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 진상규명과 문화행정의 정상화

2017년 5월 16일culturalaction
[문화빵_ 문화정책센터 기획연재]
새정부 문화정책, 문화사회를 위한 정책과제들

[1편. 문화행정]

블랙리스트 진상규명과 문화행정의 정상화

박선영 / 문화연대

촛불시민의 힘으로 치러진 이번 대선은 부패한 세력을 몰아내고 민주주의의 기본을 바로 세우고자 하는 시민들의 의지를 반영하듯 압도적인 표 차로 적폐 세력을 권력에서 몰아내는 결과를 만들어 냈다. 그런 점에서 새롭게 출발하는 문재인 정부는 과거 어느 정부보다 더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를 정책에 담아내는 노력이 절실하게 요구된다.

문화계에 대한 블랙리스트 사건은 이번 촛불시민혁명의 기폭제가 되었다. 그만큼 문화행정의 정상화에 대한 시민들의 요구는 어느 때보다 클 수밖에 없다. 이점에 대해서는 문재인 정부도 인지하고 있고 문제의식 또한 충분히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의 첫 번째 공약이 ‘이명박·박근혜 9년 적폐청산’이고, 문화계 블랙리스트 문제 해결에 대한 내용도 공약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문화관련 공약은 통상적으로 문화 카테고리에 포함시키는 것이 보통이었음을 생각하면, 이번 정부는 블랙리스트와 문화행정 파행 문제에 대한 강력한 해결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공약의 세부항목을 살펴보면,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한 ‘진상조사 및 시정조치’ 뿐만 아니라 좀 더 본질적인 해결책인 ‘문화예술 지원기관의 독립성과 자율성 보장’, ‘문화예술 지원심사의 투명성 확대’, ‘현장 문화예술인의 지원정책 결정 참여 확대’, ‘문화 옴부즈만 제도 도입’ 등을 담고 있다. 블랙리스트 문제가 박근혜와 주변의 몇몇 권력자들의 의지만으로 발생된 것이 아니라, 이명박·박근혜 정부 기간 동안 꾸준히 자행되어온 문화예술인들과 문화예술 전문기관에 대한 탄압의 결과였음을 생각하면 적절한 조치로 보인다.

블랙리스트 책임자 처벌과 전문성 있는 인선

다만,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한 책임자 처벌에 대한 명확한 언급이 없는 부분은 아쉬운 점이다. 이미 박근혜 대통령과 전・현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블랙리스트 작성과 예술검열을 둘러싼 불법행위로 구속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박근혜 정부 아래서 부역하여 예술검열을 자행한 많은 행정관료들이 여전히 현직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중에는 적극적으로 예술검열을 진두지휘하며 블랙리스트를 만드는 데 동참한 이들도 있고, 위에서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한 소극적 동조자들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들을 구분하기는 쉽지 않고 어디까지 처벌해야 하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잘못이 정권이 바뀐 것으로 용서될만한 문제는 절대 아니다. 이제부터 잘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지 잘못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것이 중요하냐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블랙리스트 문제의 논점을 흐리는 것에 불과하다. 예술검열과 블랙리스트는 제도적 문제로 발생된 것이 아닌 권력에 빌붙어 검열을 행한 사람의 판단과 의지로 일어난 문제이기 때문이다. 올해 초 탄핵정국 당시 문화부가 스스로의 불법행위와 적폐를 해결하겠다고 대책을 마련했던 것과 같은 어이없는 상황도 이러한 문제 인식 수준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문화부 장관을 비롯한 문화예술기관 인선도 중요성에 비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은 점도 아쉬운 점이다. 이명박 정부가 문화행정기관을 장악하기 위한 과정에서 처음으로 한 것이 진보적 문화예술기관장을 끌어내리는 작업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중의 하나가 문화분야는 전문성이 없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분야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전 정부에서 많은 문화예술기관장이 낙하산 인사, 보은 인사의 형식으로 임명되었고, 문화분야가 국정농단 세력의 먹잇감으로 전락한 데도 이러한 인식이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다. 그러나 문화예술기관장은 어느 누구보다 문화에 대한 이해와 감수성을 풍부해야 하고, 현장 문화예술인들과 소통과 공감 능력이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최소한 이런 조건이 충족된 인사만 되었더라고 지금과 같은 블랙리스트 사태나 문화행정 파행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인수위 수준의 민관협력 위원회 구성

대선 기간이었던 지난 5월 4일, 문화예술계와 문재인 선거 캠프는 차기 정부 국가문화정책 수립을 위한 공동 협약서를 체결하였다. 협약서에는 ▷블랙리스트 사태에 대한 진상규명과 자유로운 창작환경 보장 ▷국가문화정책의 혁신과 실질적이고 지속적인 협치를 위한 행정적, 제도적 장치 마련 ▷실천과제 논의와 정책추진을 위한 민·관 협력체 구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협약서에서 약속한 세 가지 사항은 몰락한 문화행정을 다시 바로 세우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는 이번 협약이 문화예술계의 표를 얻기 위한 거짓 약속이 되지 않기 위해서 적극적인 이행 주체로서 나서야 한다.

특히, 민간과 행정의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가칭)‘문화정책 혁신과 비전 위원회’의 구성은 꼭 필요하다. 인수위원회가 없는 이번 대선의 특성상 망가진 문화행정의 체계를 다시 세우기 위해서는 인수위원회 수준의 강력한 권한을 가지는 위원회가 구성되어야 한다. 이 위원회는 단순히 사태수습의 수준이 아닌 전면적인 문화행정에 대한 재검토를 논의하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사회가 필요한 것은 이명박·박근혜 정부 이전으로 시곗바늘을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문화행정의 혁신과 새로운 비전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이후 ‘업무지시’ 방식으로 국정교과서 폐지나 세월호 기간제교사 순직 인정과 같은 문제들을 시원하게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많은 국민들이 지지를 받고 있다. 사안의 정당성이나 민주주의의 절차상의 논란을 차지하더라도 문화분야의 문제는 ‘업무지시’ 방식으로 단칼에 해결할 수 없다. 블랙리스트 사태와 문화행정 파행은 많은 문제와 현실적 여건이 만들어낸 현실태일 뿐이다. 그보다는 사태의 본질을 이해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리고 문화민주주의와 문화사회를 만들기 위한 혁신적인 접근과 비전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동시에 이뤄질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시민의 역량 강화와 문화적 가치의 사회적 공감이 없이는 이후에 제2의 박근혜가 탄생되지 말라는 법은 없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새정부의 역할은 눈앞의 성과에 급급한 나머지 조급해하지 않고, 장기적 안목에서 미래를 위한 논의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것이다. 그리고 민간과 현장의 목소리를 모아내고 제도화할 수 있도록 위원회에 대한 끈기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 촛불시민의 민주주의와 정의에 대한 염원으로 정권을 잡은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이제는 책임 있는 답을 시민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때이다.

 

*기획연재순서안내

[1편. 문화행정] 블랙리스트 진상규명과 문화행정의 정상화
[2편. 지역분권] 생활문화의 확산과 문화 지역분권
[3편. 문화산업] 지속가능한 문화산업 생태계 조성과 문화다양성
[4편. 예술노동] 예술노동와 예술인복지 보장
[5편. 체육] 엘리트체육에서 생활체육으로 전환
[6편. 좌담] 문화민주주의와 사회혁신을 위한 정책제언

 

Leave a comment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Prev Post Next Po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