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당신에게 편지를 쓰기에 앞서 문화연대가 콜트·콜텍 투쟁에 연대를 시작하고 과연 얼마나 많은 글을 썼을까 헤아려
ㅣ문화연대 2019년 3월 21일자 주간이슈칼럼ㅣ
13년만에 처음으로 만난, 당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
콜텍 박영호 사장에게 문화연대가 보내는 편지
오늘 당신에게 편지를 쓰기에 앞서 문화연대가 콜트·콜텍 투쟁에 연대를 시작하고 과연 얼마나 많은 글을 썼을까 헤아려 보았답니다. 논평, 성명, 각종 기고…. 기타노동자들의 투쟁을 알리기 위해 우리는 수많은 글을 써왔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은 거리에서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또다시 임재춘 동지는 목숨을 걸고 단식에 들어갔지요. 오늘로 단식은 10일, 투쟁은 4,432일이 지났습니다. 이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기에 우리는 이 분노를 꾹꾹 눌러 담아 당신에게 처음으로 편지를 씁니다. 

당신이 누구입니까?
당신에게는 신화가 있지요. 성수동의 작은 공장에서 200만원의 소자본으로 시작해 세계 기타 시장의 3할을 차지하는 굴지의 기업을 만든 성공한 사업가. 또한 기술력을 인정받아 아이바네즈, 펜더, 깁슨 등 명품기타회사의 기타를 OEM 형식으로 생산하고, 고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도네시아에 큰 공장을 세우고 세계를 상대로 기타를 생산 판매하는 기타의 명장. 누군가는 당신을 ‘기타제조의 장인(匠人)’이라고 하더군요.  

그러나 그 신화 속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우리는 압니다. 당신이 성공한 사업가로 명성을 쌓는 동안 먼지 가득한 공장에서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들은 한 번 쓰고 버리는 마스크를 빨아가며 다시 사용했고, 작업용 장갑 역시 재활용해야 했습니다. 혹시나 창밖 풍경에 정신이 팔려 일을 안 할까 당신은 공장에 창문을 만들지 않았고, 있던 창문마저 나무판자로 다 막아버렸지요. 사업장에는 성폭력이 만연했고, 공장에는 산재가 가득했습니다. 흑자로 빼곡했을 장부를 가지고 있었지만 노동자들 임금에는 야박했고, 끝내는 노동조합을 만들었단 이유로 노동자들을 함부로 해고하고, 더 싼 임금을 줄 수 있는 해외로 공장을 옮겼습니다.  

당신은 그랬다지요.
이 투쟁 때문에 본인이 엄청 피해를 받았다고. 출신대학 동문회도 창피해서 못나가고 있다고 말이에요. 모교와 해병대에 기타를 선물해도 이제 사람들은 당신을 칭찬하지 않아요. 그저 당신을 노동자들을 해고한 괴물로 묘사하고, 당신이 해고한 노동자들을 공장으로 복직시키라고 말할 뿐이에요. 당신을 성공한 사업가로 추켜세우던 기사도 이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당신의 이름 뒤에 붙던 ‘명장’ ‘장인’ ‘성공’은 이제 ‘부당해고’ 교섭‘ ’책임‘ 같은 말들이 대신하고 있어요. 볼멘소리를 내뱉은 걸 보면 당신도 이러한 삶이 유쾌하지는 않겠지요. 

지독한 작업 환경 속에서도 노동자들은 자신이 만든 기타를 자랑스러워했어요. 지금도 기타 얘기를 할 때면 눈빛을 반짝여요. 당신도 그랬겠죠. 긴 세월 동안 당신도 당신의 공장을, 그곳에서 만든 기타를 아끼고 자랑스러워했겠죠. 지금은 어떤가요? 적어도 숨겨진 이야기들을 아는 우리들은 더 이상 당신이 만든 기타를 연주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제는 당신도 누군가에게 공장을 물려줄 준비를 할 때가 되었죠. 어쩌면 그 ‘누구’가 지금 당신과 함께 일하는 당신의 아들이 될지도 모르지요. 이대로 불명예로 가득한 공장과 연주하고 싶지 않은 아픔의 기타를 물려줄 생각인가요?  

지난 2월 18일, 13년 만에 처음 당신을 만났습니다.
사장실이라는 골방에 숨어있던 당신을 기타노동자들이 친히 방문해 손을 내밀었지요. 덕분에 당신은 3월 7일, 어두운 사장실을 벗어나 처음으로 교섭현장에 나와 세상과 마주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여전히 당신의 고집을 버리지 않고 노동자들에게 또 한 번의 상처만을 안겨 주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불명예를 떨쳐버릴 기회를 주기 위해 기타노동자들은 여전히 당신에게 손을 내밀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가 당신 인생의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요. 그간의 아집과 욕심을 버리고, 이제 그만 당당하게 밝은 세상으로 나오세요.

