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복면가왕, 가수는 온 데 없고 순수한 가창력만 휘날리다(68호)

2015년 10월 16일culturalaction
[편집자주]한국 대중음악 시장의 문제점
 
현재 우리나라의 대중음악 시장의 구조는 매우 기형적이다. 대중음악 인기의 척도로 여겨지는 음원사이트의 순위나 공중파 방송의 가요순위프로그램은 음원사재기나 특정 팬덤의 밀어주기로 신뢰를 잃은지 오래다. ‘슈퍼스타K’로 시작된 오디션 프로그램은 뮤지션들을 극한의 경쟁구도 속으로 내몰고, 신인뿐만 아니라 중견 뮤지션조차 생존을 위해 서바이벌 무대에서 몸부림을 치고 있다. 이런 구도 속에서 뮤지션이 가지고 있는 자신의 음악에 대한 철학, 음악에 대한 진정성은 현실을 모르는 철부지들이나 하는 소리가 되어 버렸다. 이번 문화빵 특집에서는 현재 대중음악 시장의 구조에 대해 진단하고, 그 문제점을 살펴보았다.  
 
1. 소비자는 차트를 만들 수 없는가? / 옥은실(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2. 복면가왕, 가수는 온 데 없고 순수한 가창력만 휘날리다 / 정문식(뮤지션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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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68호
복면가왕, 가수는 온 데 없고 순수한 가창력만 휘날리다
정문식_뮤지션유니온 위원장
복면가왕. 음악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끝판왕.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의 본질이 가학적이고 관음적이라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안방에 가만히 앉아 그들의 생존 투쟁을 지켜보며 시청자 투표 등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는 행위는 고대 로마시대 검투사들의 목숨 건 결투에 환호하던 고대 시민들의 폭력적이고 가학적인 그것과 무척 닮아 있다. 유독 한국의 TV 음악 프로그램들에 순위를 가려내는 방식이 많은 것은 이런 속성과 함께 경쟁으로 가득 차있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우후죽순격으로 쏟아져 나오던 오디션 프로그램들은 어느새 시청률의 늪에서 다들 살아남지 못하고 현재는 슈퍼스타K와 대형 기획사와 지상파 미디어의 합작품인 케이팝스타만 남았다. 해외에선 이미 오디션 프로그램들의 인기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오디션 프로그램의 시초인 아메리칸 아이돌은 내년을 마지막으로 종영된다고 한다.
이렇게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시들해지는 건 자연스럽게 다양한 음악을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들의 욕구가 증가했거나, 더강한 자극을 원하게 되었거나, 혹은 다른 이유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핵심은 시청자들의 두가지 변화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 중 후자에 해당하는 더욱 자극적인 서바이벌의 끝판왕으로 만들어진 게 복면가왕이다.
복면가왕의 원조는 ‘나가수’라 할 수 있다. 이미 자신의 경력이 쌓일 만큼 쌓인 가수들을 불러모아 청중 평가단 앞에서 서로 경쟁하게 만들었던 그야말로 한국적이라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경쟁이 무의미한 이들에게 애초에 성립할 수 없는 ‘가창력’이라는 기준아래 경쟁을시켜놓고, 마치 미디어와 시청자들이 공명정대한 판관이 된 것처럼 그들의 ‘실력’을 판가름해주었던 프로그램. 그리고 매번 오버에 오버를 거듭하던 가수들의 퍼포먼스. 편곡들은 먹잇감을 호시탐탐 노리는 연예 매체들의 호들갑을 불러오고, 매체들의 선정적인 보도를 등에업고 현장에서 녹음된 음원은 음원차트를 점령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야말로 1타 4피 정도의 유발효과를 가져왔던, MBC 입장에선 최고의 프로그램이었다. 결국 승자는 시청자들도 출연한 가수들도 아닌 그냥 MBC였던 거다. 한국 음악시장의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이 한몸 희생하시겠다던 선배 가수님들이 한때 반짝 유명세를 누린 거 외에 한국 음악시장이 나가수 때문에 시장 여건이 좋아졌다는 분석이나 보도 등은 접해본 적이 없다. 나가수 덕에 한국의 대중 내지 시청자들의 음반, 음원 구입과 공연 관람이 더 늘어났다는 얘기도 들어본적이 없다. 시청자들은 편안히 집안에 앉아 가수들에 대한 가창력에 점수를 매기는 순간 마치 자신이 수준 높은 대중음악 소비자가 된 듯한 착각 속에 빠져들었을 뿐이다.
