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사회운동의 주체 형성 그리고 문화운동의 새로운 연대 전략(32호)

2014년 2월 11일culturalaction
[편집자주] <문화빵>의 이번 특집은 ‘문화운동의 미래를 전망하다’입니다. 보수정부의 장기 집권화, 문화/예술의 국가제도화 등이 가속화되는 현실 속에서 문화운동을 둘러 싼 다양한 지형을 살펴보고, 문화운동의 향후 방향을 모색해보기 위해 준비되었습니다. 세상의 변화처럼, 문화운동 역시 끊임없이 변화해왔습니다. 새로운 문화운동의 모습과 전략은 무엇일까요? 독자 여러분들이 함께 고민하고 연대해주시면 더욱 좋을 듯 합니다.
① 사회운동의 주체 형성 그리고 문화운동의 새로운 연대 전략 _ 이원재
② ‘개입’과 ‘생성’ : 대안 문화정책을 위한 이중 전략 _ 이동연
③ 시민주체화 과정을 통한 문화자치 운동을 제안하며 _ 이광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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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32호
사회운동의 주체 형성 
 
그리고 문화운동의 새로운 연대 전략
이원재 / 문화연대
박근혜 정부도 어느새 집권 1년을 맞이했다. 이명박, 박근혜로 이어지는 보수정권의 집권이 장기화되면서 한국의 사회운동은 제도적 뒷받침이 없는 시민운동이 얼마나 허약한지, 시대적 변화에 조응하지 못하는 변혁운동이 얼마나 비현실적인지, 급진성과 계급성이 생략된 대안운동이 얼마나 빠르게 지배구조 내부로 흡수되는지 등을 절감하고 있다. 한국 사회운동 주체들의 기대와는 달리 한국의 민주주의와 시민사회는 매우 취약했고, 신자유주의자들의 파상 공세에 대응할 수 있는 운동 주체는 턱없이 부족했으며, 대중들은 변화된 통치 질서에 빠르게 적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사회운동의 화두(물론 이는 운동의 위기담론에서 언제나 등장하는 주제라는 점에서 새로운 화두는 아니다)는 “새로운 주체”의 문제다. 사회운동이라는 것이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라면 결국 사회운동의 위기는 주체 형성의 위기를 의미하는 것이고, 이는 다시 주체의 재생산과 같은 대중화, 조직화의 문제설정으로 이어진다. 운동의 지속가능성 말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 사회운동 진영 내에서 운동의 위기가 지속적인 화두가 된 것은 바로 새로운 운동의 징후, 새로운 운동 주체들의 형성과 조직화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흔히 ‘1987년 체제’라는 문제설정이 한국 사회운동의 화두로 떠오르게 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1980년대 민주화 투쟁 이후 한국 사회운동은 민주화의 성과를 함께 누려왔고, 과거의 투쟁을 둘러 싼 추억을 기념했지만 새로운 운동의 주체를 형성하고 조직하는 것에는 실패했다.
사회운동의 대중화에 기여했던 시민운동은 지배권력의 통치 질서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채 보수화되거나 지배 권력의 관리체계 내에서 기능화된 전문 집단으로 포섭되었다. 사회 변혁의 최전선이 될 것으로 기대되었던 노동조합과 대중조직들은 각자의 영역에서 임금노동과 생존을 위한 배타적 조직들로 관료화되었다. 반체제적 급진성과 계급성을 주장했던 변혁조직들은 시대적 흐름으로부터 이탈된 채 대중운동에 주도적으로 개입하기보다는 대중의 취향을 쫓아가는 처지에 이르렀다.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에 거쳐 형성되었던 급진적이고 자율적인 활동가 조직들은 대부분 경제적 자립과 생존에 실패하며 흔적도 없이 사라지거나 기존 조직들의 구성원으로 흡수되었다. 그리고 1980년대 민주화 투쟁에서부터 2000년대 시민사회 운동에 이르기까지 사회운동을 기획하고 주도했던 지식인과 전문가 조직들은 사회구조의 다각화 속에서 그 집단적 운동성과 권위를 상실한 채 이론과 실천 사이의 간극만을 확인해주고 있다.
