을 강요받으며 괴로워한다. 전쟁을 거부하고 전쟁 고아 아이들을 돌보는 앱실론이나, 전쟁 대신 꽃밭을 만들고 싶어 했던 사하드가 이 만화의 진정한 주인공이 아니었을까? 우라사와 나오키가 전쟁과 평화에 대해 하고 싶던 말을 이 두 로봇이 전해준 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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