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의선공유지를 떠나며 : 우리, 다시 세상을 커머닝하자

2020년 4월 29일culturalaction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이 2016년부터 4년간 활동해온 경의선공유지를 떠나며 그간 활동을 마무리 짓고, 새로운 커먼즈 운동을 위한 출발점에 다시 서게 되었습니다. 경의선공유지에서 진행되었던 활동은 커먼즈 운동의 실천적 사례로서 우리사회의 커먼즈 담론이 확장되는데 기여함과 동시에 현실 운동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동시에 한국철도시설공단과 이랜드를 통해 행정과 자본의 후진성을 보여줌으로서 커먼즈 운동의 진로와 방향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지난 주말동안 경의선공유지 내에 있던 공간과 시설들을 정리하면서 정들었던 경의선공유지와 공유지에서 함께했던 사람들과 헤어지게 된다는 아쉬움에 애써 덤덤하려고 하는 활동가들을 보며 왠지 헛헛한 기분이 드는 것은 숨길수가 없었습니다.

월요일 아침부터 한국철도시설공단은 마치 기다려왔다는 듯이 펜스작업을 진행해버렸습니다. 경의선공유지는 경의선숲길공원과 연결되는 보행로로도 많은 시민들의 사랑을 받아왔지만 공단의 펜스작업으로 이젠 지역의 흉물로 남게 되었습니다. 과연 그들이 말하는 공공과 시민의 의미는 뭘까요?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은 이제 경의선공유지에서는 떠나게 되지만, 커먼즈 운동을 확산하기 위한 커먼즈네트워크 사무국으로서 또 다른 활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세상을 커머닝하고 바꾸는 과정에 여러분들과 함께 하겠습니다.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 입장문]

경의선공유지의 점유는 끝났다, 당신들은 무엇을 할텐가?

– 시민에 대한 소송 뒤에 숨은 한국철도시설공단은 이제 앞으로 나서라 –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은 2020년 4월 26일 자로 공덕역 인근 철도유휴부지인 경의선공유지에서의 점유를 끝낸다. 지난 2016년부터 시작한 경의선공유지에 대한 점유는 도시공간이 경제적 이익이 아니라 공간에 대한 필요에 따라 사용되어야 하며 특히 그 과정에서 누군가가 독점하지 않는 ‘일시적 사용’의 커먼즈를 통해서 확대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제안했다. 특히 2016년 11월 ‘26번째 자치구’를 선언함으로서 경의선공유지는 기존의 25개 자치구들에서 대책없이 쫒겨난 도시난민들이 우선적으로 사용하며, 이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연대의 장소로 제시한 바 있다. 이후 2016년에서 2017년 사이 서울시의 중재로 ‘협치서울 토론회’를 통해서 국공유지의 활용방법에 대한 문제제기와 대안적인 활용방법을 제안했고, 이를 토대로 2018년에는 <경의선공유지 대안계획>을 관련 전문가들과의 토론을 통해서 수립하고 서울시, 국토부 등에 공식적으로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철도부지를 관리하는 한국철도시설공단은 지속적으로 방관하고 무시해왔다.

시민들에 대한 소송

무엇보다 지난 2012년부터 시행된 역세권개발사업에 따라, 공덕역 부지를 이랜드라는 사기업에 넘겼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변변한 도시계획 하나 마련하지 못하고 지지부진하는 상황이다. 최초에는 관광호텔을 짓는다고 했다가 이후에는 오피스텔과 주차타워를 짓는다고 하다가 최근엔 도시형생활주택을 짓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철도시설공단과 사업자인 (주)이랜드공덕은 제대로된 공론화를 거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대신 한국철도시설공단은 2019년 10월, 경의선공유지를 점유하고 있는 시민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불법적으로 공간을 점유하고 있으니 나가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 소송을 총 11개의 대상을 상대로 제기했는데 거기엔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의 활동가 외에 이미 철거되어 쫒겨난 아현포차 이모들, 성동구에서 강제철거로 쫒겨온 청년, 장애인인식개선을 위해 홍보관을 운영하던 장애인단체들을 지목하였다. 이미 비슷한 행정집행의 대상이 된 이들을 대상으로 또다시 소송이라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특히 이번 소송에서는 36억원 상당의 소송가액을 적시함으로서 구체적인 경제적 부담을 예고했다는 것이 특징적이다. 즉, 그냥 내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에 대한 배상도 요구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밝힌 것이다. 정작 한국철도시설공단이 선정한 이랜드 측은 10년 가까이 (구) 마포우체국 부지를 방치하고 있음에도 임대료나 사용료 등과 같은 경제적 부담을 요구하지 못하면서 스스로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방치된 철도부지를 사용한 시민들에게는 그 부담을 지우겠다는 행태인 셈이다.

자진퇴거를 선택하다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과 공간을 사용하는 이들은 스스로 공간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일차적으로 의도가 분명한 한국철도시설공단 측의 소송에 구태여 맞설 필요가 없기도 하거니와 현재 사법제도 하에서 우리가 내세우는 커먼즈의 권리가 인정되기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송 취하를 요구하면서 자진퇴거를 진행했다. 마포구청이 중재에 나섰고 우리는 3월 31일로, 다시 4월 27일로 퇴거 일정을 조정하면서까지 공간을 이용하는 이들의 ‘안전한 이주’를 진행했다. 그 사이 점차 공간을 비워나갔다. 우리 스스로 지었던 목조건물들을 하나씩 비워냈다. 그러면서도 이 공간이 (구)마포우체국 부지와 같이 펜스가 쳐진체 방치되기 보다는 시민들의 열린 광장으로서 남겨지길 바랐다. 그러기 위해 우리가 선택한 방법은 우리가 이 공간을 정비하면서 나가는 것이었다.