하지만, 나가수를 넘어서는 무언가는 늘 필요한 법이기에 나가수 컨셉에 외모를 공개하지 않고 연예인 심사단을 출연시키는 ‘너의 목소리가 보여’, ‘히든 싱어’ 컨셉을 추가한 “복면가왕”이라는 프로그램이 탄생하게 되었다. 언뜻 보기엔 외모를 배제하고 순수한 가창력만으로가수들을 평가하는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추가한 듯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이제껏 한국의 모든 음악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넘어선 최고 수준의 가학성을 지닌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다.
가수는 복면을 한 상태에서 자신의 본명이 아닌 가명을 부여받고 노래를 한다. 그리고, 토너먼트 방식의 일대일 대결을 통해 상위 단계로진출하고 그 주의 우승자를 가려낸다. 지면 그의 정체가 드러나고 드러난 정체에 대해 연예인 심사단이건 시청자들이건 놀라움을 토해낸다. 이를 통해 가수들에 대한 선입견들을 제거하고 그들의 ‘실력’을 제대로 검증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하는 어떤 기자 출신 평론가의기사를 본 적도 있고, 이렇게 새로운 포맷을 만들어낸 MBC제작진에 대한 찬사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젠 사람들의 기억속에서만 존재하는 추억의 가수를 재조명하기도 하고, 가수가 업이 아닌 이가 출연하여 반전의 재미를 선사하기도 한다는 순기능을 강조하기도 한다. 좋다. 백번 양보해서 이런 시각이 있을 수 있다고 인정하더라도 ‘복면을 한 가수들을 앞에 놓고 가창력을 기준으로 판결을 통해 승패를 부여한다’는 이 한 문장 안에 들어있는 모순들이 왜 그들의 눈엔 보이지 않을까?
‘실력’ 내지 ‘가창력’에 대한 기준은 과연 무엇인가? 예전 가수 중에 조덕배와 전인권 중 누가 더 가창력이 뛰어나다라고 얘기할 수 있는가? 조동진과 김연우 중 김연우가 가창력이 더 뛰어나다고 생각하는가?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김연우는 조동진이 가진 깊은 음색을 가지고 있지 않다. 물론 음역대의 넓이와 기교 측면에선 김연우가 더 뛰어난 건 사실이다. 근데, 그것이 한 가수의 ‘실력’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는가 말이다. 물론 단지 예능 프로그램의 재미를 위한 한정된 개념의 실력이라고 항변할 수 있겠지만, 더 큰 문제는 대중과 시청자들은 이런 프로그램을 보며 가창력이라는 잣대를 절대화시켜 버린다는 것이다. 늘 이야기하는 거지만 대중음악은 서로 다른 아름다움이라는 가치를 갖고 있다. 조동진이 ‘나뭇잎 사이로’를 부르고, 김연우가 ‘사랑한다는 흔한 말’을 부를 때 그들은 가장 빛나는 존재들인 것이다. 그리고, 음악은 단지 가수들의 노래만으로 느끼고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사운드’로 느껴지는 것이다. 음악에 대한 가치 판단을 가창력으로 획일화시키는 것 만큼 폭력적인 것도 없다.
