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소비자는 차트를 만들 수 없는가?(68호)
[편집자주]한국 대중음악 시장의 문제점
현재 우리나라의 대중음악 시장의 구조는 매우 기형적이다. 대중음악 인기의 척도로 여겨지는 음원사이트의 순위나 공중파 방송의 가요순위프로그램은 음원사재기나 특정 팬덤의 밀어주기로 신뢰를 잃은지 오래다. ‘슈퍼스타K’로 시작된 오디션 프로그램은 뮤지션들을 극한의 경쟁구도 속으로 내몰고, 신인뿐만 아니라 중견 뮤지션조차 생존을 위해 서바이벌 무대에서 몸부림을 치고 있다. 이런 구도 속에서 뮤지션이 가지고 있는 자신의 음악에 대한 철학, 음악에 대한 진정성은 현실을 모르는 철부지들이나 하는 소리가 되어 버렸다. 이번 문화빵 특집에서는 현재 대중음악 시장의 구조에 대해 진단하고, 그 문제점을 살펴보았다.
1. 소비자는 차트를 만들 수 없는가? / 옥은실(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2. 복면가왕, 가수는 온 데 없고 순수한 가창력만 휘날리다 / 정문식(뮤지션유니온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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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68호
소비자는 차트를 만들 수 없는가?
옥은실/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
매일 아침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읽는 것은 내 오래된 습관 중 하나다. 그 다음으로 하는 일이 음원 차트를 뒤져 마음에 드는 곡을 찾아 듣는 일인데, 이 습관들이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다만 대학시절 벅스뮤직을 접한 것이 나의 첫 음원사이트의 경험이었으니 대략 2000년 초반쯤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이렇게 한 세트가 하루를 시작하는 의식과도 같은 행동들이다. 이 중 한 가지라도 빠지면 종일 어딘가 찜찜한 기분이 들기 때문에 나의 이런 행동들이 불편한 징크스처럼 느껴질 때도 많다.
최근에는 벅스뮤직보다는 멜론의 음원 차트에 신경을 더 쏟는 편이다. 휴대전화 통신사를 옮기며 몇 가지 혜택을 보기 위해 상술에 넘어가 갈아탄 경우지만, 이전에 이용하던 음원 사이트보다 음악 검색이 쉽고, 디자인이 복잡하지 않다는 장점을 발견했다. 하지만 멜론에 관심을 두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시시각각 변하는 대중가요의 순위를 볼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순위를 보면서 지금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이런 것들이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것처럼 멜론 차트를 읽어 내리면서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다. 멜론에 관심을 갖는 더 중요한 이유는 사실 이 순위가 자연스럽고, 합법적인 수순에 따른 결과가 아니라는 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멜론 차트는 일간, 주간, 월간, 급상승, 실시간과 같이 시간 단위로 나뉜다. 이 중에서 조금 더 눈여겨봐야 할 것은 ‘실시간 차트’다. 멜론의 설명에 따르면 이 차트는 매 시간 서비스 이용량 중 스트리밍과 다운로드 이용량을 각각 40%, 60%씩 반영하여 낸 순위를 보여주기 때문에, 차트의 흐름을 보면 현재 이용자들이 어떤 음악을 좋아하는지 그 결과를 시간 단위로 자세히 알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문제는 국내 최대 음원 배급사의 타이틀을 쥔 멜론의 순위가 곧 전체 음원시장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를 품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멜론 이용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실시간 차트의 곡들을 알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트렌드에 민감하고 세련된 사람이라는 인식형성을 가능하게 한다. 이 두 문제는 음악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멜론에 몰두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형성한다.
자신이 지지하는 가수에게 헌신하는 것 또 그것에서 만족감을 찾는 10대 팬들에게 이 순위는 특히 더 중요하다. 스타와 자신을 동일시하려는 팬덤의 특성 때문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의 곡이 상위에 오르면 마치 자신이 그 보상을 받는 것처럼 느끼는 10대들은 그렇기 때문에 차트 1위 ‘만들기’ 놀이에 적극적으로 가담한다. 만들기에 방점을 둔 이유는 말 그대로 순위가 ‘making’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기를 반영(reflex)한 결과물이 아니라는 뜻이다. 팬들의 1위 만들기는 주로 ‘내 가수 1위 만들기’라는 프로젝트 아래 인기투표하기, 여러 아이디로 스트리밍하기 등을 통해 이루어진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불법)업체에 돈을 지불하고 종일 스트리밍 프로그램을 돌리는 일이다. 이 때 팬들이 가장 선호하는 장소가 바로 멜론이다. 이른바 제일 크고 잘 나가는 사이트이기 때문에 사람에게 효과적으로 곡을 노출시킬 수 있다는 계산이 반영된 것이다.
멜론 차트 1위 만들기의 또 다른 주역은 팬들 말고 또 있다. 대중음악에 조금만 관심을 갖고 있다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로엔엔터테인먼트가 바로 그 역할을 맡고 있다. “어떻게?”에 대한 이야기는 얼마 전 발표된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예를 들어서 살펴보려고 한다.
