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인권조례의 의미(23호)

2013년 7월 29일culturalaction
[편집자주]인권조례는 우리의 일상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이번 문화빵 23호 특집에서의 질문입니다. 2012년 4월 국가인권위원회가 각 지방자치단체에 인권조례 제정을 권고한 이후 서울의 25개구 기초자치단체에서는 인권기본조례를 제정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마포구에서도 「인권보호 및 증진에 관한 조례」 제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지난 7월 25일 마포구 시민사회단체들은 마포구의 일방적인 조례제정 추진과정에 유감을 표하며 「‘주민과 함께’만드는 마포구 인권조례, 어떻게 제정할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하였습니다. 국가차원의 법률이 아닌 지역의 법으로서 인권기본조례가 갖는 의미, 마포구 인권현안과 인권조례의 관계, 그리고 마포구 인권조례가 제정되는 과정에서 제외해서는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번 특집에서 살펴보았습니다.
① 인권조례의 의미_하승수(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변호사)
② 마포구 인권현안 돌아보기, 그리고 인권조례(민중의집 공동대표 정경섭)
③ 사랑은 지금 무엇을 하려고 하는가(마포레인보우 주민연대 김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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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23호
 
 
인권조례의 의미
 
 
 
하승수(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 변호사)
 
 
인권조례에 대해 얘기하면, 많이 받는 질문이 ‘그런데 왜 조례입니까?’라는 질문이다. 인권문제를 다루는 국가차원의 법률도 있고, 지금의 법률에 문제가 많으면 그 법률을 고치는 게 낫지 않느냐? 는 얘기이다. 
 
그러나 인권을 국가차원으로만 접근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첫째, 국가차원의 법률은 쉽게 바뀌지 않을 뿐만 아니라, 왜곡되기도 쉽다. 특히 인권문제와 관련해서는 타협하지 않는 정치세력이 없거나 그런 정치세력이 상당한 정치적 힘을 갖고 있지 못한 국가의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예전에 학생인권법안이 국회에서 발의된 적이 있었다. 진보정당의 국회의원이 발의를 했지만, 이 법안은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그 결과 초ㆍ중등교육법에 “헌법과 국제인권조약에 명시된 학생의 인권을 보장하여야 한다“는 한 줄이 들어갔을 뿐이다. 이런 추상적인 조항으로 실질적인 변화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둘째, 국가차원의 법률을 만드는 과정에는 시민들이나 인권문제의 당사자들이 참여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거대한 국가가 가진 한계이기도 하다. 그리고 법률이 만들어지더라도 사람들이 잘 모른다. 만드는 과정에서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법률이 만들어지더라도 모르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 문화를 바꾸는 것이 중요한 인권영역에서는 심각한 문제가 된다. 법률은 바뀌어도 실제로는 변하는 것이 없는 현상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국가의 많은 지역들에서 지역의 법으로 인권문제를 접근해 왔다. 우리나라에서도 ‘조례’라는 이름으로 만들 수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법으로 인권문제를 접근해 왔다. 그래서 2009년부터 서울, 경기, 광주 등지에서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졌고, 2012년에는 서울시에서 어린이ㆍ청소년인권조례가 제정되었다. 장애인, 성평등 등과 관련해서도 여러 조례들이 만들어져 왔다.  
 
이렇게 조례를 통해 인권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몇 가지 장점이 있다. 첫째, 국제인권조약을 이행하라는 사회적 압력을 강화할 수 있다. 현재 인권과 관련해서는 국제인권조약들이 있다. 이 인권조약에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가입을 하면 국내법과 동일한 효력이 있다고 헌법에 되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인권조약에 가입하는 것이 실효성을 가지지 못한다. 가입만 해 놓고, 그 조약의 이행을 위한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답답함을 해소할 수 있는 것이 조례이다. 국제인권조약을 상위법적 근거로 삼아 조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으로써 사문화될 수 있는 국제인권조약이 생명력을 가질 수 있게 하고, 국제인권조약의 이행을 촉구하는 실질적인 압력을 만들 수 있다. 또한 조례 제정과정에서 시민들에게 ‘이런 인권조약이 있다’, ‘이것이 보편적인 인권기준이다‘라는 것을 알릴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둘째, 추상적인 인권규범을 구체화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국가마다, 지역마다 인권과 관련된 상황은 다르기 마련이고, 구체적인 인권이슈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다. 국가차원의 법률에서도 인권에 관한 기준을 구체적으로 마련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다. 그런데 조례를 통해서는 인권과 관련된 기준을 구체적으로 만들 수 있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하고, 이런 행위는 해서는 안되고 하는 내용을 담을 수 있다. 예를 들면, 학생인권조례를 만들 때에 체벌은 하지 말고, 두발이나 복장과 관련해서는 어떻게 하고 하는 식의 구체적인 내용을 담을 수 있는 것이다. 인권교육이나 홍보와 관련해서도 구체적으로 어떻게 교육하고 어떻게 홍보하라는 내용을 담을 수 있다. 이런 구체성이 조례가 가지는 장점이다. 
 
셋째, 인권이 침해당했을 때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구제절차에 대해 지역나름대로 만들 수 있다. 국제인권기구나 국가인권기구는 인권침해를 당한 당사자 입장에서는 너무 먼 존재일 수 있다. 그래서 지역에서 조례를 통해 ‘인권옴부즈퍼슨(Obudsperson)’같은 구제기구와 지역특성에 맞는 구제절차를 마련할 수 있다. 
 
넷째, 가장 중요한 참여의 통로를 만들 수 있다. 사회적 약자나 소수자는 자신의 인권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참여기구와 참여절차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국가차원에서도 필요하지만, 인구규모가 크고 공간적 범위가 넓어서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지역에서는 조례를 통해서 참여기구와 절차를 당사자들과 시민들이 참여하기 쉽도록 만들 수 있다. 
 
인권1.jpg
 
마지막으로 인권조례 제정이 가지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사람들의 삶속에서 아래로부터 인권을 실현해 나가자는 것이다. 지역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공간이다. 인권, 평화, 생태 이런 가치들이 우리들의 삶속에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삶의 공간인 지역에서부터 이런 가치들이 실현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인권조례를 만드는 것은 인권을 우리 삶속에 체화해나가는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권조례 제정이 형식적인 절차로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국내의 상황을 보면,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형식적으로 ‘인권조례를 만들었다’는 실적쌓기로 끝내려는 경우들을 본다. 그렇게 해서는 인권조례를 만드는 의미가 없다. 
 
인권조례는 만드는 과정부터 인권의 가치를 확산하는 과정이 되어야 한다. 시민들의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 소수자들, 청소년들, 차별이나 배제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참여가 보장되어야 한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만들어지는 인권조례라야 생명력이 있다. 그리고 이런 힘들이 쌓이면 그 힘으로 국가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꿈이 꼭 현실로 되도록 지역에서부터 인권조례 제정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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