물론 지난 10여 년 동안 한국 사회운동의 새로운 주체를 둘러 싼 노력과 성과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먼저 시민운동은 사회운동의 대상과 주체에 놀라운 다양성을 불어 넣었다. 비정규직 철폐 투쟁을 비롯하여 노동운동의 중장기 투쟁 현장들 역시 사회운동의 새로운 거점으로 형성되며, 이 과정에서 사회운동의 새로운 주체와 연대운동 그리고 네트워크 등이 형성되었다. 또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의 발달과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를 계기로 촛불시민, 인터넷 카페 동호회, 지역 풀뿌리 커뮤니티 등 기존 사회운동 조직과는 다른 성격의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시민들의 사회운동 참여가 확산되었다. 뿐만 아니라 자본주의의 위기가 심화되면서 대안운동의 영역과 주체 역시 크게 확산되고 있다. 현대 자본주의의 모순과 폭력으로부터 대안을 모색하는 다양한 주체들이 일상 속에서, 지역 커뮤니티들을 거점으로 확산되고 있다.
문화운동의 새로운 연대 전략은 이러한 사회운동의 주체 형성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좁은 의미의 문화운동이 아닌 “사회적 기획과 전략으로서의 문화운동”, “문화적 가치와 관점에 기반한 사회운동개입 전략”에 있어 중요한 지점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는 현대 사회 속에서, 노동 착취는 물론이고 감수성과 상상력까지도 상품화하고 거래하는 현대 자본주의에서 사회운동의 새로운 주체들은 어떻게 형성되고 대중적으로 조직화될 수 있을까? 문화운동은 앞으로도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과 대안을 지속적으로 요구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운동의 새로운 연대 전략은 수많은 상상력과 실천 그리고 시행착오의 반복 속에서 새로운 사회운동 주체들이 탄생하고, 만나며, 연대하고, 또 다시 새로운 주체로 공진화하는 것을 지향해 야한다. 이를 위한 몇 가지 준거점을 아래와 같이 제안해본다.
▪ 생존하기 : 반자본주의, 비자본주의적인 삶의 실체를 만들어야 
운동이라는 것이 가장 존재적이며 실체적인 과정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사회운동은 그 거대한 명제와 명분 그리고 비전에 비하여 구체적인 실존의 방법론에 대해 매우 무기력했다.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이든 사회운동 주체들 스스로가 반자본주의, 비자본주의적 실존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사회운동 주체의 형성과 대중화는 불가능하며, 그것은 현실에서 당위성을 뛰어 넘는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대의와 명분, 의리와 희생 등으로 주체가 형성되기에는 현실의 생존 게임이 너무나 치열하다. 반자본주의적이고 비자본주의적인 주체의 형성을 원한다면, 그러한 삶의 질감으로 생존할 수 있는 구체적인 경로와 환경 그리고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 일상의 재구성 : “공급된 삶”과의 적극적인 단절
현대 자본주의는 인간의 삶을 둘러 싼 모든 것이 상품의 형태로 공급될 수 있는 생활 체계를 지향해 왔다. 인류가 기술 발전과 산업화를 통해 먹고, 자고, 입는 것의 대량생산을 성취하였다면, 현대 자본주의는 이제 탄생의 순간에서부터 사랑, 우울증, 죽음, 기억에 이르기까지 삶의 모든 것을 상품으로 공급한다. 자본주의는 다양한 언어와 개념으로 설명될 수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공급형(공급받는) 삶의 구조를 일상적으로 강요하는 사회”다.
자본주의는 생활생산, 생활창작, 생활노동 등을 인간으로부터 꾸준하게 격리해왔으며 이를 끊임없이 상품으로 개발하고 공급해왔다. 여기서 공급형 삶의 구조는 단순히 상품화된 자본주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삶의 존재와 구성 자체가 스스로의 필요나 욕망 그리고 의지가 아니라 이미 구조화된 공급체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대 자본주의는 발달된 기술을 통해 사람들로 하여금 공급형 삶의 구조를 편리함으로 오인하게 하지만, 실제로 공급형 삶의 구조는 개인의 삶은 물론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재구성하거나 소멸시킨다.
반자본주의적이고 비자본주의적인 삶의 양식은 공급형 삶의 구조로부터 단절하는 것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새로운 사회운동 주체의 형성과 대중화는 이제 공급된 삶이 아닌 자율적이고 자기 조직(자신의 일상을 자율적으로 조직)하는 원리 속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자본주의의 공급된 삶의 구조를 본질적으로 벗어나기 위해서는 생활생산과 자율노동에 기반한 사회 주체들이 끊임없이 탄생하고 연대하며 생존해야 한다.
▪ 자율시간의 확장과 문화사회
자본주의의 공급된 삶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자율시간을 확장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자율시간이 확장된다는 것은 임금노동 중심의 노동사회로부터 탈피하여 스스로의 시공간을 기획하고 조직하는 문화사회로의 이행을 의미한다.