물론, 새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선행해야 할 조건이 있습니다. 오랜 시간 당신을 지켜봐온 만큼 당신에게 큰 걸 바라지는 않아요. 빠짐없이 하나씩, 하지만 하루라도 빠르게 이 약속들을 지키길 바라요.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 모릅니다.

첫째, 노동자들에게 무조건적으로 사과하세요. 기타노동자들의 투쟁이 오늘로 4,432일이에요. 쉬이 가늠하기도 힘든 이 시간에 대해 당신은 사과해야 합니다. 가족과 떨어져 농성장에서 보내야 했던 그 긴긴 시간들, 눈 내리고 비 내리고 또 춥고 무더운 날에도 길 위에서 보내야 했던 그 수많은 계절 모두에 대해서 당신은 사과해야만 합니다.

둘째, 노동자들의 복직을 받아들이세요.김경봉 조합원은 계속해서 공장에서 일했다고 해도 올해 정년을 맞이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다시 공구를 들고 기타를 만들게 해달라는 요구는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건 단 하나. 그가 사랑했던 직장 ‘콜텍’의 이름이 새겨진 작업복을 입고 퇴사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겁니다. 하룻밤이라도 내가 사랑한 회사의 직원으로 복직해 편한 잠을 자게 해달라는 이 최소한의 요구를, 당신은 묵살해서는 안 됩니다.

셋째, 콜텍 부당해고 판결에 관한 사회적 의문에 성실하게 답하세요. 세계적으로도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판결이 2014년에 나왔지요. 근로기준법 그 어디에서도 근거를 찾을 수 없는 ‘미래에 다가올 경영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정리해고는 정당하다’는 판결에 따라 당신은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기적의 논리에 가까운 이 판결 이면에 양승태 대법원 치하에서 진행된 사법거래가 있었음이 많은 부분 밝혀졌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개별 사안에 관해선 의문투성입니다. 이 의문을 해소하려면 박영호 사장, 당신이 증언해야만 합니다. 재판에 어떻게 개입했고, 기적을 일으키기 위해 무엇을 악마에게 팔았는지 이야기하세요. 그리고 이 판결로 인해 피해를 입은 다른 투쟁사업장에 대해서도 역시 사과하고,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다면 책임지세요. 이것만이 당신이 저지른 지난날의 과업을 용서받을 수 있는 길입니다.

넷째, 노동자들에게 금전적으로 보상하세요. 금전적인 보상이 투쟁의 최고 목표는 아닙니다. 또 얼마를 보상한들 지난날의 고통을 다 지울 수도 없을 겁니다. 그럼에도 당신은, 기타노동자들이 보냈을 그 고통의 시간을 환산해서 보상할 무언가를 반드시 찾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여기에 가장 쉬운 해답을 드리는 거예요. 최근 교섭에서 말도 안 되는 금액을 노동자들에게 제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선 안 됩니다. 폭력적인 해고와 노동자들이 지나온 고통의 나날을 외면하지 말고 무조건적인 보상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문화연대를 많이 싫어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이 투쟁에 문화연대가 더 이상 개입하지 말라고까지 이야기하셨다고요. 하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듯 앞으로도 문화연대는 기타노동자들의 가장 큰 벗으로서 기타노동자들의 곁을 지킬 생각입니다. 길 위의 노동자들이 이 투쟁을 하루라도 빨리 승리로 끝내고 자신들의 삶을 되찾을 수 있도록 문화연대는 더 열심히 연대할 겁니다.

이 다짐은 박영호 사장, 당신을 향한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와 기타노동자들은 여전히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당신이 지난날을 반성하고 기타노동자들의 손을 잡고 밝은 세상으로 나오기를, 당신이 위 네 가지 조건을 완벽히 수행하고 훌륭한 경영자로 남을 수 있기를 우리는 바랍니다.

그 첫걸음으로, 임재춘 조합원의 단식농성장에 방문하기를 권합니다. 자신 때문에 곡기를 끊은 사람이, 그것도 자신의 회사 앞마당까지 와 기다리고 있는데, 인간 된 도리로 한번은 찾아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걸음 들여놓기가 쉽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그 한걸음이 당신에게 찾아온 마지막 기회를 잡는 첫걸음임을 기억하십시오. 농성장은 언제나 박영호 사장 당신에게 활짝 열려있습니다.

2019년 3월 21일.
문화연대가 콜텍 박영호 사장에게.
문화연대 Cultural A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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