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역사는 기록되어야 한다 _ 노동자역사박물관 <한내>

2020년 4월 28일culturalaction



기획 연재 _ 유아 Here!


공간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생계로 허덕이는 저 끝 어딘가에서 삶을 위한 투쟁을 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삶과 가족의 생계를 위해 작업을 근근이 팔아 생활을 꾸려나가기도 하고, 정부나 지자체의 프로젝트 공모를 통해 작업과 생활을 이어 나가기도 하고, 때로는 막노동현장에서 땀을 흘리기도 하는 사람들이다.

노동자들의 또 다른 삶의 공간인 농성천막 근처에서 뚝딱거리고, 노동자로서 노동자들과 함께 디자인을 만들기도 하고, 노동자들의 틈바구니에서 춤과 시와 노래와 그림으로 노동자성을 외치는 그런 사람들이다. 이들을 파견미술가 또는 현장예술가 또는 문화노동자라 부른다.

2017년 봄 광화문 광장에는 거대한 조형물 6개가 놓여있었다.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기도 하고 분노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거리행진에 상징물로 광장을 지켰던 박근혜, 황교안, 김기춘, 이재용, 정몽구, 조윤선이다. 지난 겨우내 광장을 지킨 이조형물은 낡고 더러워졌고 광장의 투쟁은 박근혜 퇴진을 끝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서울시는 광화문 촛불의 기록을 남기겠다고 했다. 광장의 표현물을 보관하여 이후 박물관의 형태로 만들어 보겠다며 광장에 걸렸던 현수막과 인쇄물, 조형물 등을 기부해 달라고 요청했다. 좋은 일이었지만 아쉬운 일이기도 했다. 우리의 역사를 우리가 관리하고 보관할 수 없는 현실을 극복할 방법은 없었다. 공간도 없었고 재정이라는 것은 애초에 없는 것이었기에 말이다. 이런저런 생각에 나름 꼼꼼하게 챙겨 서울시로 보내는 작업을 했지만 보내는 손은 결코 편하지만은 않았다. 그럼에도 광화문 광장을 상징했던 조형물은 보낼 수 없었다. 조형물은 제작한 작가의 작업실로 옮겨졌다.

거리조형물의 제작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작가들의 고민은 커졌다. 작업공간도 열악한데 공간가득 제작된 작업물이 꽉 채워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 창고라도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것도 이미 오래전 일이었다. 누구의 눈치도 안보고 누구의 간섭도 없는, 언제라도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과거에 우리는 정권이 바뀌거나 탄압이 심한시절 투쟁 역사를 한꺼번에 빼앗긴 경험을 수없이 많이 했다. 그리고 투쟁당사자인 우리 스스로도 과정에 만들었던 다양한 표현물들을 관리하고 보관하는데 소홀했던 것도 사실이다.

2017년 촛불광장이 마무리되고 이런저런 고민이 많던 어느 날 노동자역사<한내> 양규헌 대표를 민주노총 앞에서 우연히 만났다. 파주에 넓은 창고가 있으니 혹시 사용할 일이 있으면 말하라고 했다. 노동자역사박물관<한내>의 이야기다. 아주 잠깐의 만남에서 들은 이야기는 계속 머릿속에 남아있었지만 파인텍과 콜텍 투쟁 연대로 2년이 훌쩍 지나가고 콜텍 투쟁 마무리와 함께 남겨진 조형물을 보면서 문뜩 노동자역사 박물관<한내>가 떠올랐다. 콜텍 조형물을 보내도 되겠냐고 연락 했는데, 양 대표는 너무도 기꺼이 가져오라고했다. 찾아가기 전 이런저런 자료들을 찾아보았다.

HERE! 양규헌 대표는 전국노동조합협의회(이하 전노협)의 마지막 의장으로 1995년 민주노총이 만들어지면서 전노협 해산을 결정했고 1997년 전노협의 역사를 백서로 발간했다. 백서를 만들고 남은 자료들이 사과상자 600개정도의 양으로 보관에 대한 고민이 컸다고 한다. 이 곳 저곳으로 자료들을 옮기다보니 유실되거나 폐지로 팔려 나가는 일까지 생기자 양규헌 대표와 함께하는 사람들은 안정적인 공간의 필요성을 생각하게 되었고 결국 2008년 영등포에 노동자역사<한내>라는 작은 공간을 만들었다. 한내는 백기완 선생님이 “큰 한, 물줄기 내”, 큰 물줄기가 되라는 뜻으로 지어준 이름이다.


2008년 이후 10여 년간 한내의 자료들은 점점 늘어갔다. 노동자들의 투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2019년 초 노동자역사<한내>는 노동자역사박물관<한내>라는 이름으로 고양시에 수장고와 전시실 두 동을 지었다.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주변 지인들의 십시일반 모금과 빚을 총 동원해서였다. 사람들은 정부지원을 받아보는 것은 어떤지 제안을 해보기도 했지만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양규헌 대표는 “정부가 박물관에 개입하면 노동운동 역사에 정부 시각이 개입될 수 있고, 또 어떤 정권이냐에 따라 휘청 일수 있기에 재정 자립을 원칙으로 삼는다”며 현재까지도 독립재정을 고수하고 있다.

2017년 광화문 광장에서 고민하고 좌절했던 공간의 문제가 한 순간 스르륵 해결되는 느낌이었다. 상상했던 것보다 외진 곳에 있었고 상상했던 것보다 작은 전시 공간 이었지만, 상상했던 것보다 엄청 많은 자료와 투쟁의 기억이 자료로 만들어져 수장고에 있었다. 상상했던 것보다 더 많은 가능성이 있는 공간이다. 가장 좋았던 것은 믿음이다. 믿고 보낼 수 있는 곳. 믿고 기억할 수 있는 곳이다.

노동자역사박물관<한내>의 한쪽 벽에는 함께 만든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있고 이 공간을 함께 만들고 웃으며 땀을 흘렸지만 먼저 유명을 달리한 이승원과 사진 찍는 이정원의 사진이 걸려있다. 지금은 정경원 사무처장과 이황미, 김미화가 공간을 만들며 지키고 있다. 노동자의 역사를 있는 그대로 잊혀 지지 않게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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