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 바로 한미SOFA(21호)

2013년 7월 3일culturalaction
[편집자주] 2004년 한국으로 되돌아 온 용산미군기지. 정부는 용산미군기지 터를 국가공원으로 만든다며 법을 제정하고 국제공모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한국 정부, 서울시를 비롯해서 이 땅에 사는 그 누구도 용산미군기지 터에 대한 실태조사조차 해보지 못했습니다. 지난 2000년 “용산미군기지를 생태문화공간으로 만들자”는 캠페인을 시작했던 문화연대, 지금의 상황으로 본다면 과연 그 곳이 “생태문화공간”이 될지 “미군범죄박물관”이 될지 결코 장담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답답한 마음이지만 다시 한 번 용산미군기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봅니다.
① 다시, 용산미군기지를 생태문화공간으로! / 이원재 (문화연대)
② 용산미군기지, 환경오염부터 해결해야 / 정인철 (생태지평연구소 정책팀장)
③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 바로 한미SOFA / 박정경수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사무국장)
………………………………………………………………………………………………………………………………………….
[특집]21호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 바로 한미SOFA
박정경수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 사무국장)
유난히 60년이라는 시간이 강조되는 한 해 입니다. 누군가는 올해를 정전협정 60주년이라고 이야기하고, 또 누군가는 한미협력 60주년이라고 강조합니다. 누구나 자신의 입장에서 그 시간을 해석하고, 또 이해하고 싶어 합니다. 반면 누군가에게는 이 시간이 미군기지와 살았던 60년이기도 합니다. 시간이 양적으로 증가해 왔다고 해서 변한 것이 없다면 60년이라는 시간도 허울만 좋은 명분에 불과합니다. 특히 이제는 시간이 멈춰버린 것 같은 기지촌의 모습을 떠올려볼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주민들의 삶 또한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미군범죄와 소음피해, 그리고 환경사고 등으로 받았던 고통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한미SOFA”입니다.
미군범죄가 일어나도, 미군기지에서 환경사고가 발생해도 어김없이 반복되는 말이 있습니다. “불평등한 한미SOFA를 개정해야 합니다.”라는 주장입니다. 그래서 간혹 주한미군이 무슨 일만 벌이면 한미SOFA 개정부터 이야기를 한다고 피로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입니다. 간혹 누군가는 “한미SOFA 개정 말고 다른 대안은 없습니까?”라고 물어오기도 합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SOFA가 더 이상 TV 앞에 놓인 커다란 가구만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간혹 한미SOFA가 미군들을 위한 안락한 소파가 되었다고 농을 치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데 그것이 틀린 말은 아닙니다.
한미 SOFA는 주한미군의 법적 지위와 특권을 다루고 있는 한미 간의 협정입니다. 일반적으로 외국인들도 국내법을 따르는 것이 국제적 상식이지만, 군대의 경우는 주둔하는 특수한 목적을 이유로 방문국과 주둔국 간에 특별히 SOFA라는 협정을 체결하기도 합니다. 한국도 외국에 군대를 파견할 때 다른 나라와 다양한 형태의 SOFA를 맺습니다. 미국 역시 전 세계 60여 개 국가에 군대를 파견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1953년 미군과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고, 14년이 지난 1967년 한미SOFA를 체결했습니다. 그마저도 과거 박정희 정권에서 1964년 베트남 파병과 1965년 한일협정을 체결한 대가라는 사실은 빠트릴 수 없습니다. SOFA가 만들어지기 전, 50년대와 60년대는 기지촌을 중심으로 미군들에 의한 방화사건이 굉장히 빈번했습니다. 미군들이 살인이나 성폭행을 저지르고 증거를 없애기 위해 불을 질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한국에서 이들을 체포하거나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이 없었습니다.
한미SOFA는 1991년, 2001년 두 차례 개정된 바 있습니다. 이런 변화는 한미관계, 특히 기지 주변에서 미군들에 의한 사건사고를 현격하게 바꾸어놓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80년대 까지만 해도 범죄를 일으킨 미군의 채 1%도 되지 않는 숫자만이 한국에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당시에는 한국에서 특별한 외교적 경로를 통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한국의 재판권을 자동으로 포기하도록 되어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변화는 90년대 점차 증가해서 4%대까지 증가했고, 최근에는 문제를 일으킨 미군의 30% 이상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재판을 받지 않는 미군이 더 많다는 사실은 변함없습니다.
