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그들’에게 정치적 책임을 지워야 할 때 (39호)

2014년 5월 22일culturalaction
[편집자주]
<문화빵>의 이번 특집은 “세월호”입니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대한민국이 침몰하고 있습니다. 아니 대한민국은 오래 전부터 침몰하고 있었습니다. “생명보다 돈”을, “사람보다 권력”을 탐해왔던 대한민국호는 언제나 침몰 위기와 공생하고 있었습니다. 침몰하는 대한민국호를 어떻게 구조할 것인지 아직은 잘 모르지만, 선장만을 바라 볼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이제 모두가 알게되었습니다. 우리 스스로 해답을 찾아나서야 할 시간이 도래한 것 같습니다. <문화빵>에게 또 하나의 질문이 던져졌습니다.
(1) 우리 모두가 세월호였다 / 송경동 (시인)
(2) ‘그들’에게 정치적 책임을 지워야 할 때 /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3) 헛손질과 책임회피는 이제 그만, 세월호 피해자의 인권을 요구한다 / 세월호 피해자의 인권보장을 촉구하는 인권단체 일동

 

‘그들’에게 정치적 책임을 지워야 할 때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세월호 침몰사건을 바라보며 우리가 사는 세계를 복기(復棋)하게 된다. 일상적으로 벌어졌던 태만과 무심함과 이기심이, 그래서 특별하지 않았던 일들이 침몰이라는 특별한 사건을 만났을 때 수백 명의 죽음이라는 특별한 결과를 낳았기 때문이다. 세월호 침몰이 일어나게 된 배경이나 침몰에 대한 정부의 구조 대책은 그 이전의 태도와 다를 게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 기업은 ‘이윤추구를 위해’ 선실 개조든 편법이든 가리지 않았고 정부는 ‘기업이 자유롭게 돈을 벌게 하기 위해’ 규제를 풀었다. 이는 세월호 선장과 승무원, 유병언 회장만이 한 것이 아니라 많은 기업들이 하던 일이기도 했다.
정부는 기업이 살기 위해서는 노동자든 시민이든 양보해야 한다며 관련 법을 완화시키거나 많은 사업장에서 관리감독을 까다롭게 하지 않았다. 얼마 전 현대중공업 산재 사망 사고처럼 산업 재해 사망자 연 2000명(하루 다섯 명 꼴)은 이를 방증한다. 이것 모두 특별하지 않은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어 이렇게 수많은 목숨이 유명을 달리했는지, 우리 모두 자문하는 까닭이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 우리의 생활이, 우리의 가치관이 얼마나 자본의 논리, 탐욕의 논리에 잠식당하거나 그에 순응하며 살았는지 스스로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진짜로 사람의 목숨이, 인간에 대한 존중이 우선적 가치였던 적이 있었던가!
1997년 외환위기를 겪고 IMF 구제금융 이후 우리 사회 주요 가치가 노골적으로 ‘부자’가 되었던 것처럼, 2014년 4월 16일의 세월호 침몰사고는 우리 사회의 가치를 바꾸어 놓을 것이고 바꾸어야 한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부자되세요”가 덕담이 되는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복기가 필요하다. “인간이 만든 악은 자연이 만든 악만큼이나 예측을 불허한다”던 바우만의 말처럼, 바꾸지 않으면 인간의 탐욕, 자본의 탐욕이 초래한 재난은 언제든 누구든 가리지 않고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사회는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하지 않는 구조다. 여기 저기 지뢰밭은 언제든 터질 수 있다. 게다가 그 지뢰밭 가까이에는 이 사회의 밑바닥이라 칭해지며 분리당하고 차별당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얼마 전 장애인등급제 때문에 활동 보조 서비스를 받지 못한 상황에서 화재사고로 사망한 고(故) 송국현 활동가처럼 말이다. 죽음의 사회적 배분은 평등하지 않다.

