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빵] 30호

2013년 12월 4일culturalaction

[특집]게임이 중독물질이라구요?(30호)

 

[특집]게임 중독법, 치료를 가장한 규제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이 대표발의한 <중독 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또한번 크게 논란이 되고 있다. 셧다운제를 비롯해서 계속되어온 게임을 포함한 문화계에 대한 정부의 규제 움직임 속에 문화예술단체와 시민단체는 “게임 및 문화콘텐츠 규제 악법 철폐 공동대책위원회”(이하 게임규제개혁 공대위)를 출범해서 대응했다. 정부와 여당은 게임 중독의 위험성을 강조하며 게임을 마약, 도박, 술과 함께 4대 중독물질에 포함시키려 하고 있다. 게임 중독(게임 과몰입) 현상은 게임 그 자체에서 나오는 것일까? 게임이 중독 물질인지 과학적 근거가 있는 건가? 그럼 왜 보수진영은 게임 중독법을 통과 시키려고 하는 것일까?  이번 30호 문화빵에서는 게임 중독법의 논쟁지점과 문제점들, 그리고 이 문제를 어떻게 봐야하는지에 대해서 다루어 보았다.
① 게임이 중독물질이라구요? / 최준영 (게임규제개혁 공대위 사무국장)
② ‘게임 중독법’, 감정적 대응 말자 / 김종득 (게임개발자 연대 대표)
③ [Q&A] 게임 중독법을 파헤쳐 보자 (문화연대 박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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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30호
게임이 중독물질이라구요?
 
 
 
 
최준영 / 게임규제개혁 공대위 사무국장 chobari@gmail.com
 
 
겉으로 드러난 생각의 흐름은 대략 이렇다. [어떤 학생/청년이 사회적인 논란이 될만한 범죄를 일으킨다 -> 그런데 알고보니 이 청년은 폭력적인 게임에 빠져 있었다(게다가 사회생활도 하지 않고 집에만 틀어박혀있다) -> 게임이 얼마나 폭력적인지 모자이크된 화면 보여주고 ->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얼마나 손쉽게 이러한 게임에 접속할 수 있는지도 보여주고 -> ‘게임과 현실이 혼동된다’거나 ‘게임을 하다 사람을 OO고픈 충동을 일으킨 적 있다’는 자극적인 인터뷰도 보여주면서 -> 게임에 대한 적극적인 규제/통제가 필요하다]는 식이다. 최근에는 여기에다 (정신과) 의사들까지 나와 게임에 중독되는 것이 의학적으로도(!) 얼마나 문제인지를 설파한다. 그리고 이런 사고의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게임은 범죄를 유발하는 요소, 촉진제 등으로 인식된다.
 
그래, 뭐 매우 초긍정적으로 사태를 바라볼 수도 있겠다. 청소년들의 삶과 한국 사회의 미래를 걱정하는 기성세대의 진심어린 우려와 걱정이라고. 한편으로는 게임에 대해 소위 ‘중독현상’이라 할만큼 과몰입하는 극단적인 사례가 존재하고 있기에 이런 걱정이 나올 수도 있는 것이라고. 그 분들도 한국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분들이기에, 게임의 긍정적인 측면도 함께 얘기하면서 정말 ‘중독현상’을 일으키는 것이 게임인지 아니면 다른 요인일 수도 있는지를 토론하고, 또 의학적/과학적 근거라는 것이 아직 확실치 않으니 좀 더 신중해야지 않겠냐는 의견도 나눌 수 있을 것이라고. 이렇게 토론하고 소통하는 것이 게임이라는 문화콘텐츠가 한국 사회에서 자리잡기 위한 ‘성장통’ 같은게 아니겠냐고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초긍정은 고사하고 점점 더 어두운 내리막길로 게임을 내몰고 있다. 만16세 미만 청소년들의 밤12시부터 새벽6시까지의 온라인게임 접속을 강제로 차단하는 <게임셧다운제>가 도입되지 않나, 최근에는 게임을 아예 ‘중독을 일으키는 물질/행위’로 규정하는 <중독예방관리및치료를위한법률안>(이하 <게임중독법>)이 상정되기까지 하였다. 특히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게임중독법>의 경우, ‘인터넷게임 등 미디어콘텐츠’를 술, 마약, 도박과 함께 중독을 일으키는 4대 물질/행위로 규정 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게임뿐 아니라 문화콘텐츠 전반에 대한 과도한 규제, 표현의 자유 침해 등 문화예술계 전반에 대한 지나친 규제 법률이라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기도 하다.
 
이쯤되니 여러 측면으로 이런 과도한 규제 움직임의 배경과 음모에 대한 이야기도 넘쳐난다. ‘<게임중독법>은 숙원사업’이라는 <한국중독정신의학회>의 발언은 정신과 의사 출신의 새누리당 신의진 의원이 대표 발의한 <게임중독법>이 사실은 “일부 보건의료 전문가 및 정신과 의사들의 밥그릇챙기기”라는 음모론을 확인해준다는 누리꾼들의 반응을 불어일으키고 있고, 또 같은 당 손인춘 의원이 대표 발의한(신의진 의원도 발의에 동참) <인터넷게임중독치유지원에관한법률안>에 ‘인터넷게임중독치유센터’의 설립과 인터넷게임 관련사업자에게 연간 매출액의 10분의 1 이하의 범위에서 ‘인터넷게임중독치유부담금’을 부과/징수할 수 있게 한 조항이 있는 것을 두고 “결국 게임산업에서 ‘삥’뜯기 위한 법” 아니냐는 음모론도 확산되고 있다.
 
