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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42] 투쟁시작과 문화예술인 행동 – 콜트.콜텍 해고노동자와의 연대기(3)

2018년 4월 9일culturalaction

신유아 / 문화연대

 

(사진: 정택용)

 

악기를 전혀 다루지 못해서 배우는 데 한참 걸렸다. 기타와 악기를 가르치던 선생님이 포기하려고도 했을 만큼 난관은 많았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연주도 투쟁이라는 신념으로 매일매일 악기와 투쟁했다. 악기연습에 집중한 지 3개월쯤 지난 어느 날. 드디어 첫 무대를 준비하게 되었다. 연주할 수 있는 곡은 단 1곡이다. 문화노동자 연영석의 <이씨 니가 시키는 대로 내가 다할 줄 아나>라는 노래다. 그리고 콜트콜텍 사장 박영호를 겨냥하여 <박씨 니가 시키는 대로 내가 다할 줄 아나>로 개사하여 부른 첫 무대는 대성공이다. 앵콜이 나와도 할 수 있는 곡은 단 1곡. 앵콜이 나오고 또 나오고 같은 노래만 3번 불렀어도 모두가 행복한 시간이었다.

콜밴은 매달 수요문화제를 통해 새로운 곡들을 선보였다. 매달 한 곡씩 연습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연대투쟁도 해야 하고, 매주 목요일 진행되는 콜트 본사 앞 집회도 해야 하고, 때로는 재판을 받으러 법원에도 가야 했다. 농성장은 하루가 멀다 하고 뚱땅거리는 악기 소리에 조용할 날이 없었다. 그러던 시절이 어언 4년. 지금은 자작곡까지 만들어 장기투쟁 하는 노동자의 이야기를 노래하고 있다. 첫 번째 자작곡은 콜트악기 방종운 지회장의 시를 수정한 <꿈이 있던가>이다. 첫 창작곡이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멤버들 사이에서 의견 충돌이 많았던 곡이다.

그리고 두 번째 자작곡 <주문>은 첫 번째 곡과 달리 빨리 만들어졌다. 콜밴 베이스 김경봉이 쓴 콜텍 본사 집회에서 발언한 이야기를 글로 정리하여 가사를 만들고 이인근지회장이 곡을 붙였다. 정리해고 하는 경영자들에게 저주를 바라는 내용과 한국의 해고자들에게는 절박하지만 희망을 가지자는 내용이다. <주문>은 2014년 이용석 가요제에서 금상을 수상했다. 세 번째 곡 “못 배운 게 죄 인가요 알아듣게 얘기해요. 미래의 경영까지 점을 치는 신 내린 무당인가”라며 읊조리는 노래 ‘서초동 점집’은 2014년 6월 “장래에 다가올 경영상의 위기도 해고 사유가 될 수 있다”며 회사 쪽 손을 들어준 대법원 판결을 풍자한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자작곡은 전국의 투쟁현장을 다니며 콜트콜텍의 이야기도 알리고 투쟁하는 또 다른 노동자들에게 힘을 주기도 했다. 단식농성, 고공농성, 삭발 투쟁 등 안 해 본 투쟁이 없다지만 스스로 밴드를 만들고 공연을 하는 방식은 투쟁당사자가 만드는 노래패, 문선패 이후 새로운 혁명적 방식이 아닐 수 없다.

스스로 만들어 가는 투쟁이야말로 진정 아름답다. 새로운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겠지만, 새로운 것에 대한 거부감도 있겠지만 사실 알고 보면 새롭지도 않다. 노동자라고 해서 특별하게 일반인이라 칭하는 사람들과 구별되는 것은 아니다. 집에 가면 아버지, 어머니, 남편, 부인이고 친구들과 만나면 노래방도 가고 술도 마시며 영화도 본다. 주말이면 가족 나들이도 가고 휴가철이면 여행도 간다. 이런 사실은 투쟁이 시작되면서 조금 줄어드는 횟수의 차이일 뿐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투쟁하는 노동자와 일반 노동자 그리고 일반인이라는 이분법적 논리는 맞지 않다. 가끔 친구들과 만나서 기타도 쳐봤을 것이고, 아이들의 숙제를 봐주면서 크레파스를 손에 쥐고 그림을 그려도 봤을 것이다. 가족사진을 찍어봤고, SNS에 올리기 위해 셀카도 찍어봤을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연애편지도 써봤을 것이고, 힘겨움을 달래가며 일기도 써봤을 것이다. 노동자는, 투쟁하는 노동자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그냥 우리주변에 있는, 바로 내 옆을 지나가는 사람들인 것이다. 문화적인 시도는 예술가들만이 하는 것이 아니다.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제작도 하고, 노래도 부르는 일상적 문화행동은 누구라도 할 수 있다. 스스로를 감추고 자신 안의 감수성을 누르는 것이 투쟁하는 사람의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끌어내고, 드러내는 것이 투쟁의 가장 기본적인 모습이라 생각한다. 분노를 표출하듯 감성을 표출해야만 투쟁의 새로움을 만들어 낼 수 있다.

 

콜트콜텍기타노동자들은 쉬지 않고 노력했다. 밴드에 이어 연극 공연도 했다. 인문학 연구모임 ‘수유너머R’ 등에서 활동 중인 공연 팀 ‘진동젤리’가 제안한 연극은 콜트콜텍기타노동자들이 직접 배우가 되어 대사도 외우고 연기도 해야 했다. 그것도 대사가 어렵기로 유명한 고대 비극 <햄릿>이다. 처음 기타를 잡고 연주를 시작했을 때만큼이나 힘들고 괴로운 일이었다. 콜트콜텍해고노동자들은 힘들었다. 서로에게 짜증도 내고 포기한다며 도망가기도 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서울 대학로의 ‘혜화동 1번지’공연장. 콜트콜텍기타노동자들의 연기에 관객들은 감동과 웃음과 호기심으로 하나가 되었다. 콜트콜텍기타노동자들은 이제 자본으로부터 버려진 해고노동자의 삶이 아닌 음악과 노동이 존중받는 세상의 주인공을 꿈꾸고 있다. 밴드에 이은 또 다른 도전에 성공한 것이다. 세상은 도전하는 사람에게 기회가 온다고 했던가. 장기투쟁의 경우 언론에 주목을 받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런 새로운 방식들은 투쟁하는 노동자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는 방식이 된다. 노동자들의 도전은 투쟁의 다양한 방식을 만들어 내고 장기농성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이 된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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