얼마 전 용산미군기지 녹사평역 주변 오염사고에 대해 “조사도 못하는 용산미군 기름유출 화가 난다”는 서울시장의 발언이 있었습니다. 잘 알려진 환경사고이긴 하지만 2001년 발생한 유류 오염사고가 지금까지 정화가 끝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시민들에게 무척 충격적이었을 것입니다. 당시 사건이 발생하고 기름 오염의 원인이 미군기지라는 것을 확인하는 데에만 1년 반이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합니다. 미군들이 오염사고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고, 기지 내부에 대한 조사를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기름의 성분이 JP-8이라는 미군 항공유라는 사실을 확인하고서야 겨우 미군기지 오염사고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측에서 기지 내부에 대한 조사나 정화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기지 밖은 한국 정부가, 기지 안쪽은 미군 측이 정화를 하기로 했던 것이지요. 그마저도 서울시에서 먼저 기지 주변을 정화하고 발생한 비용을 한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해서 받아내는 웃을 수도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지금까지 미군기지 내부에 대한 정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다보니, 기지 밖에서 10여 년째 정화작업을 계속해도 기지 안에서 흘러나온 기름으로 정화가 끝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꾸미기_박정경수1.jpg
애초에 미군기지 이전사업으로 2008년까지 이전하려던 용산 미군기지가 지금까지 이전하지 못하면서, 기지를 오염된 채로 버리고 가려던 주한미군의 계획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2016년 미군기지가 평택으로 이전하더라도 남은 환경정화 비용은 고스란히 우리 정부의 몫입니다. 국토해양부는 이미 용산기지의 정화비용으로 1000억 원이 넘는 돈을 책정해두고 있습니다. 이 비용이 몇 배로 증가할 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앞선 녹사평의 기름유출사고는 한미SOFA 환경조항의 문제점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한미SOFA는 2001년 개정되면서 환경조항이 들어간 것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환경에 대한 선언적인 문구만 존재할 뿐, 아직 실질적인 권한은 주어져있지 않습니다. 기지오염에 대한 정보도 공개할 수 없고, 미군기지 내부에 대한 조사도 진행할 수 없으며, 오염에 대한 기준도 불명확합니다. 무엇보다 오염자 부담원칙이 지켜지지 않아서 지금까지 미군이 제대로 정화비용을 지불한 사례는 없습니다.
환경사고는 땅만 오염시키는 것이 아니고, 주민들의 건강까지 위협하기 때문에 더욱 위험합니다. 지난 2011년 왜관의 미군기지 캠프캐럴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엽제의 매립 여부만 관심을 가졌지만,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미 기지 안은 다른 불법 매립으로 인해 토양이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미군들은 이미 기준치 수천 배의 토양 오염으로 90년대부터 기지 내 지하수를 마시지 않았지만, 이를 알리지 않아서 기지 바로 옆 주민들은 최근까지도 지하수를 마셨다는 안타까운 사실도 알려졌습니다. 주민들 중에는 암이나 백혈병으로 돌아가신 분들도 계시지만 이제 와서 역학조사로 밝혀내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무엇보다 이 같은 일이 지금도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면, 그리고 지금까지 알려진 미군기지 환경사고가 기름유출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내부고발에 의한 것이었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과연 현행 한미SOFA에서 이를 예방할 수단이 있느냐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꾸미기_박정경수2.jpg
미군들에 의한 범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한미SOFA는 눈에 분명히 드러나는 미군범죄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더 두드러지게 문제점을 보여줍니다. 미군에 대한 조사와 체포가 사실상 불가능하거나 어렵게 되어있고, 초기 수사권의 제약으로 미군범죄를 입증하는 것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이는 온전히 피해자의 몫으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쉽게 미군 피의자에 대한 조사도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는데, 한국 검찰에서는 항소도 할 수 없도록 되어있어서 대개 미군들은 1심에서 무죄나 집행유예를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연히 충분한 보상은 기대하기 힘듭니다. 미군들에 대한 처벌을 무조건 강화하는 것이 좋은 방식은 아니겠지만, 애초에 체포나 조사도 어려운 미군 범죄자 중 실제 3%만이 실형을 받는다는 사실은 SOFA의 허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한미SOFA는 앞서 이야기한 환경사고나 미군범죄만을 한정하지는 않습니다. 미군의 공여지 문제나 민사, 노무, 그리고 출입국 문제 같은 다양한 영역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같은 영역마다 다양한 문제점이 발생하지만 좀처럼 시민들의 관심을 받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같은 문제가 심각한 것은 단순히 범죄나 문제가 일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의 인권을 위협하고, 똑같은 문제가 수없이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무언보다 딱딱한 조문과 법적인 용어로만 설명되는 한미SOFA 문제가 사실은 주민들의 삶의 이야기, 특히 미군기지와 살아야하는 사람들의 인권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적어도 외국의 군대가 존재하는 한 기지의 담을 따라 늘어선 마을에는 사람들이 살아야 할 테니까 말입니다.
자꾸만 역행하는 시대상황 속에서 민에 의한 군의 통제를 이야기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군대 역시 민주사회의 영역 안에 있어야 하고, 특히 외국의 군대라면 더욱 그러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군과 시민이 만나는 접점에서 벌어지는 사건사고의 문제는 더욱 그렇습니다. 하지만 한미협력 60주년이라는 거창한 이름 뒤에 숨어있는 기지촌 주민들의 삶은 더욱 안타깝고 초라하기만 합니다. 저는 바로 한미SOFA의 문제가 그런 주민들의 삶의 자리에서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한미SOFA의 문제가 커다란 한미 간의 정치 영역에서 다루어질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주민들의 인권의 영역에서, 그리고 평화롭게 살기위한 평화권의 영역에서 다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언제까지나 동맹의 비용으로 기지 주변 주민들의 인권이 지불되는 역사가 계속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 박정경수 peacebaro@gmail.com 환경과 평화문제에 관심이 많다. 세상에서 배운 만큼 사람들과 작은 희망을 만들어가길 원한다. 지금은 전쟁에 대해 고민하며, 미군기지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문제를 돕고 있다. 병역거부를 했고, 전쟁에서 이기기보다 전쟁은 예방하고 막아내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살아가려고 한다.

Leave a comment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Prev Post Next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