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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정책센터 토론회리뷰03호]’문화 분야 헌법 개정 토론회'(2018.02.20.)

2018년 2월 25일culturalaction

그야말로, 현재 진행 중인 개헌과 문화권 논의

1948년 제정된 헌법은 1987년까지 9차례의 개정이 이뤄졌다. 그 아홉 번째의 헌법은 약 30년 동안 한국 사회를 관통하여, 2018년 현재에 이르렀다. 9차례의 개정을 통해 점진적으로 민주주의의 기틀을 마련했지만, 그 과정 중에는 권력을 유지하거나 정당화시키려는 의도 또한 포함되어있었다. 또한, 약 30년의 기간 중 꺼내 들었던 개헌이라는 패는 각 정권에서 발생한 이슈를 덮기 위한, 일종의 충격요법의 수단으로서 작동되기도 하였다.

헌법은 이제, 열 번째 옷을 갈아입을 준비에 있다. 촛불 시민혁명 이후 정권교체가 일어난 국면에서 개헌에 대한 정치적 계획이 활발해짐과 비례하여 사회적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개헌 실현의 가능성이 엿보이는 상황이다. 문화예술계에서는 그간의 통치구조 중심의 개헌을 넘어 헌법의 총강과 기본권에 대한 작업에서 ‘기본권으로서의 문화권’이 시대 상황에 맞게 얼마나 충실하게 담길지 주목하고 있다. 지난 2월 20일 국회 헌정회관에서 진행한 문화 분야 헌법 개정 토론회는 이와 관련하여 세 가지 정도의 역할을 갖추고 있는 듯 했다. 첫째, 현행 헌법에서 기본권 조항의 문제점을 적시하며 이를 개선하고 더불어 문화권 개념을 어떻게 담아낼 수 있는지를 공유하는 자리로서 둘째, 정치권에 문화(기본)권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직접 드러내고 제안하는 자리로서 셋째, 개헌 실현의 실질적 가능성을 엿볼 수 있는 상징적인 자리로서 말이다.

 

주제발표를 중심으로 한 문화권의 중요성과 필요성

이번 토론회에서는 문화예술단체 관계자와 헌법학자, 전문가가 모여 문화의 가치와 문화권의 중요성, 헌법 개정의 방향을 논의하였다. 토론회를 주최한 유은혜 국회의원은 “문화민주주의가 사회의 기본 운영원리로 담겨야 하고 문화에 대한 직접 참여와 자율성, 창의성, 다양성이라는 문화적 가치가 확대될 수 있어야 한다.”라는 인사말과 축사로 토론회의 문을 열었다.

바로 이어진 첫 번째 주제발표로는 ‘헌법 개정의 방향-기본권 강화와 문화’라는 주제로 신필균 국회 헌법 개정특별위원회 자문위원회 기본권 분과위원장이 발표했다. 기본권 자체와 대한민국 헌법의 기본권에 대한 개념(내용)과 범주, 역사 등을 개략적으로 서술하며 그 안에서 문화권이라는 개념을 어떻게 담아낼 것 인가에 대한 방향을 요약했다. 주요 내용은 기본권의 주체를 ‘모든 국민’에서 ‘모든 사람’으로 변경하고 문화생활의 권리로 참여, 접근, 기여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했다. 끝으로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보장/반영될 수 있도록 정치권에 당부했다.

그다음으로,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문화의 가치와 기본권으로서의 문화권의 중요성’이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문화가 인간 삶의 총체적 양식이자,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의 기초이자, 행복하고 즐거운 삶을 누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가치임을 주장했다. 덧붙여 자율성, 다양성, 창의성이라는 문화의 특별한 가치를 강조하며 1) 총강에서 문화권을 명시하고 2) 민족문화 창달의 문구를 시대 상황에 맞게 명시하거나 문화국가의 역할을 명시하도록 권고했다. 그리고 3) 문화권을 사회권에서 독립시켜 별도 기본권으로 명시, 혹은 사회권의 중요한 권리로 명시해야 함을 제안했다.

마지막은 ‘해외 헌법 사례 및 문화 분야 헌법 개정안 제안’이라는 주제로 고문현 숭실대학교 법대 교수, 한국헌법학회 회장의 발표가 이어졌다. 세계인권선언이나 제3세대 인권이 등장하면서 문화권에 대한 이해가 적극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서, 바이마르 헌법을 포함한 비교헌법적 사례를 통해 문화권, 문화국가, 문화국기원리와 같은 개념이 어떻게 적용되어있는지 설명했다. 단순히 복지로서 사회적 기본권을 넘어 문화에 대한 참여와 향유가 중요한 가치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말하며, 헌법 개정안 제안을 끝으로 발표를 마무리했다.

 

개헌과 문화권에 대한 다양한 시선과 목소리

문화예술계, 학자, 전문가로 구성된 토론자들은 개헌과 문화권에 대해 각자의 활동과 영역에서 비롯된 관점을 내비쳤다. 김종선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정책기획위원장은 국민과 예술가의 문화정책 수립, 시행에 참여할 권리를 보장하여야 한다고 말하며 관료 중심의 문화행정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다.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국민/시민적 시선으로 헌법을 바라보았을 때 헌법의 존재 이유와 헌법을 통해 국가가 무엇을 지향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의문 등을 제기했다. 손경년 부천문화재단 대표이사 또한 헌법의 존재 이유에 대한 근원적 질문과 헌법이 국민/시민들에게 친숙하지 못하다는 점, 헌법이 인문학적 지점과 맞닿아 있다는 특징을 들며 인문학적 통찰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원재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소장은 법 제도의 막개발과 문화행정과 문화정책이 파탄이 난, 현 국가 상황을 적나라하게 꼬집으며 현행 헌법에서 발생한 표현의 자유, 차별금지가 위배된 사례를 들기도 했다. 덧붙여 문화권을 단순히 문화예술계에 한정 짓는 개념보다 다른 영역과의 이해와 연계 속에서 헌법의 개정과 방향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광렬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문화환경권에 대한 기대를 내보이며 개인의 권리만큼이나 중요한 사회와 공동체의 가치 확산을 실현할 수 있는 권리라 언급했다. 황의철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사무총장은 현장 예술인들의 전업률의 저조함을 예로 들며 예술인들에 대한 생존/생활권 보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기관들의 통제식 지원 정책을 지적하기도 했다.

