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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39] 재미있는 싸움판/ 제주 강정 <생명평화문화마을> 만들기

2018년 3월 19일culturalaction

신유아 / 문화연대

 

2013년 시작한 강정마을 뜨개농성 <강정의 코>는 겨울에 뜨개편물을 입히고 봄에 걷어내고 다시 겨울이 오면 뜨개편물을 입히고 걷어내기를 두 차례 반복했다. 2015년 겨울, 몇 해가 지나도 제주 해군기지 공사장 앞 미사 터는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낡아버린 뜨개편물 아래 천막에는 문정현 신부님의 나무 깎는 소리만 들려왔다.

2015년 12월 공사장 앞을 오가던 대형 덤프트럭의 수는 점점 줄어들었고 바다를 가로막고 들어선 해군기지는 준공을 앞두고 있었다. 이제 모두 끝난 거냐, 해군기지가 들어선 이상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이냐고 사람들은 말했지만 강정마을을 지키는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생명평화문화마을>만들기를 선포했다.

생명평화문화마을 만들기 주간을 선포한 강정마을 친구들은 주간행사의 하나로 장승 만들기를 하고 싶다며 파견미술팀에 연락을 해왔다. 거대한 장승을 만들어 해군기지 정문 앞에 세우자고 했다. 무조건 오케이 했지만 여러 가지 문제가 있었다. 제주도는 예부터 솟대나 장승보다 하루방 또는 방사탑을 세워 액을 막았었다. 그런 의미에서 장승이 아닌 방사탑을 세우는 것이 더 좋겠다는 의견이 마을 주민들에게서 나왔고 장승 만들기는 잠시 보류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다시 장승을 세우는 것으로 합의된 강정마을에서 다시 연락이 왔다.

파견미술팀은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우선 거대한 지름의 나무를 구하는 것이 급했다. 운반비를 고려해 제주도 지역에서 나무를 구해보기로 했다. 거대지름(지름 1.4m 높이 3.5m)의 나무는 제주도 어느 곳에서도 구할 수 없었기에 서울과 인천 쪽으로 확인 작업을 했고 다행히도 인천 쪽에서 나무를 구할 수 있었고 운임도 생각보다 비싸지 않았다.

나무를 주문하고 나무가 도착하는 시기에 맞추어 함께 작업할 작가들을 섭외했다. 2014년 밀양 송전탑반대 볏짚 상징물 만들기 작업 때 만났던 밀양의 작가 박재열이 생각났다. 그는 장승 만들기가 주 작업이었고 전시경험도 있는 작가였다. 일주일 정도 시간을 제주도에서 작업해야 했기에 날짜와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으나 참여 작가들은 무조건 시간을 맞추어 보겠다며 의지를 보였다. 참여 작가는 박재열, 이윤엽, 나규환.

강정으로 가기 전 문정현 신부님께 장승에 들어갈 문구를 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신부님이 생각한 문구는 “생명 평화” “구럼비가 울고 있다.” “그들은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리라.”

2015년 12월 마지막주, 파견미술팀은 강정에 도착했다. 늦은 오후에 도착해서 작업을 시작할 수가 없었다. 작업과정을 설명하고 장비를 챙기며 강정마을 이야기를 듣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른 아침 나무가 준비된 강정천 옆 운동장으로 갔다. 마을 청년회 컨테이너가 있는 곳으로 장비를 넣어두고 잠시나마 몸을 녹일 수 있는 휴식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주었다. 엔진톱으로 큰 나무를 자르기 전 우린 나무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소원을 비는 의식을 진행했다.

제주도 바람을 실감할 수 있는 날들이었다. 3개의 큰 나무 앞에 작가 한 명씩 선다. 책임 작가와 나무가 연결되고 강정마을 친구들이 작업을 돕는다. 처음 작업은 큰 덩어리 쳐내기다. 도와주고 싶어도 할 일이 없었다. 첫날 오전 작업은 세 작가들이 온전히 작업을 마무리해야 했다. 바닥에 떨어지는 조각들을 치우는 일 말고는 딱히 도울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멀리 강정천 너머 해군기지공사장 앞 미사 터에서 신부님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강정아 너는 이 땅에서 아주 작은 고을이지만 너에게서 온 나라의 평화가 시작되리라~~~”

오후부터 일손이 많이 필요해졌다. 미사를 마치고 돌아온 신부님과 강정친구들이 모두 작업장에 모여 망치와 정을 들고 나무를 쪼아내기 시작했다. 박재열. 이윤엽 작가와는 달리 나규환 작가는 나무의 형태를 최대한 살리는 방법으로 작업을 한다. 나규환 작가는 코를 연상시키는 나무모양과 코를 둘러 움푹 파인 모양새가 문정현 신부님의 흰 수염 같았다고 한다. 신부님 얼굴모양의 나무를 다시 흰 수염 부분은 강정의 앞바다로, 코를 연상시킨 부분은 구럼비 바위로 이미지화했다. 해가 저물어갈 즈음 하루 일정을 마무리했다. 일정이 빡빡하여 하루온종일 쉼 없이 일만 했다. 다음날 오후 비행기로 서울에 가야 했기에 작가들은 마음이 급했다.

이틀간 장승 깎아 형태 만들기 작업은 마쳤다. 거친 면을 다듬고 마무리하는 작업은 강정친구들이 하기로 했다. 2016년 봄, 2월 생명평화문화마을 주간행사에 맞추기 위해 다시 강정으로 갔다. 파견미술 작가들이 서울로 떠나고 두 달간 문정현 신부님은 장승나무에 커다란 문구들을 새겼다. 지난 몇 년간 서각을 해봤지만 이렇게 큰 나무에 이렇게 큰 글씨는 처음이라며 놀라워하셨고 장승 새김글작업으로 참 많은 기술들을 배웠다며 흡족해하셨다. 늘 배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신부님이다.

2016년 2월 파견미술팀은 다시 강정으로 갔다. 바람이 엄청 분다. 봄이 오는 비도 내린다. 지난 12월 작업이 추위와 함께한 장승 깎기 작업이었다면 2월 채색작업은 바람과 함께한 작업이었다. 장승 위에 올라서면 장정의 몸이 휘청거릴 정도였다. 그렇게 완성된 장승은 2016년 2월 25일 강정생명평화문화마을 선포식에 자리를 잡고 세워졌다. 닮아 보이는 두 개의 장승은 마을 중앙에 위치한 평화센터 앞에 그리고 나무의 형태를 유지한 장승은 해군기지정문이 만들어진 삼거리 정면에 세웠다.

“강정 제주 강정을 지켜줄 장승, 페인트 화장이 한창입니다. 해군기지 백지화 투쟁의 마음으로 강정천 운동장에서 일을 합니다. 참 재미있는 싸움판입니다.” 문정현 신부님의 말이다. 재미있는 싸움판. 그렇다. 파견미술작가들은 붓으로 나무로 강정을 지지하고 연대하며 함께 싸우고 있다. 지금도.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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