2014년 9월 14일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새 앨범이 발매되었다. <Love & Hate>이라는 제목을 달고 나온 이 앨범은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첫 미니 앨범이다. 오랜만에 환희와 브라이언의 조합을 들을 기회가 생긴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앨범 발매일에 개운치 않은 그러나 그 이유가 짐작 가능한 사건이 있었다. 간략히 정리하면 이렇다. 9월 14일에 막 발표된 앨범이 당일 정오 실시간 차트 1위와 2위에 나란히 기록됐다. 그리고 멜론의 추천곡에도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그렇게 됐어’가 올라 있었다. 보통 상식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다. 음원이 나오기 전부터 엄청난 홍보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환희와 브라이언이 최근 엄청나게 주목을 받는 활동을 한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제 막 풀린 음원이 어떻게 몇 시간만에 순위의 상위를 차지하게 되었을까?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엄청난 팬들이 동원된 것이었을까?
로엔엔터테인먼트는 스스로 “국내 최대 디지털 음원 플랫폼 MelOn, 음원/음반 유통, 음악 콘텐츠 투자/제작, 아티스트 메니지먼트 등 음악산업의 전 분야를 포괄하는 No.1 종합기업”이라고 설명한다. 사실 크게 틀린 말도 아니다. 아이유를 비롯해 유명 가수들의 메니지먼트부터 음반 제작에 관여하고 있으며, 현재 우리나라 온라인 음원 서비스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한 멜론을 소유한 회사기기 때문이다.
로엔엔터테인먼트가 멜론을 ‘소유’하고 있다는 지점이 중요하다. 로엔의 소유인 멜론은 로엔의 기업방침과 목적에 따라 이윤을 추구하는 데 이바지해야 한다. 이윤을 극대화 하기 위해 로엔엔터테인먼트는 제작에 참여한 가수의 인지도를 높이는데 총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가수의 인지도 상승은 음원 매출에 영향을 미치고 이는 곧 로엔의 수익으로 계산되기 때문이다.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음반을 발매사 역시 (주)로엔엔터테인먼트다. 이들의 앨범 또한 앞선 논리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발매와 동시 로엔은 음원 노출에 엄청난 힘을 쏟아 부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노출->인지도->인기->순위->음원 판매량’의 공식을 쫒다보면 음원 판매량에 따른 수익의 상당량을 로엔이 차지하게 되기 때문이다(2013년 기준 국내 음악시장 음원 분배 비율을 살펴보면 제작자가 44%, 유통사가 40%, 저작권자와 실연자가 각각 10%와 6%를 차지하게 되어 있다).
멜론의 ‘추천곡’ 제도는 음원을 노출하기 위한 가장 적합한 방식이다. 새누리당 이상일 의원은 8일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멜론이 ‘추천음원’으로 제일 상위에 노출하는 음원 4개 중 3개는 멜론을 운영하는 로엔엔터테인먼트가 직간접적으로 투자해 만든 것”이라며 “사실상 음원 추천 기능을 남용해 음원 시장의 공정성을 해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로엔의 탓만 하고 있을 실정은 아니다. 신인을 포함한 많은 가수들이 다른 제작사 대신 음원 제작부터 유통과 판매까지 모든 구조를 갖추고 있는 로엔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독점운영에 가까운 로엔엔터테인먼트의 시스템이 음악시장 내에서 ‘구조화’되어 가고 있다는 것은 큰 문제다. 무엇보다도 대중음악의 다양성을 해치기 때문이다. 다양한 레이블에서 다양한 가수를 키워내는 것이 아니라 소위 팔리는 곡, 돈이 되는 곡 만들기에 치중되기 때문이다. 수용자는 그만큼 선택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기업인이 만들어낸 판에 박힌 음악, 만들어진 차트에 올라온 음악을 듣는 수동적 상황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시스템으로 굳어져 가고 있다.
이 의원은 “로엔엔터테인먼트가 새롭게 음원서비스를 하려는 스타트업에 음원을 제공할 떄 선급금식으로 3000만원 정도를 요구한다고 하는데 이것 역시 진입장벽을 만다는 불공정 행위”라고 비판했다. 현대판 ‘페이올라(payola)’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실정이라면 앞으로 중소형 음악 관련 기업은 생겨날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기껏 음반을 제작해도 음원 서비스 시장이라는 진입장벽에서 막힐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는 현재 우리 음원 서비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음악산업의 병폐를 드러내는 대목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 여러 곳에서 다양성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음악산업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요즘 우리는 어쩌면 음악을 듣는 것이 아니라 ‘공산품’ 또는 ‘로엔’을 듣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글을 마치며 아직 정리되지 않은 몇 가지 궁금한 점들이 떠오른다. 먼저, 대중음악을 소비하는 우리들에게 음원 차트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만약 소비자들이 중심이 되어 차트를 만든다면 어떤 형태의 순위가 기록될까? 하는 것 등이다. 더불어 현재와 같은 음원시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막연한 비교일 수 있겠지만, 한국 대중음악시장의 황금기라 불렸던 1990년대 대중음악 환경을 일부 수용할 방법은 없을까하는 질문을 던져본다.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 SBS 인기가요 연속 15주 1위(1992)와 같은 것 말이다. 시간을 두고 음비할 새 없이 단 몇 시간 동안에 바뀌어 버리는 음악을 찾아/따라 듣는 것은 에너지를 뺏기는 피곤한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