객석에서는 현행 헌법 11조에 대한 자문위 조문시안 제14조(발표자료집_8p)를 예로 들며, 현재 우리 사회 가장 큰 이슈인 성적 지향에 대한 명문화를 제안했다. 또한, 다른 시민은 헌법 전문 개정안에서 제시하는 ‘문화의 가치를 사회에 확산하여’라는 문구의 추상적 표현을 ‘문화민주주의를 기반으로 다양성과 창조성을 중시하여’라는 표현으로 명시할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토론회 현장에서 세대, 젠더 등 사회적 소수자와 문화다양성 측면에서의 아쉬움

협의의 문화는 ‘내부 감정 및 관념의 미적 표현’을 뜻하며, 종교적 형식을 포함 문학, 미술, 음악 등에 대한 감정의 표현 양식이라 한다. 이처럼 좁은 의미에서의 문화는 사실상 ‘예술’이라는 개념과 비슷한 용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광의의 개념에서 문화는 어떤 공동체 내의 모든 학습된 행위, 전체적인 생활양식, 사회구성원들이 공유하는 가치관/태도/관습 등을 의미하는 삶의 복합적인 총체로 정의한다. 같은 듯 다른 듯, 협의와 광의의 문화는 상호 작용하며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해간다. 이런 변화에 맞춰 문화 분야 헌법 개정은 협의와 광의의 문화라는 개념을 어떻게 헌법에 담을지 주목하고 있다.

구성원들의 일련의 과정의 결과로서 어떠한 산물이 만들어진다고 가정하였을 때, 그 산물에는 각 구성원의 가치와 이념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문화권을 헌법에 담기 위한 과정을 맡은 인물의 가치와 이념 등이 개정안에 반영된다는 말이다. 인간 모두가 삶 속에서 만들고 향유하는 것의 총체적 양식 이라는 입장에서, 획일화되지 않고 자율성을 보장하는 중요한 가치인 문화다양성. 이 문화다양성의 권리 보장을 위해 우리 주위의 다양한 정체성을 둘러 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번 문화 분야 헌법 개정 토론회에서는 다양한 정체성을 마주할 기회가 충분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12명의 토론회 구성원 중 여성은 단 2명뿐 이었고, 젊은 세대 토론자라 말할 수 있는 구성원은 보이지 않았다. 또한, 국회 헌법 개정특별위원회는 36명의 위원 중 여성은 단 5명(13%)에 불과하다. (표면적이지만)토론회 현장과 헌법 개정특별위원회의 구성원 비율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이와 같은 성비/세대의 불균형, 나아가 성적 지향성의 결핍이 문화다양성을 역행하는 모습으로 보여 아쉬움이 남는다.

 

지금 다시,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논의될 문화권

문화권이란 개념이 8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논의되긴 했지만, 이미 1948년 ‘세계인권선언’(제27조)부터 문화적 권리의 중요성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문화권은 2003년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권고한 ‘문화권 국가 실행계획’(NAP)이래 ‘문화헌장제정’(2004년), 그리고 문화기본법 제정(2013)을 통해서 발전해왔다.

모든 개념에 광의의 개념과 협의의 개념이 있고 이 두 개념이 상호작용을 하며 변화하지만, 여태껏 문화는 현상적이고 표면적이고 직접적인 협의의 개념 중심이었을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를 사치재로 여기면서 시민들을 수동적 객체로 전락시키는 공급자 중심의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지점이다. 지금 다시 논의 되는 문화권은 (앞서 언급한 협의의 개념을 포함하면서) 문화민주주의를 기치로 시민들이 자신들의 관점으로 문화 및 문화 활동을 정의할 수 있도록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삶의 당연한 구성요소이자 사회적이며 일상적인 권리로서의 문화권. 개헌 논의에서 이 문화권이 중요한 현실적 이유는 헌법과 법률에 근거하여 정책적 근거를 마련하는 행정환경 때문이다. 헌법에 명확한 규정이 없을 때,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문화권은 국가와 사람들의 우선순위에서 뒤처질 확률이 높다. 그렇기에 현재 진행 중인 문화권 논의가 유의미하다.

 

이날, 한정된 시간 동안 문화 분야를 헌법 개정에 어떻게 연관시킬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이뤄지진 않았다. 그렇지만 공개 토론회를 통해 개헌 논의가 현재 어느 수위까지 진행됐는지 확인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고, 문화권 혹은 문화기본권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견해를 들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본 리뷰에서 문화 분야 헌법 개정안 및 문화권의 의미와 같은 개념을 전부 다루기엔 한계가 있으므로, 토론회 관련 자료를 참고하길 바란다.)

 

*관련 자료집

<문화국가를 위한 헌법 연구>

<[자료집]문화 분야 헌법 개정 토론회 발표자료(2018.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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