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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30]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공장 밖에서 자동차를 만들다 H-20000 프로젝트

2017년 12월 18일culturalaction

신유아 / 문화연대

 

대한문 농성장엔 끊임없이 연대하는 사람들이 모였고 그만큼 경찰의 방해와 견제는 심해졌다. 꽃과 흙을 지키느라 국가의 세금을 탕진하고 있는 경찰의 감시에도 바느질과 뜨개질 연대는 계속되었고 또 다른 투쟁현장의 연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즈음 평택공장 앞 철탑농성 중이던 비정규직 해고노동자 복기성의 몸 상태가 매우 안 좋다는 소식과 함께 철탑고공농성을 정리하기로 했다. 힘겨웠던 고공농성이었고 해결되지 않은 쌍용자동차 문제로 철탑에서 내려온 복기성은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2013년 3월 쌍용자동차 문제 해결을 위한 희망지킴이 모임이 있었다. 지난 4년간 해고된 노동자들은 공장으로 돌아가고 싶었고 공구를 손에 쥐고 자동차를 만들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공장이 아닌 공장 밖의 사람들이 우리만의 장동차를 만들어 보는 건 어떻겠냐는 제안이 있었다. 지난 몇 년간 시도해 보았으나 여러 가지 제약으로 실행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문기주 쌍용자동차정비지회 지부장의 언론 인터뷰를 보면 그 이유가 잘 설명되어있다.

“자동차관리법에 노상 정비가 불법이다. 또 기름이나 엔진오일 같은 게 그냥 바닥에 떨어지면 환경오염법에 걸려 대한문이나 시청에서 하는 건 불가능할 수 있다. 사실 작년에 이미 세팅은 해놨었다. 중장비가 들어가는 문제도 곤욕스러웠다. 부품을 완전 분해하려면 시간과 특수 장비가 많이 필요하다. 그래서 공장도 알아본 것이고. 이번에 작업 공장을 확보하긴 했지만, 전체 분해를 못 했던 이유가 장비 문제 때문이었다. 인력으로는 불가능한 작업들이 있었다. 두 번째는, 사람이 태어나면 주민번호가 있듯 차에도 차대 번호라는 게 있는데 그 번호는 공장에서만 찍지 개인이 찍을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기존 차량을 다시 분해해 조립하지 않으면 불가능했다.”(민중언론 참세상)

그럼에도 우린 방법을 찾으면 된다고 생각했고 서울 인근에 자동차 공장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용인 근처에 작은 공장을 한다는 사람을 소개받아 사전답사를 다녀왔다. 공장 전반적으로 우리가 차를 만들기에 적합한 공간이었다. 차량제작은 모두 비공개로 진행되었고 사진팀과 영상팀의 도움으로 제작과정은 세상에 공개됐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자동차 만들기 프로젝트를 우리는 ‘H-20000 프로젝트’라 이름 지었다. 공장에서 차가 나올 때 프로젝트명을 숫자로 쓴다기에 그럼 우리도 숫자로 쓰자고 했고 자동차 한 대가 만들어지기까지 대략 2만 개의 자동차 부품이 들어간다고 하여 그럼 우리 프로젝트명은 희망의 H와 20000을 합해 H-20000 프로젝트라 정하기로 했다. 정하고 보니 H의 모양이 사다리와 비슷하고 시민의 마음과 노동자의 마음을 연결하는 사다리로 쓰면 될 것 같다며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20000개의 부품 값을 모금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차를 만들기 위한 재정 마련 방안이었다. 20000명이 1만 원씩 20000개의 부품을 사달라고 홍보를 시작했다.

 

 

파견미술팀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해고된 노동자들이 만들고 시민들의 모금으로 완성된 자동차의 외관을 디자인하기로 했고 그 핵심역할은 이윤엽 판화가가 했다. 자동차디자인이 처음인 이윤엽은 한 언론사 인터뷰에서 고민스러웠던 과정을 이야기했었다.

“처음 제안받고 조금 당황스러웠죠. 제가 자동차 디자이너도 아니고 더구나 차를 디자인하는 거라는데 다양한 연대의 현장에서 그림도 그리고 설치작업도 하고 판화도 찍어 보는 등 참 다양한 일들을 해 봤지만… 이것저것 하다가 이제 별거를 다하는구나 싶었습니다.

유아 씨가 잘 알겠지만 현장미술이라는 것이 돈이 있어서 재료가 풍부한 것도 아니고 시간이 많아서 꼼꼼하게 정리하고 마무리가 완벽한 작업을 할 수 없이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최선을 다해서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인데 그러다 보니 거칠게 성과가 나오게 마련이지만 그것이 크게 밉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자동차라는 것은, 더구나 그 자동차라는 것이 만 명이 넘는 사람들의 작은 마음으로 재료가 준비되고 해고노동자의 손으로 일일이 조립되어진 차라면, 그동안의 투쟁현장에서 해왔던 투쟁이 끝나면 정리되는 작업들과는 다르게 투쟁과는 상관없이 투쟁하는 노동자의 마음들이 계속 굴러다니는 거라면 좀 더 깨끗하고 완벽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상황은 그전의 현장에서처럼 돈도 없고 시간도 없다는 것은 똑같다는 점에서 부담감이 컸죠. 무엇보다 나는 심플한 디자인 능력이 없다는 것이 그랬죠.”(민중언론 참세상)

용인 인근의 공장에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자동차를 분해하고 다시 재조립하는 과정을 진행 중일 때 이윤엽은 차량 시트작업을 하는 업체를 알아보고 디자인을 공유하고 수정하는 일들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이윤엽은 디자인 아이디어를 내기 위해 H-20000 프로젝트에서 만들 차량과 같은 기종을 몰고 다니는 사진가 정택용과 필자의 차를 실험대상으로 사용했다. 필자는 다음날 바로 세차장에 들러 거금을 들여 4번의 자동 세차 기계를 들락거렸고 세차장 직원이 무슨 일 하는 사람이냐고 계속 물어봐서 행위예술가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차에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실제의 코란도 모양을 몰라서 코란도를 가지고 있던 사진가 정택용 씨와 문화활동가 신유아의 차 위에 마음껏 붓으로 밑그림을 그려 보면서 민들레의 위치나 크기 색상들을 상상하고 구체화 시켰거든요. 물감이 지워지지 않으면 어쩌나 조바심하는 신유아와 정택용의 표정이 재미있기도 했구요. 힘들었던 것은 랩핑 과정에서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는 것과 출력물이 모니터 색상과 맞지를 않아 몇 번씩 수정하고 또 수정해야 했다는 것과 그게 처음 보는 기계하고 일을 하는 것이어서 밑그림 그릴 때처럼 자유롭지 못해 맘대로 맘껏 할 수 없었고 샘플로 출력을 할 때마다 출력기술자의 눈치를 엄청 보게 되었다는 것. 제가 맘이 모질지 못해 결국은 중간에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를 지었는데 그게 끝까지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불안하게 하네요.”(민중언론 참세상)

 

우여곡절 끝에 세상에 나온 자동차는 서울시청광장에서 멋지게 모터쇼를 진행했다. 함께 했던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와 그의 가족들이 모두 모였고 모터쇼 중간중간 눈물이 흐르고 멈추기를 반복했다. 고개를 돌리면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가 울고 있고 또 고개를 돌리면 연대했던 사람들이 울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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