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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28] 일상의 연대를 시작하다 – 농성장 정원(庭園) 만들기

2017년 12월 4일culturalaction

신유아 / 문화연대

 

*연재 28호는 필자가 문화연대 홈페이지에 올렸던 글들을 엮어 쓴 글입니다.

2013년도 강추위로 한해가 시작됐다.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 앞 철탑 위 노동자들의 사투는 100일이 지나도록 이어지고 있었고, 대한문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의 분향소는 여전히 경찰의 시비와 협박에 시달렸다. 그러던 어느 날 대한문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의 분향소 천막에 화재가 발생해 설치된 천막이 불에 완전히 탔다. 방화범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잡혔지만, 화재로 잿더미가 된 분향소는 쓰레기 더미로 바뀌어 버렸다.

화재현장을 다 뒤지고 뒤져 쓸 만한 물건을 고르고 난 다음 날 구청에서는 거대한 화분 20여 개를 천막이 있던 자리에 설치했다. 천막을 칠 수 없게 하기 위함이었다. 거대한 화분으로 우리의 투쟁을 막을 수 없다는 생각에 거꾸로 활용할 생각을 해보았다. 저 화분들을 이용해서 정원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에 몇몇 작가와 공유했고 모두 흔쾌히 만들어 보자고 했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노동자의 봄을 만들어 보고 싶었다.

‘청개구리 제작소’의 지원으로 웹자보도 만들고 프로그램을 확장할 수 있었다. 1달간의 여유를 갖고 조금씩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매주 일요일 시민참여 워크숍형식의 프로그램을 짜고 SNS를 통한 홍보를 시작했다.

첫째 주, 패치워크 테이블과 의자 만들기. 농성현장 어디에서나 구할 수 있는 파렛트와 사무실에 쓰고 남은 조각 나무들을 이용한 작업이었다. 주변의 많은 작가가 함께했고 자원활동가과 연대참여자들이 함께했다.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의 도움으로 멋진 테이블 2개와 의자 3개를 만들었고 콜트콜텍 투쟁사업장에서 연대의 마음으로 긴 나무의자를 만들어 후원하기도 했다. 투쟁의 현장에 생활의 공간을 만드는 작업은 매우 즐거운 일이었다. 목공기술도 배우고 오가는 이들에게 작업을 설명하고 투쟁을 설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두 번째 주, 바느질과 패브릭을 이용한 농성천막 꾸미기. 친구의 친구 또는 SNS를 통해 소식을 접한 50여 명의 사람이 실과 바늘을 가지고 대한문으로 모였다. 각자 만들어 온 뜨게 작품을 이어붙이고 거리를 오가는 이들에게 뜨게 교육도 하고 현장에 계신 노동자들과 담소를 나누며 한 코 한 코 바늘땀을 만들어 갔다. 농성장 한쪽 옆에서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과 함께 자작나무 선생의 솟대 만들기가 진행 중이고 멋지게 만들어진 솟대는 분향소 여기저기 놓여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지나가는 외국인들은 연신 사진을 찍었고, 누군가는 얼마에 파는 거냐고 묻기도 했다. 늘 대한문 담벼락에서 서각을 팔던 아저씨는 어느 순간 솟대를 만들어 자신의 서각작품 옆에 전시하기도 했다. 아마도 우리의 작업에 아이디어를 얻은 모양이다. 저녁 무렵 모인 이들이 만든 작지만 소중한 뜨개와 패브릭 조각들은 하나로 연결됐고 농성천막에 멋지게 설치됐다.

세 번째 주, 씨앗폭탄 만들기와 화단 만들기. 예전에 알던 한 작가분이 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 등 해고 노동자들이 공장에서 신고 다녔던 작업화를 모아 전시를 했던 기억에 전화를 주었다. 마침 작업화 일부가 콜트공장 앞 천막농성장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를 화분으로 만들기로 했다. 산재로 돌아가신 수많은 노동자의 눈물과 해고 이후 고통받고 있을 힘겨운 투쟁 당사자들의 땀이 작은 꽃으로 희망이 되길 소원하면서 말이다. 멀리서 한 꼬마 녀석이 작은 화분을 들고 아빠와 걸어온다.

대한문은 늘 외국인들의 발길이 많은 곳이다. 옹기종기 둘러앉아 흙을 나르고 꽃을 심는 모습, 뜨개질과 손바느질 하는 모습이 신기해 보이는지 계속 사진을 찍어 댄다. 이렇게 거리를 오가는 이들과 생활소통이 진행된다. “저도 한 번 떠봐도 될까요?” 난생처음 만나는 이들은 자연스럽게 바느질도 하고 쌍용자동차의 문제, 현실의 힘겨움 등을 이야기한다. 옛 우리의 엄마들이 생활의 어려움을 나누며 손바느질하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는 정겨운 모습이다.

화단이 만들어지고 플로리스트를 하고 있다는 한 시민의 도움으로 화분들의 자리 배치를 마무리하고 사진을 찍으며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본격적으로 씨앗폭탄을 만들기 시작했다. 씨앗폭탄은 진흙과 영양토, 물을 잘 반죽한 후 다양한 씨앗을 넣어 경단을 빚듯 동글동글하게 만든 후 3, 4일 정도 바싹 말린 뒤 원하는 곳에 던지면 된다. 던져진 씨앗폭탄에서 다양한 씨앗들이 여기저기 흩어지며 스스로 발아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으로 대한문에 연대오는 많은 사람들과 나눌 것이다.

네 번째 주, 농성텃밭 만들기. 흙을 구하기 어려운 서울인지라 양재동 꽃시장에 들러 흙을 구입하고 대한문으로 갔다. 씨앗은 한 봉지에 100개 또는 200개의 씨앗이 들어 있는데 경험이 없어 여러 개를 구입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김상구의 농사 경험을 토대로 조언을 들어가며 씨앗을 심었다. 고추씨는 홈을 고랑으로 파고 씨앗을 한두 개씩 3센티 간격으로 심었고 상추랑 치커리 등은 흩뿌리듯 흙 위에 고루 뿌린 뒤 손으로 아래 흙과 살살 섞어주는 것이라 알려주었다. 주머니 텃밭과 상자 텃밭은 1시간 정도에 마무리됐다. 이로써 한 달간의 농성정원 만들기 프로젝트는 끝났다.

한 달 동안 농성정원 만들기에 참여한 몇몇 사람은 SNS를 통해 농성장에 필요한 것들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농성칠판을 만들자는 의견에 다들 좋아하며 함께할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하나둘 모인 사람들은 코오롱 농성장을 찾았다. 코오롱 해고노동자들은 부당 해고로 3,000일이 다 지나도록 거리에서 농성을 하고 있었다.

후원받은 나무로 농성칠판과 게시판 등을 만들었다. 과천청사역 앞에 위치한 코오롱 농성장은 평소엔 한적한 공간이다. 이날은 나무도 자르고 색도 칠하고 수다도 떨면서 뚝딱뚝딱 시끌벅적했다. 코오롱 해고노동자 최일배는 간만에 많이 웃었다며 즐거워했다. 농성정원 만들기는 일상 속의 접근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평범한 일상이 연대로 이어지는 좋은 계기를 만든 거 같다. 뜨개질로 함께한 사람들은 만들고 이어붙이는 작업을 통해 앞으로도 지속적인 연대를 약속했다. 그리고 매주 대한문 농성장에 모여 <이어 붙이는 뜨개 농성>이라는 이름으로 연대를 이어갔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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