또한, ‘복면’을 하고 가명을 쓴다는 건 노래하는 이의 정체성을 감추는 것이고, 이러한 프로그램의 장치는 결국 가수의 노래에 집중하고 감동을 느끼는 것 보다 복면 속 노래하는 이의 정체가 누구인지를 맞추는 쪽으로 집중될 수 밖에 없다. 복면가왕과 같은 국내 방송계의 음악예능 프로그램들이 음악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지만 결코 음악적일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익명성은 노래하고 연주하는 존재가 점점 지워지는 한국 음악시장의 현상을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 음반에서 음원시대로 넘어오면서 작사, 작곡, 연주자들의 정보가 담겨 있는 부클릿이 사라져간다. 이는 한 곡의 음악에 참여한 이들의 존재가 지워지는 것이고, 존재감이 없어진다는 것은 그들이 투여한 ‘노동’을 지워버리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내가 ‘음악이 공짜’라고 떠들어대는 것에 대해 분개하는 것은 단지 가격 때문만이 아니라, 공짜음악이라는 개념이 음악을 만드는 음악가들의 노동 가치를 지워버리기 때문이다.
쓸데 없는 기우라 할 수 있겠지만 복면가왕 류의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으면 얻을수록 노래하는 가수가 누구인지는 점점 더 대중의 관심사 밖으로 밀려나고 누가 더 많이 정답을 맞추고 승패에 대한 정확한 예측을 했는지가 중요해질 것이다. 가수는 오로지 가창력이라는 잣대 아래에서 시청자, 대중들에게 인정 받기 위해 아둥바둥거리는(그 누군가의 표현에 의하면 인정투쟁을 이어가는) 존재가 될 것 같다. 이런 상황에서 가수가 아티스트 대접을 받는다고? 하하. 무슨 꿈같은 소리인가?
음악가들과 음악계 종사자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이제는 좀 벗어나자고. 어떻게든 노출되어 알려지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에서, 어차피 음악이 돈이 안되니 예능에라도 나가서 떠보자는 생각에서. 우리가 그렇게 음악을 뒷전에 놓는데 다른 이들에게 음악을 존중해달라고,사랑해달라고, 아껴달라고 권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건 ‘복면가왕’, ‘무도가요제’가 아니라 ‘직접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하는 음악 프로그램’, ‘다양한 음악가들의 음악을 소개하면서 장르 다양성 유지에 기여하는 음악 프로그램’이다. 우리는 이런 프로그램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단지 음악 프로그램의 섭외 대상 혹은 출연 대상이 아니라 우린 시청료를 지불하는 시청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시청자로서의 권리를 당당히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기-승-전-음악만이 우리의 살 길이다.
P.S. 매년 6월 말, 영국에선 세계 최대 음악페스티벌인 ‘글래스턴베리 페스티벌’이 열린다. 정식 명칭이 ‘Glastonbury Festival of Contemporary Performing Arts’인 이 페스티벌은 공식 메인 스테이지만 8개, 100개 이상의 크고 작은 무대와 200여팀이 넘는 라인업, 17만명의 관객이 모여드는 이 페스티벌은 그 규모로도 놀랍지만, 40년 넘게 이어온 히피즘에 기반한 페스티벌의 철학과 정신으로도 유명한 현존하는 최고의 페스티벌이다. 이것 말고도 내가 늘 놀라워하는 건 이 페스티벌 기간 동안 영국의 공영방송인 BBC의 몇개 채널에서 메인 스테이지의 공연들을 하루종일 생방송으로 중계해준다는 사실이다. CJ에서 주최하는 안산 엠밸리 페스티벌에 관한 소식을 들을 때마다 CJ가 보유하고 있는 그 수많은 케이블 채널 중 왜 단 한 채널이라도 페스티벌 생중계 내지 녹화 방송을 하지 않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여러가지 현실적 한계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들이 자랑하는대로 문화를 제일 잘 만드는 기업이라면 본인들이 가진 인프라를백분 활용해서 꽤 괜찮은 음악 컨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는 기회라 생각되는데 말이다. 물론 생중계를 하건 녹화방송을 하건 그들 마음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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