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철도의 분할 민영화가 몰고 올 참담한 결과(25호)

2013년 8월 29일culturalaction

[편집자주] ‘KTX 민영화‘를 둘러 싼 논란이 식지 않고 있습니다.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27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정부가 추진 중인 수서발 KTX 경쟁체제를 민영화라 하는 것은 억지”라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노동계는 물론 시민사회단체, 전문가, 언론 등은 “경쟁체제”, “국민연금” 등에 숨어서 “민영화를 민영화라 부르지 않는 꼼수”라며 비판하고 있습니다. 국토교통부의 거짓 해명도 계속적으로 논란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이번 <문화빵> 특집은 우리가 타기만 할 것이 아니라 잘 알아둬야 할 것, 바로 ‘KTX 민영화’ 입니다.

① 철도의 분할 민영화가 몰고 올 참담한 결과 (전국철도노동조합)
② [Q&A]’KTX민영화’ 이것이 궁금하다 (<문화빵> 편집위원회)
③ [영상]철도민영화 무엇이 문제인가? (전국철도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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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25호
철도의 분할 민영화가 몰고 올 참담한 결과
 
전국철도노동조합
 
<2016년 1월>
긴급한 일로 전남 구례에 가야했던 김씨는 9시 30분 수서역에서 호남선 KTX를 타고 12시에 익산역에 도착해 12시 20분 전라선 새마을호로 환승하고 13시 30분에 구례구역으로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수서발 KTX가 익산으로 가는 도중 고장을 일으켜 지연운행 되었고, 환승시간이 거의 다 되어 익산역에 도착하게 되었다. 환승열차를 놓칠 것을 우려한 승객 수십 명이 열차승무원에게 익산역에 지연을 통보해 환승이 가능하도록 조치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전라선 열차는 다른 회사가 운영하는 것이라서 연계를 위한 조치가 불가능하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 2015년 수서발 KTX 주식회사는 철도공사와 분리되었다.) 결국 간발의 차이로 수십 명의 승객이 전라선 열차를 놓쳤고, 빗발치는 항의에도 불구하고 10%의 지연보상금만 손에 쥔 채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 구례로 가는 다음 열차 역시 이미 만석으로 표가 매진된 상태라 시간에 쫓긴 김씨는 20만원의 거금을 주고 익산에서 구례까지 택시를 잡아탈 수밖에 없었다.
<2017년 3월>
최근 ‘속칭 강남 KTX’로 불리는 수서발 KTX 운영회사가 새로 자율요금제를 도입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울-용산 노선이 갖고 있던 강남권 고속철 이용수요가 수서노선으로 완전히 이전된 데 이어 고속철 2단계 및 수서노선의 완전 개통으로 늘어난 수요까지 더해졌지만 ‘수서발 KTX 주식회사’는 높은 선로사용료와 금융비용, 그리고 국민연기금 투자분에 대한 기대수익 이상의 주주배당금을 고려하면 운영수익 압박이 크다며 등급별로 특화된 요금제를 도입해 수익률을 극대화해 나갈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등급별 요금제로 요금체계가 개편되면 전반적 요금수준은 약 30% 가량 인상될 것이고, 최고 등급요금의 경우, 코레일 KTX 요금에 비해 약 2배 이상 비쌀 것으로 보인다. ‘부자만을 위한 서비스’란 이유로 사회적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회사경영진은 정부가 자율요금제 도입을 통제한다면 연기금 등이 보유한 회사지분을 민간에 매각할 수밖에 없다는 언급도 빼놓지 않았다.
<2018년 5월>
수서발 KTX 주식회사 설립 이후 철도산업 전반의 부실구조가 더욱 심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코레일의 영업적자가 급격히 늘어났다. 2013년 당시 코레일은 총 14조원의 부채를 갖고 있었지만 이 중 8.9조원은 건설부채 등으로 구조적인 것이었고, 영업적자는 용산개발투자 실패로 인한 부분을 빼면 누적액으로 약 4.4조원 정도였다. 2013년 실시된 철도공사 경영분석에 의하면 2009년 이후 철도수송 분담률이 늘어나고 있었고, 영업수익 역시 2005년 이후 꾸준히 증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현재 코레일의 부실이 심화되게 된 데에는 ‘수서발 KTX 노선의 분할로 인해 코레일 고속철도부문 운송수익이 격감한데 가장 큰 원인이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한편, 코레일 경영진은 영업수지가 악화됨에 따라 조만간 원가에 못 미치는 철도요금을 큰 폭으로 인상하거나 적자노선의 운영을 포기하는 방식으로 자구책을 마련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요금인상과 지역노선 폐지는 곧바로 철도운송의 편의성을 더욱 악화시킬 것이고, 이는 또다시 철도수송 분담률을 저하시킬 수밖에 없어 결국 철도산업은 제살 파먹기 식으로 경쟁력을 상실하고, 적자구조가 고착화되는 악순환에 빠져들 것으로 보인다.
<2018년 10월>
“한국철도 역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록될 이번 사고를 포함하여 최근 빈발하는 철도사고는 철도운영의 파편화와 철도회사들 사이에 팽배해 있는 수익 지상주의가 낳은 필연적 귀결로 보인다. 수익극대화에 혈안이 된 철도회사들은 단기 운송수익을 늘이는 데만 관심을 둘 뿐 시설의 개량이나 유지보수에 대한 투자는 도외시하였다. 더구나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기존인력을 비숙련 비정규인력으로 바꾸어 나가는 일에만 여념이 없었으니 사고는 이미 불가피한 것이었다.
철도산업이 복수의 운영회사와 철도시설회사, 차량정비회사, 유지보수회사, 관제기관 등으로 파편화된 이후 철도의 네트워크적 특성이 제대로 동작하지 못하는 일은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차량정비회사나 유지보수회사는 시설과 차량의 오류를 발견하고도 이를 제때 조치하지 못했고, 장애상태를 관제실이나 운영회사에 정확히 통보하지도 않았다. 운영회사 역시 사고예방보다는 열차지연에 따른 환불책임을 기관사에게 추궁하겠다는 압력위주로 인력관리를 했다 하니, 안전을 위한 철도운영자간 소통이 제대로 작동할 수 없었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2019년 6월>
수서발 KTX 주식회사 노동조합은 ‘코레일 직원 수준으로 임금 및 노동조건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다음 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실제 수서발 KTX 회사에서 근무하는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동일업무를 수행하는 코레일 노동자에 비해 열악한 임금과 노동조건을 갖고 있으며, 그나마 비정규직, 외주, 하청 등의 방식으로 불완전 고용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수서발 KTX 주식회사 경영진은 노동조합의 요구를 수용하게 된다면 수서발 KTX 운영을 별개의 회사로 분리한 이유가 없어진다며 노동조합의 요구는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2020년 2월>
 