자율시간을 확장하기 위한 실천은 단순히 개인적인 시간, 쉴 시간을 확보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자율시간의 확장은 공급형 삶의 궤도에 적극적으로 균열을 내는 행위이며, 노동사회로부터 문화사회로 이행하는 소중한 첫 걸음이다. 자율시간이 많아진다는 것은 스스로 자신의 삶을 기획하고, 생활노동을 실천하며, 삶의 관계를 복원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자율시간이 많아진다는 것은 삶을 둘러 싼 감수성, 성찰, 상상력, 질감 등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삶의 밀도와 질이 높아지는 것이다. 자율시간의 확장은 자본주의의 착취와 수탈의 시간을 줄이고 새로운 대안을 상상하고 실천하는 시간이 늘어나는 과정이며, 자본주의의 순응하는 주체의 탄생을 줄이고 대안을 상상하고 실천하는 주체가 늘어나는 과정이다.
▪ 커뮤니티 : 지역화 전략과 문화적 관계의 복원
사회운동의 새로운 주체를 형성하고 지속하는 전략에 있어 커뮤니티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크다. 사회운동의 위기는 결국 기존 사회운동 커뮤니티의 변화와 소멸은 빠르게 확산되고, 새로운 사회운동 커뮤니티가 등장하는 것은 드물거나 느리기 때문에 발생한다.
사회운동의 새로운 주체를 발굴하고, 사회운동 주체들의 커뮤니티가 활성화되기 위한 중요한 전략 중에 하나는 ‘지역화’다. 지역화에 기반한 사회운동 커뮤니티들을 적극적으로 구축하는 것은 향후 사회운동의 새로운 주체를 형성하고 대중화하는데 있어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지역화’는 단순하게 물리적 공간을 의미하는 1차원적인 개념이 아니다. 전체가 아닌 부분으로서의 분절된, 파편화된 지역을 의미하는 것은 더욱 더 아니다. 지역화는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지향해 온 자본주의의 내재적 가치와 원리에 대한 적극적인 저항과 대안으로서의 개념이자 전략이다.
지구화 시대의 새로운 지역화 전략은 무역과 금융 중심의 세계화와는 달리 빈곤, 실업, 환경문제, 이주, 전쟁, 생태위기 등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한다. 지역화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서로 다른 생태계와 기후 및 문화를 보호하고, 문화적 관계를 통한 커뮤니티의 복원을 모색하며, 자기 실천적인 생활문화를 지향한다. 따라서 지역화의 원리에 기반한 커뮤니티 전략은 사회운동의 새로운 주체를 형성하고, 주체 사이의 문화적 관계를 복원하고,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경로를 제시한다. 지역화와 커뮤니티에 기반한 운동은 공급형 삶, 공급형 사회운동과는 다르게 자신의 삶의 구체성에 기반한 운동, 다양한 운동주체들의 관계성에 기반한 운동 질서를 상상하게 한다. 지역화에 기반한 커뮤니티 운동이 단기적으로는 매우 느리고 미시적이며 부차적인 과정으로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이는 생활체계에 구체적으로 접속한 자기 실천적인 운동들을 통해 더욱 견고하고 다원적이며 지속가능한 운동 구조를 만들어낼 것이다.
▪ 교육 : 감수성과 지식문화생태계
주체 형성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바로 ‘교육’의 문제다. 교육은 사회운동의 새로운 주체를 형성하고 대중화하고 지속하기 위한 중요한 구성요소이자 과정이다. 사회운동 커뮤니티 내부의 교육, 사회운동의 사회적 공유 및 확산을 위한 교육 등 다양한 사회적 층위에서 교육은 중요한 기능을 할 것이다.
집단지성, 지식순환, 창의교육, 학습공동체, 빅데이터 등이 사회적 화두로 부상하는 것처럼 교육과 정보를 둘러 싼 철학, 원리 그리고 방법론들이 크게 변화하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달, 정보 전달 방식의 변화, 교육 경로와 방법론의 혁신 등은 교육자와 피교육자, 지식을 둘러 싼 생태계 자체를 새롭게 설정하고 있다. 그리고 과거와 달리 이러한 환경을 조성하고 현실화 할 수 있는 다양한 사회적 장치들, 자원들이 이미 사회 전반에 걸쳐 광범위하게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사회운동의 새로운 주체를 형성하기 위해서는 사회운동의 교육 전략을 둘러 싼 혁신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엘리트 교육 문화, 지식권력과 분과학문 중심의 계몽적인 학습 체계 등에서 벗어나 사회운동의 지향 자체가 교육 내용과 방법론 모두에 반영될 수 있는 새로운 모델들을 상상하고 실천해야 할 것이다. [문화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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