사실 음모론이라고 하기엔 꽤 설득력있는 근거를 갖고 있는 주장이지만 이는 현재 벌어진 문제를 해결하기엔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다. 그 보다는 (1) ’게임이 중독물질/행위’라는 이들 주장의 핵심 논리가 과연 타당한 지에 대한 것에서 출발하여 (2) 게임에 대한 공포심리가 조장되는 상황에 대한 냉정한 분석, (3) 게임의 긍정적인 측면 – 창의적 문화콘텐츠, 놀이문화, 교육적 측면, 스포츠/건강영역에서의 활용 등 – 에 대한 설명, 그리고 (4)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게임에 과몰입하는 사례에 대한 적절한 의학적/사회적 해결방안과 (5) 자율적인 규제시스템의 마련 등에 대한 대안을 만들고 제시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1) 이른바 ‘게임중독현상’의 원인이 온전히 게임에 있다는 주장은 이미 과학적, 의학적 설득력을 잃었다고 할 수 있다. 미국 <정신의학학회>의 공식 장애의 중독 분류에서도 인터넷게임은 빠져 있고, 잇따른 총기사고에 대한 원인이 게임에 있다는 <미총기협회>의 주장에 대해 오바마 정부가 미국질병대책센터(Centers for Disease Control, CDC)와 연구 단체들에게 총기 관련의 사건의 원인에 대해 연구할 것을 지시한 것이 올해 1월이라는 점 등을 고려할 때 ‘게임중독현상’이 게임 때문에 일어난다는 주장은 적어도 아직은 별다른 근거가 없는 주장이라 할 수 있다. 또한 국내에서도 “게임 과몰입의 원인이 과도한 스트레스나 사회부적응 현상, 우울증 등 다양한 현상들과 복합적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많으며, 오히려 게임은 다른 문제들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물”이라고 말하는 교육학자, 심리학자, 심지어 정신의학계 전문가들도 많은 것이 사실이다(미주1).
 
(2) “내가 해봐서 아는데…” 류의 주장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게임에 대한 과도한 공포 심리는 실제로는 게임을 잘 모르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게임을 잘 모르다보니 언론에서 얘기되는 극단적인 사례들이 더 공포스럽게 다가오는 것이 사실이다. 이병찬 변호사는 최근 언론에 쓴 글(미주2)에서 “학부모들이 게임을 이해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통로를 확보하는 방안을 제안”하면서 “부모들도 게임을 하다 보면 아이가 왜 이걸 재미있어하는지, 왜 아무 때나 전원을 끄면 안 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가 즐기는 게임을 이해하면 이를 토대로 아이가 겪고 있는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이야기해볼 기회가 생길 수 있을 것입니다”라며 부모세대, 기성세대가 게임을 좀 더 잘 이해하는 것이 게임 과몰입을 풀어나갈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3) 게다가 게임은 창의적인 문화콘텐츠이기도 하다. 게임은 이미 영상, 음악, 디자인, 스토리 등이 결집된 종합적인 문화콘텐츠로 부상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문화예술적 가치도 인정받고 있다. 그리고 이와 함께 게임의 문화적 가치, 사회적 순기능에 대한 이해도 높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게임은 최근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의 대표적인 놀이문화로 자리 잡으면서 사회를 배워나가는 장이 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과 만나서 또래문화를 만드는 커뮤니티의 역할도 하고 있다. 또한 게임은 교육용으로나 노인성 질병치료 등 건강 분야, 스포츠 시뮬레이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기도 하다.(미주3)
 
(4),(5) 물론 현실적으로 벌어지는 문제들을 부정할 수는 없다. 게임에 대한 중독현상, 과몰입 현상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고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는 적절한 의학적/사회적/문화적 처방이 내려져야 함은 분명하다. 하지만 게임에 대한 ‘중독 현상’의 사회적 폐해를 해결하는 실질적인 대안은 <게임중독법>과 같은 극단적인 규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돌봄과 배려, 따듯한 예술교육과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의 지원이다(미주4). 또한 문화콘텐츠에 대한 규제 일원화 및 민간자율규제의 합리적인 대안을 만들 수 있어야 할 것이다(미주5).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른바 ‘게임중독’과 관련해서는 정치인, 전문가들만 보이고 정작 피해를 입고 있다는 학생/청소년/시민들의 목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왜 게임에 빠져드는지, 왜 게임은 재미있는데 공부는 재미없는지 물어보고 귀기울이는 사람들은 적어 보인다. 당사자들의 목소리는 배제된 채, 과학적/의학적/사회문화적 연구보다는 추측에 가까운 잘못된 확신만이 언론을 장식하고 있다. 이에 반해 대학입시, 취업대란, 경쟁 중심의 사회, 스트레스, 우울증, 여가생활 소재의 부족 등의 사회적 문제들이 게임에 과몰입하는 계기일 수 있다는 주장은 너무 근본적인 차원이라 그런지 많이 주목받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게임에 대한 과학적/의학적/사회적 근거가 부족한 일방적인 공격과 과도한 규제는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정도로 게임에 과몰입하는 문제’에 대한 너무나 손쉽고도 무책임한 해결방안일 뿐이다. 추측, 과장이 아닌 좀 더 진지하고 차분한 연구와 토론을 통한 합리적인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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