아현포차: 서울시에 요청하여 기존 재래시장 중 재정착할 수 있는 곳을 알아 본 후, 아현시장 내 이주를 타진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높은 권리금 구조에 가로막혔고 총 4명의 상인 중 1인은 포기, 2인은 대흥역 인근으로 이주, 1인은 현재 임시로 이전한 후 상가를 물색 중이다.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은 이들의 이주를 위해 천만원의 이주 기금을 조성해서 지원하기로 했다.

성동구 청년 철거민: 여전히 위법적인 법집행의 결과에 대한 사과를 받지 못했다. 우선 경제활동을 위해 임시로 이주한 후 다시 문제해결을 위한 활동에 나설 예정이다.

장애인단체: 마포구와 협의를 통해서 장애인인식개선 홍보관을 경의선숲길 내에 마련하기로 하고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가든파이브 상인: 아직 청계천 이주상인에 대한 문제가 제대로 다뤄지고 있지 못하고 있다. 우선은 비슷한 처지의 상인들을 돕는 활동을 병행하면서 별도의 장사터를 물색하고 있다.

하지만 이 공간에서 함께 한 지지마켓의 셀러 분들과 마포희망시장 상인들, 그리고 임시로 거주하고 있던 ‘도깨비’ 아저씨는 명확한 해법을 찾지 못한 상태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 공간을 비우는데 뜻을 모은 것은 한국철도시설공단이 의도하는 ‘막대한 경제적 부담’에 따라 새로운 ‘경제적 노예상태’가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한 것이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마포구청의 중재를 통해서 현재의 소송이 중단되기를 요구했고, 우리의 자진퇴거가 소송의 취하라는 약속으로 증명되기를 바란다.

이제는 한국철도시설공단이 답하라

다시, 우리는 경의선공유지에 대한 점유를 마친다. 이것으로 끝인가? 그렇지 않다. 이제 한국철도시설공단의 무능력이 만천하에 드러날 순서다. 우리가 빠져나간 자리에 무엇이 생기게 될 까. 아니 당장 무엇이라도 할 능력이 되는가. 철도시설공단이 스스로 내놓은 역세권개발사업에 따르면 민간사업자는 철도부지에 대한 사용계획을 가지고 집행해야 한다. 그런데 2020년 4월 현재 민간사업자가 내놓은 개발계획은 (구) 마포우체국 부지에 오피스텔을 지어서 분양하고 경의선공유지가 점유했던 공간엔 도시형생활주택을 지어서 분양한다는 것이 전부다. 우습게도 시민들을 내쫒은 자리에 민간사업자가 분양사업으로 돈을 벌겠다는 계획이 드러선다. 이것이 과연 도시공간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시민들의 욕구와 필요보다 우선하는 것일까, 이랜드라는 사기업의 경제적 이익이 과연 시민들에게 어떤 편익을 제공하게 될까.

다시 시작이다

이제 공간을 점유했던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을 핑계거리로 삼을 수 없다.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공기업이, 그렇게 만들어진 철도시설을 깔고 앉아서 사기업들에게 철도부지를 내놓고 있는 민낯이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철도시설공단은 이 사업들이 과연 공익적인지에 대하여 해명해야 할 것이다. 바로 이 부분이 경의선공유지에서 물리적 퇴거를 마친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의 다음 행보와 닿아 있다. 우리는 퇴거 이후 경의선공유지의 변화에 대해 기존보다 더욱 직접적으로 개입하고 평가할 것이다. 지난 10년 가까운 시간 동안 국민의 자산인 국유지를 방치하고 내버려 둔 것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고, 또한 사기업의 임대사업 수단으로 전락한 철도부지를 다시 시민들의 손으로 회수하기 위한 활동을 전개해 나갈 것이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한국철도시설공단의 무능력을 드러난 홍대입구역의 애경 사옥과 공덕역 인근의 효성 사옥 등이 과연 역세권개발 사업의 취지에 부합하고 공익과 사회적 가치의 실현이라는 공기업의 존립 가치에 부합하지는 지를 묻고 확인할 것이다. 막대한 소송이라는 수단으로 시민들을 몰아세웠으니 이제는 당신들이 그런 공권력의 정당성에 대하여 답을 할 차례다.

우리는 늘장이라 불리던 시기부터 6년이 넘는 기간 동안 어떤 도움도 없이 전기와 수도, 화장실과 광장을 유지해왔다. 이것이 하나의 가능성이었다면, 그 가능성이 공공기관의 소송이라는 것을 통해서 붕괴된 것을 기억할 것이다. 특히 지난 10월 이후 소송 국면에서 단 한번도 대화의 상대로 등장하지 않은 한국철도시설공단의 후안무치를 기억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최소한의 상호 존중을 지켜준 마포구청장 및 지역경제과엔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우리는 경의선공유지에서 나감으로서 어디에나 있게 되었고, 어디에나 있을 것이다. 함께 해준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X26번째자치구운동 주민들에게 요청한다.

“우리, 다시 세상을 커머닝하자”

2020년 4월 27일

경의선공유지시민행동X26번째자치구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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