해외철도 사업권 수주를 두고 벌어진 국가간 경쟁에서 한국철도산업은 이제 명함도 내밀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철도선진국들이 건설과 운영, 그리고 제조산업을 아우르는 자국의 경쟁력 있는 공기업을 앞세워 해외 철도사업을 장악해 들어가는 데 반해, 한국철도는 파편화된 철도회사의 난립으로 자신의 대표 주자조차 마땅히 세울 수 없는 형편이 되었다. 특히 최근에 매각된 철도회사 지분이 외국철도회사와 금융자본에 인수되면서 한국철도산업은 말 그대로 공중분해 되고 말았다. 조만간 시작될 남북철도나 동북아 대륙철도 연결사업조차 중국, 프랑스, 독일, 일본 등 강력한 철도 공기업을 소유하고 있는 국가들 간의 각축장이 될 것이라는 관측이 굳어져 가고 있으니 한국철도의 운명이 실로 참담하기 그지없다.
예고된 한국철도의 추락, 국민이 앞장서 막아야 한다.
2012년 불거진 수서발 KTX 분할․민영화 계획은 총선과 대선을 거치고, 여야 대통령 후보들의 민영화정책 중단발표와 맞물리면서 취소되는 듯했다. 그러나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지 채 6개월도 안되어 국토교통부는 약속을 뒤집고 민영화 계획을 일사천리로 밀어붙이고 있다.
친국토부 학자들을 중심으로 소위 ‘민간검토위원회’라는 걸 만들더니, 회의 몇 번 하고서는 ‘철도발전방안’이라는 주문자맞춤형 의견서를 냈고, 급기야 월 26일 철도산업위원회를 개최하여 철도민영화 계획서를 공식발표했다. 그리고 국토부 산하에 소위 ‘수서발 KTX 주식회사 설립추진단’을 만들어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정관도 만들고 이사를 선임하여 9월 전까지 법인등록을 마무리 짓겠다는 속성시간표를 갖고 있다.
한국철도산업의 앞날이 풍전등화의 상황에 놓인 것이다. 앞서 적시한 철도의 분할․민영화가 야기한 미래는 막연한 상상과 억측이 아니다. 국토부의 계획이 가져올 필연적 결과다. 그렇다면 이제 ‘철도산업의 민영화를 저지하는 일은 단지 철도노동조합만의 문제가 아닌 셈이다. 철도를 이용하는 승객의 문제이고, 지역노선의 폐지를 앞둔 지역민의 문제이고, 안전과 공익성파괴로 고통받아야 할 국민 모두의 문제인 것이다.
국토부의 계획이 확정되고 새로운 철도회사가 설립된다면 이미 민영화 열차는 출발선을 통과한 것이나 다름없다. 정부와 의회가 철도민영화정책의 실패를 자인했음에도, 이를 다시 공적 소유의 통합철도시스템으로 돌리는 일에 엄두를 내지 못하는 영국철도의 추락을 우리가 반복하지 않으려면 지금 당장 ‘수서발 KTX 주식회사’가 설립되는 것을 막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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