우리의 정치적 책임을 다해야 할 때

이제 우리는 우리 모두의 정치적 책임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비애와 도덕적 책임을 느끼는데 그치지 않고 정치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의 가치와 구조를 바꿀 수 있다. 그 정치적 책임의 내용과 무게는 모두 다르지만, 각자가 자기 위치에서 정치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인권 활동가인 필자의 정치적 책임은 무엇인가를 자문해본다. 이를테면 필자는 대규모 긴급 재난 사태에 대해 인권활동가가 할 수 있는 일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느낀다. 나아가 사고 이후 가족들의 요구가 정부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때 즉시 그들과 함께 하지 못했던 점에 대해 정치적 책임을 느낀다.
정부가 중요시 하는 것이 사람의 목숨이 아니라, 신기루같은 정치적 지지율일 뿐이라는 게 드러나 버렸다. 희생자 가족을 비롯한 사회 구성원의 입과 발을 묶어 두려는 정부의 각종 조치들은 역설적으로 그들이 무엇을 중요시 하는지 알게 해줬다.
시민들의 정치적 책임은 무엇인가. 이 사건의 진상을 규명하고 직접 책임을 묻는 일이다. 세월호 선장이나 유병언 회장의 법적 처벌로 침몰 사고의 초점을 한정하려는 권력의 의도에 넘어가지 않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천해야 한다. 이제는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더 이상 부당한 지시에 따르지 않겠다고, 행동을 통해 보여줘야 한다. 이제 희생자들에게 미안해하고 슬퍼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가장 많은 정치적 책임을 져야할 사람이 있다. 우리가 대한민국호 선장으로 선출한 박근혜 대통령이다. 세월호가 조금씩 침몰하던 그 순간, 동원할 수 있었던 자원을 가장 많이 보유한 정부가 무엇을 했는지, 우리는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정부의 태도는 세월호 침몰사건 이전이나 이후나 다를 바 없다. 유족들의 요구와 행진을 경찰을 동원해 봉쇄하려 했던 것처럼, 정부는 청와대 인근에 낸 10여 곳의 집회신고에 대해 금지 통고로 화답했다. 그럼에도 시민들은 청와대 앞 만민공동회를 성사시켰다. 여론과 지지도를 고려해 대통령의 사과 시기를 저울질해왔던 정부에게 정치적 책임을 물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이 국가가 더 이상 사람의 생명, 인간 존엄성을 짓밟도록 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들

통제받지 않는 국가 권력과 탐욕스러운 자본이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죽음을 세는 셈의 대상조차 되지 않는 사람들은 어김없이 세월호 침몰 사건에서도 드러났다. 여덟 차례나 변동되었던 세월호 침몰 사건의 희생자 숫자에 아르바이트생이 빠졌다는 사실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계약직 승무원 노동자의 죽음에서 놓치지 말고 던져야 할 질문이 있다. 위험은 과연 누구에게 전가되고 있는가. 그동안 수많은 비정규 노동자들이 죽음으로 경고등을 울렸지만 우리가 듣지 못하고 있었다. 그 경고음을 이번에는 흘려보내지 말아야 한다.
희생자 대다수를 차지하는 사람들이 단원고 학생들이라는 점 때문에 “어른들이 잘못해서”나 “어른들이 미안해서”라는 표현들이 많이 사용된다. 나는 이 표현이 청소년들을 그저 지켜줘야 할 대상으로 생각해서 하는 말이 아니기를 바란다. 청소년을 포함한 대다수 희생자들의 죽음을 미리 방지할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음을, 사회가 이 모양 이 꼴이 되도록 방치했음을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성하는 목소리이길 바란다. 이제 필요한 일은 청소년이든 어른이든 상관없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권력에 순종하라’는 규율에 대해 반기를 드는 것이다.
“선생님 말씀 잘 듣고, 부모님 말씀 잘 들어라”고 배워온 청소년들에게 그/녀가 “누구니까” 말을 들어야 한다는 ‘권력과 위계에 대한 순종’을 가르치지 말아야 한다. 이제는 인간 존엄성에 대해서 배우고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신만 살겠다고 선실에 “가만히 있으라”는 ‘명령’을 내리고 떠난 선장처럼, 자신의 목숨과 평안만을 추구하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무조건 가만히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주체라는 것을 얘기해줘야 한다. 청소년이든, 비청소년이든 자율적이고 동등한 주체로서 서로 의견을 나누고 판단하며 민주주의를 실천해야 한다.
사진출처: 천주교인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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